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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해리빅버튼 “세기말 ‘매드맥스’처럼 달립시다”

1970~1990년대 영화 무드, 육중한 기타리프와 포효의 소용돌이로

2020-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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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인근 한 좁은 골목길에는 외딴 ‘섬’ 하나가 있다. 주로 소리 갈증에 허덕이는 이들만 찾는다는 보물섬. ‘음악 요람’ 같은 악기 숍 ‘VG 기타’.
 
하드케이스를 관삼아 시체처럼 누워 있던 78년산 펜더 기타도 이 곳 문지방만 넘으면 기적처럼 펄떡 일어난다. 80년대 소련산 부스터와 디스토션 페달, 벽 사방에 내걸린 공구더미들…. 낙원상가 출신 사장의 예리한 악기 관리(악기셋업, 수리, 유지보수 및 커스텀 작업) 솜씨는 수많은 악기 애호가들의 소매를 이곳으로 잡아끈다.
 
하드록 밴드 해리빅버튼[이성수(보컬, 기타)·김인영(베이스기타)] 역시 이 곳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선수’다. 소리 보물을 캐려 이 곳에 모여든 ‘음악 여행자’들과 종종 뒤섞인다. 고급 팁을 나누고 앨범에 실을 소리들을 탐구한다. 지난 10일 이 공간에서 만난 밴드는 “정규 3집 수록곡들에 사용한 손악기들의 소리 조율을 이 곳에서 거의 다 했다”며 “야수 같고 날 것 같은, 묵직한 소리들의 기본이 되는 악기들의 상태를 최적화할 수 있었다”고 뿌듯해 했다.
 
1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악기숍에서 만난 밴드 해리빅버튼(왼쪽 이성수, 오른쪽 김인영). DIY 수리 공구들을 배경으로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한국 록 음악계의 야수, 해리빅버튼이 묵직한 3집 ‘더티 해리(Dirty Harry)’로 돌아왔다. 2017년 ‘맨 오브 스피릿(Man of Spirit)’ 이후 3년여 만에 선보이는 신작. 4일 음원으로, 11일 음반으로 나온 앨범은 3집의 맛보기인 시즌 1이다. 내년 무렵 시즌 2까지 완결시켜 하나의 거대 콘셉트 앨범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신보는 1960~1990년대 영화 중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가치를 담았다고 생각”된 ‘톱 5’를 추려 음악으로 각색했다. 앨범 수록 곡명은 영화 제목을 그대로 차용. 리더 이성수는 “지금은 ‘레트로’라 불리는 그 시대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잊거나 잊어버린 가치들이 존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수록곡들은 영화 그 자체의 스토리 보단 영화 속 캐릭터들이나 영화가 주는 무드, 시대상 같은 것들을 토대로 했다”고 설명했다.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대표 출연 영화 ‘더티 해리(Dirty Harry·1978)’가 앨범의 타이틀이자 첫 곡. 육중한 기타리프와 째질 듯한 하이햇, 심벌 난타로 곡은 도입부부터 허리케인 같은 광대한 소리 풍경을 만들어버린다. 이성수 특유의 야수처럼 굵고 거친 목소리가 포효한다.
 
‘미친 세상 내게 뭐라 한다 해도/내 마음 가는대로 내 발길 닿는대로’
 
해리빅버튼 이성수. 사진/해리빅버튼
 
영화는 연쇄살인범을 체포하는 형사 칼라한과 부패에 찌들어 범인을 결국 석방시키는 그의 상사 간 갈등을 다룬다. 이 사이에서 밴드는 ‘사회적 원칙이란 무엇인가’를 자문했다. “‘더티 해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최소한의 원칙이 다 깨져 버린 사회가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개개인은 어떻게 살아야하나 하는 고민이 문득 스쳤습니다. 곡은 ‘그럼에도 스스로의 원칙과 소신을 지켜가는 것’에 관한 이야깁니다.”(이성수)
 
상처를 단순한 패배의 상징이 아닌 저항의 산물로 본 알 파치노 주연의 ‘스카페이스(Scarface, 1981)’와 동명의 곡을 지나면 멜 깁슨 주연의 ‘매드 맥스 2(Mad max 2)’, 그 황량한 사막이 눈 앞에 펼쳐진다. 핵 전쟁으로 황폐해진 가상의 3차 대전, 석유를 둘러싼 끝없는 양육강식의 쟁탈전. 디스토션 건 기타가 불 뿜는 ‘소리 질주’는 사이버펑크 감성이 들끓은 그 세기말 현장 속으로 청자를 메다꽂는다. “Woof”라며 포효의 수위를 계속해 높이는 이성수의 묵직한 성음은 워보이들이 뒤따라올 것 같은 느낌을 줘, 듣는 내내 진땀이 난다.
 
해리빅버튼 이성수. 사진/해리빅버튼
 
우연히도 곡은 코로나19 여파로 연대, 결속의 의미가 시들해진 오늘날 우리 세계와도 닮아 있다. “우리의 삶은 평화롭게 보이지만, 실상 세기말 이후와 다를 바 없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이 세계의 희망은 슈퍼맨 같은 히어로 한 명이 줄 수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매드맥스에서는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고쳐가는 개개인들, 그들의 세계관이 현실적이고 흥미롭게 보였습니다.”(이성수)
 
앨범은 계속해서 “살며 잊거나 잊어버렸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 ‘청춘 스케치(Reality Bites, 1994)’와 동명의 곡은 에단 호크의 명대사로 앨범 전체를 한 문장에 요약해버린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댐배 몇 개피와 커피, 너와 나, 그리고 5달러’. “치열하고 각박한 이 사회에서 우린 소소한 가치의 소중함을 잊고 살진 않은지.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는 것, 결국 그런 것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라 생각했습니다.”(이성수)
 
라이브 연주 중인 해리빅버튼. 사진/해리빅버튼
 
앞선 곡들과 달리, 첫 마디부터 치고 들어오는 이 곡의 유려한 멜로디 라인은 이들을 단순 ‘하드록 밴드’로만 규정하는 틀을 일거에 허물어버린다. 흔히 영화 청춘스케치의 주제곡 하면 밴드 ‘더 낵’의 통통 튀는 플로어 탐의 리듬 새김과 말랑말랑한 기타(‘My Sharona’) 연주를 먼저 떠올릴 법 하지만, 이들의 모던한 사운드도 정갈하고 신선하다.
 
“앨범 재킷 디자인부터 음악 작법까지 레트로한 부분을 현대적이고 스타일리시하게 살렸습니다. 굳이 장르란 표현을 써야한다면 해리빅버튼 만의 ‘레트로 록’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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