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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글래스톤베리’ 섭외된 코토바 “계속 탐험할 것”

축제계 ‘미다스 손’ 마틴 엘본 극찬…“코로나19 사태로 못가게 돼 아쉬워”

2020-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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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그 장소는 서정성이 물결처럼 반짝이는 그들 음악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반듯한 인테리어의 문을 열어젖히면 흰회색 배합의 갤러리 같은 공간이 펼쳐졌다. 가지런히 놓인 책들과 70~80년대 브라운관 TV 소품, 갈색 계열의 업라이트 피아노, 벽면 스크린에 분사되는 고전 영화…. 에어컨이 실내를 빙하 같이 얼리는 동안, 제 각기 소파에 걸려 책을 읽는 이들이 여럿이다. 스피커에서 샤워처럼 쏟아지는 건 국내 주요 차트에선 들을 수 없는 음악들. 앞서 ‘밴드유랑’ 시리즈에 참여한 ‘오드리 노(Audrey No)’의 음악도 흘러나왔다.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공상온도’. 평상시 서점인 이 곳은 밴드 코토바(cotoba)에겐 음반 판매를 위한 전초기지로, 때로는 공연장으로 활용되는 장소다. 
 
공간 내 스텝들은 뮤지션들과 친분을 이루며 펄떡이는 기획들을 쏟아낸다. 음원사이트에서 다루지 않는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창작 영감을 번뜩이게 하는 책과 음반을 선별해 올려둔다. 보통의 공연장이라면 볼 수 없는 전대미문의 기획 공연들도 이따금 열린다. 이를테면, 포스트록 밴드들의 합동 공연 때 ‘포스트’가 시리얼 상표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후르츠링을 함께 먹는 식.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복합문화공간 '공상온도'에서 만난 밴드 코토바. 왼쪽부터 다프네(기타), 됸쥬(보컬), 유페미아(베이스), 마커(드럼), 쥬나나(퍼커션).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난 6일 이 곳에서 만난 코토바 멤버들[됸쥬(보컬), 다프네(기타), 유페미아(베이스), 마커(드럼), 쥬나나(퍼커션)]은 “올 때마다 공간은 ‘젊음’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켜준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다른 창작자들과 현실 공간에서 실현시켜 가는 과정 자체가 신나고 재밌다”며 해사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코토바는 근 1~2년 새 Z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은 밴드로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팀이다. 지난해 ‘서울국제뮤직페어(뮤콘)’ 초대 예술감독이었던 윤상이 추천한 팀으로, 최근 젊은층과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나만 알고 싶은 밴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은 조회수 50만회를 훌쩍 넘어설 정도다.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이 세 차례나 오른 그 무대,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은 올해 이들을 무대에 세울 계획이었다.
 
밴드 결성의 계기는 됸쥬와 다프네, 쥬나나가 뭉치면서다. 노래하며 기타를 치는 됸쥬는 본래 어쿠스틱 음악 계열의 싱어송라이터. 2018년 초, 평창 페럴림픽 공연에 초청받은 세 사람은 무대 뒤 틈틈이 잼을 하며 새 음악을 구상했다. “4분의 4박자, 대중음악 전형의 박자를 탈피하면 어떨까, 왜 ‘매스 록’이라는 거 있잖아.” 다프네의 제안이 뭉게구름 같은 아이디어로 피어올랐다. 드럼과 퍼커션, 베이스를 5박, 7박, 11박까지 쪼개며 “칠 수 있는 것 중 제일 어려운 것”을 쳐보기로 했다. 뒤늦게 프로그레시브 메탈을 하던 유페미아, 하드록을 즐겨듣던 마커가 합류해 지금의 진영이 갖춰졌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복합문화공간 '공상온도'에서 만난 밴드 코토바. 왼쪽부터 마커(드럼), 쥬나나(퍼커션), 다프네(기타), 됸쥬(보컬), 유페미아(베이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매스 록은 ‘매스(수학)’이란 글자 그대로 악기와 박자를 물리적으로 계산해서 만드는 음악 장르다. 이를테면 일반적인 4박을 벗어난 변박을 조합해 이질감을 만들거나, 밝은 느낌의 메이저코드 사이사이 어두운 마이너코드를 섞어 낯섦을 주는 식이다.
 
“일본의 ‘트리콧(Tricot)’, ‘토(Toe)’ 같은 밴드들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저희보다 앞서서 좋은 연주를 해온 밴드니까요.”(됸쥬) “사실 매스 록이 일본에서 기원한 것으로 생각하시지만 초기 교과서같은 밴드는 ‘아메리칸풋볼(AmericanFootball), 슬린트(Slint), 클레버걸(CleverGirl)’ 같은 영미권 밴드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팀들이 존재하며 신을 형성하고 아시아에 영향을 줬습니다.” (다프네)
 
이들은 “개방현(기타 등 현악기에서 왼 손가락을 누르지 않고 소리를 낼 때의 현)을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청명한 메스록과 그렇지 않은 메스록이 갈리는 등 분파가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 스트레이트 한 사운드가 펑크(Punk)와 비슷하다는 점, 가사보단 연주 비중이 많다는 점, 변박을 보다 적게 쓰고 하이와 로우 포지션이 명확히 구분되는 점 등을 트리콧 같은 일본 밴드와 자신들이 차별화 되는 점으로 꼽았다. 
 
코토바 새 EP '날씨의 이름'
 
지난달 30일 발표된 새 EP 앨범 ‘날씨의 이름’은 코토바 식으로 요리한 매스 록의 결정체다. 공간계 이펙터로 몽글몽글한 도입부 기타톤을 잡아낸 첫 곡 ‘레인(Reyn)’부터 빗물로 채색되는 서정의 소리가 특정 풍광을 그려낸다. 
 
11박으로 쪼개진 베이스와 드럼의 변박은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빗방울들의 형상화다. 뒤이어 나이지리아 전통악기인 우두(UDU)를 필두로 캐스터네츠와 탬버린이 6박으로 합세. 템포가 느슨하게 조절된 이 부분에서 멤버 쥬나나는 “물방울들이 클로즈업 되는 이미지를 청각적으로 상상하며 접근했다”고 설명한다.
 
이들 음악의 가장 큰 특성은 악기 연주가 주가 되고 가사 비중이 적다는 점이다. 언어로 표현할 것들을 최소화하는 대신 합주로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을 시각적으로 그려낸다. 이를 테면 폭우 속을 내달리는 장면이나 일상을 탈주하는 짜릿함, 모호해지는 시간 감각 같은 이미지들.
 
‘Reyn’을 필두로 앨범은 “날씨와 계절의 순환,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글자글한 기타톤에 묻힌 몇 줌의 가사들은 됸쥬의 무심한 톤에 실려 발화되듯 사라진다. 아끼던 친구를 상실한 기억이나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 고민하는 치열함 같은 감정들…. 생의 여러 소용돌이에도 “뒤돌아볼 시간은 없으니 앞만 보자(2번 트랙 ‘여름의 낮’)” 하고 더 나을 내일을 위한 밤을 맞으며 발랄하게 “원투!”(마지막 트랙 ‘Next Movement’)를 외친다.
 
“마지막 트랙이 지나면 다시 첫 곡, 비가 내리는 아침 ‘Reyn’으로 이어집니다. 첫 곡부터 끝곡까지 인생의 순환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다프네) “살다보면 선택을 늘 마주하게 된다”는 이들은 “결국 음악을 한다는 것도, 회사원이 된다는 것도 다른 무언가를 ‘상실’함으로써 얻어지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쨌든 살아가고 뭔가 해야하는 이 현실을 음악적으로 돌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밴드 코토바. 사진/코토바
 
밴드는 올해 50주년을 맞은 영국 ‘글래스톤베리’에 섭외됐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끝내 가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 했다. 이들을 섭외하려 한 인물은 글래스톤베리의 메인 프로그래머이자 음악 축제계 ‘미다스 손’이라 불리는 마틴 엘본. “엘본과 합의한 뮤콘 측으로부터 ‘50주년 글래스톤베리에 나가게 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모든 것이 중단된 상황이라 안타깝습니다.” 
 
밴드는 록이 주류인 일본에서도 호응도가 높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까지는 간사이 라이브하우스 등의 현지 투어를 성황리에 마쳤다. 
 
스팅부터 라디오헤드, 드림시어터, 핑크플로이드, 원오크락, 시이나링고 등 평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는다는 이들은 “다음 앨범에선 매스 록 기반에 더 새로운 것들을 탐험할 생각도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밴드 코토바. 사진/코토바
 
마지막으로 이번 신보를 여행지에 빗대달란 요청에 오색찬란한 대답들이 돌아온다.
 
“하멜 표류기의 반대 버전 어떨까. 조선 시대에 배타고 표류하다가 도착했는데 그곳이 서양 문화권인거지. 로마식 건축물들 늘어서 있고. 딱 그런 느낌이면 좋을 것 같은데.”(쥬나나)
 
“대만 더운 땡볕 한복판. 번화가인데 전통이 섞인 느낌. 화려한 색상에 한국에서 맡지 못한 향기와 밟아보지 못한 보도블럭이 있고 과일과 관광상품도 잔뜩 쌓여 있고.”(됸쥬)
 
“인디아나존스 이런 데 나왔으면 좋겠는 음악. 황야의 오픈카에서 들었으면 좋겠어요.”(다프네)
 
“저는 거리가 가지런하고 반듯반듯한 일본 주택가 같은 게 생각납니다.”(마커)
 
“비 내리는 도쿄의 칸다역. 지상 전철 때문에 높던 역이 생각나고 그 아래 상점가들이 늘어선 게, 난 ‘Ryen’ 연주 때 그 거리를 많이 생각했던 거 같아...”(유페미아)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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