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최기철

대법 "모텔에 손 잡고 들어갔다는 사정만으로 '강간 무죄' 판단은 잘못"

1심 전부 '유죄'-2심 전부 '무죄'…대법 "원심, 공소사실 관련 없는 사항만 판단"

2020-07-13 15:35

조회수 : 5,139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스마트폰 소개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여성을 인적이 드문 바닷가로 불러내 차에 감금하고 모텔로 데려가 4차례 성폭행 남성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이 없는 부수적 사항만을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했다"고 원심 판단을 지적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강간 및 감금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스마트폰 소개팅 어플로 만나 성폭행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17년 7월 초 스마트폰 소개팅 어플을 통해 피해자 B씨를 만나 9일 처음 통화를 한 데 이어 두번 카페에서 만났다. A씨는 같은 달 16일 오후 10시40분 쯤 마산 시내에서 B씨를 만나 자신의 승용차에 태운 뒤 40분쯤 달려 경남 고성 동해면의 한 바닷가로 가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자정이 넘자 A씨는 전화를 받지 않은 일과 남자선배가 SNS 메시지를 보낸 사실들을 반복적으로 따져 물으면서 B씨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B씨가 사과했으나 A씨는 B씨의 휴대전화를 갑자기 빼앗아 오른팔로 B씨를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A씨는 그 상태로 휴대전화 저장 목록을 샅샅이 뒤지면서 "이OO랑 잤냐?", "나 오늘 작정하고 나왔다, 니 오늘 내한테 죽는다"는 등 심한 욕설과 함께 협박하더니 주차 장소에서 20km 떨어진 모텔로 그대로 차를 몰고 질주했다.     
 
모텔 객실로 B씨를 데리고 들어간 A씨는 차 안에서와 같이 윽박지르면서 '이 놈이랑도 잤냐, 몇 놈이랑 잤냐, XX아!', '커피 값을 왜 나에게 내게 했냐'는 욕설과 함께 피해자를 총 네차례에 걸쳐 성폭행했다. B씨는 오후 1시20분 쯤 모텔 인근의 한 식당으로 A씨와 들어갔다가 두차례 식당 밖으로 나가려다가 A씨로부터 제지당 한 뒤 식사를 마친 뒤 A씨가 차에 태우는 순간 식당으로 뛰어들어가 A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1심 "전부 유죄, 징역 3년"
 
1심은 A씨에 대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80시간과 신상정보공개 5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에 5년간 취업제한을 아울러 명령했다. A씨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A씨는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만나다가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하게 된 것이고, 피해자를 강제로 모텔에 데려 가거나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부산고법 창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진석)는 B씨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번복돼 신빙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씨가 차 안에 감금됐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피고인이 피해자를 모텔로 데려가기 위해 차량에 감금하기 직전 바닷가에서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원심 법정진술대로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2시간여 동안 협박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1시간여 동안의 행적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감금시 폭행·협박에 대해서도 "경찰 조사에서는 휴대전화를 빼앗을 당시 피해자의 목을 조르거나, 목 부위를 눌렀다는 진술을 전혀 하지 않았다가 검찰 조사에서는 '차 안에서 휴대전화를 빼앗은 다음 한 시간 동안 피해자의 가슴과 목 부위를 눌러 피해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고 진술한 점을 문제 삼았다. 또 피고인이 힘으로 제압해 목을 졸랐다면 목에 흔적이 남았을 법한데, 멍이나 상처, 붓기 등의 흔적이 생겼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모텔 CCTV 영상에 의하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피고인이 자신의 뒤쪽에 있는 피해자에게 오른손을 뻗어 피해자의 왼손을 잡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려는 피해자를 강제로 태운 것으로까지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피해자가 모텔 직원이 아주머니였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직원이 중년 여자라는 사실만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이어서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항소심 "CCTV 보면 강제성 없어…무죄"
 
객실 내 성폭행 부분에 대해서는 "증거는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하고, 나머지 증거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만한 독자적인 증명력을 가진 증거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며 배척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항소심 판결문 24매에 버금가는 23매 분량의 판결문을 통해 원심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우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이나 피고인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피해자의 진술과 반드시 배치된다거나 양립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거나, 공소사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수적 사항에 불과하다"면서 "그럼에도 원심이 그러한 사유들을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것은,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그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한 것이어서 쉽사리 수긍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감금 혐의에 대한 피해자 진술 부분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에 의해 상당한 시간 동안 계속 외포된 상태에 있었던 점에 비추어 당시 시간의 경과나 흐름에 대하여 잘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과 구체적 상황에 대해 세밀하게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피고인과 함께 차 안에 있었던 시간에 관해 다소 일관되지 않고, 피고인과의 행적 전반에 대해 상세히 진술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행동으로 인해 물리적, 심리적으로 억압되어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모텔까지 가게 되었다는 취지의 피해자 진술 전체의 신빙성을 부정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대법 "이미 억압된 피해자 심리 고려했어야"
 
재판부는 강간 부분에 대해서도 "피해자(153cm/40kg)와 피고인(173cm/85kg)의 신체적 차이나 피고인과의 관계 및 그 당시 피고인과 모텔에 오기까지의 구체적인 상황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의 진술에 나타난 폭행?협박의 내용과 정도만으로도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었다고 충분히 인정할 만하고, 반드시 피해자가 당시 사력을 다하여 반항했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두 사람이 짧은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호감을 갖거나 연애의 감정이 생겼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지만 피고인이 사건 당일 바닷가에서부터 돌변하여 화를 내고 욕설을 하면서 휴대전화를 빼앗고, 자신을 강제로 모텔로 데리고 가 위와 같이 네 차례 강간하였다고 피해자가 일관해 진술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진술이 경험칙에 반해 비합리적이거나 그 자체로 모순되지 않은 한 피해자가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배척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피해자가 이른 새벽에 낯선 장소의 모텔에 도착했을 때에는 피고인의 감금 범행과 협박으로 이미 외포된 상태에 있었다"면서 "피해자가 당시 처한 구체적 상황과 심리상태에 비춰, 원심이 이러한 CCTV 영상을 근거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모텔 객실에 강제로 데려간 것이 아니라고 보고 그런 사정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하는 사유로 삼은 것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 최기철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