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최기철

"내 딸 건드리지 마"…가해자 견제한 '학폭' 피해학생 엄마 '무죄'

2020-06-16 12:00

조회수 : 4,538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엄마가 가해학생에 대한 견제를 더 이상 못하게 된 상황에서, 'SNS 학부모 단체대화방'에 있는 자신의 '상태메세지'에 '학교폭력범은 접촉금지!!!'라는 글과 주먹 모양의 그림말을 올렸더라도 가해학생에 대한 명예훼손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아동복지법과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명예훼손 부분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16일 판결했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A씨는 부산의 한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자신의 딸 B양이 같은 반 친구인 C양으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하자 C양을 다른 반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했지만 학교폭력위위원회의 결정으로 거부당했다.
 
이에 A씨는 학교 측의 동의를 받아 직접 딸의 학교수업에 참관하는 과정에서 C양에게 "야, 내가 누군지 알제. 나 A 엄마다. 앞으로 A 건들지 말고, 아는 체도 하지마라"라고 말하는 등 C양을 지속적으로 견제했다.
 
이에 심리적으로 위협을 느낀 C양과 C양 부모가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에 A씨에 대한 '접촉·보복행위 금지'를 요청했고 자치위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A씨는 본인을 포함해 이 학교 같은 반 학부모 19명이 모여 있는 단체카톡방 자신의 상태메세지를 ‘학교폭력범은 접촉금지!!!(주먹 그림 세개)’라는 내용으로 설정했다. 
 
검찰은 A씨의 학교내 견제행위에 대해서는 아동복지법 위반(정서적 학대)을, 단체카톡방 상태메세지 설정에 대해서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를 각각 적용해 기소했다.
 
1심은 A씨의 행위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정서적 학대 혐의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명예훼손 혐의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한 행위가 다소 부적절한 측면이 있지만, 아동이 사물을 느끼고 생각해 판단하는 마음의 자세나 태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성장하는 것을 저해 또는 현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유기 또는 방임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다만, 명예훼손 부분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게시글을 게시한 경위와 동기, 게시글의 구체적인 내용과 표현방법, 게시기간 등에 비춰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검찰과 A씨가 모두 상고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학교폭력범’이라는 단어는 ‘학교폭력’이라는 용어에 ‘죄지은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인 ‘범(犯)’을 덧붙인 것으로서, ‘학교폭력을 저지른 사람’을 통칭하는 표현인데, 피고인은 ‘학교폭력범’ 자체를 표현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 특정인을 ‘학교폭력범’으로 지칭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학교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피고인의 지위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학교폭력범’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실제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에 관해 언급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접촉금지'라는 어휘는 통상적으로 '접촉하지 말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되고, 자치위 의결 등을 통해 피해자에게 피고인의 딸에 대한 '접촉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는 사실이 피해자와 같은 반 학생들이나 그 부모들에게 알려졌음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결국, 피고인이 상태메시지를 통해 피해자의 학교폭력 사건이나 그 사건으로 피해자가 받은 조치에 대해 기재함으로써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한 구체적 사실을 드러냈다고도 볼 수 없다"면서 "이와는 다른 취지로 피고인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한 원심은 옳지 않다"고 판시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 최기철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