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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관악구 모자 살인', '고유정 의붓아들 살인' 항소심 판단은?

두 사건 모두 물증 없이 간접증거만…각 1심, '사망추정시각' 판단 엇갈려

2020-05-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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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희대의 '증거 없는 살인 사건' 2건의 항소심이 이달 중 본격 진행된다. 각 사건 1심 재판부들은 각각의 피고인에게 모두 중형인 무기징역형이 선고했지만 간접증거에 대한 판단, 특히 검찰이 제시한 사망추정시각에 대해 상반된 판단을 내려 상급심 판단이 주목된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이른바 '관악구 모자 살인 사건' 혐의로 기소된 조모(43)씨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1심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조씨 역시 다음날인 29일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검찰 "사형", 피고인 "무죄" 주장
 
쌍방 항소지만 항소이유는 극과 극이다. 1심이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 것을 보면, 검찰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것으로 보인다. 살인죄의 법정 최고형은 사형이다. 검찰도 결심공판에서 사형을 구형했다. 반면, 조씨는 항소심에서 무죄를 주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1심이 인정한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범죄라는 점과 잔혹성, 패륜성 등에 비춰보면 검찰이 먼저 항소한 이 사건에서 2심 재판부가 1심 선고형 보다 감형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법조계 판단이다.
 
조씨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주장할 것으로 보이는 근거는 살인에 대한 직접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화면 캡처
 
조씨는 2019년 8월21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 사이에 서울 관악구에 있는 자택 빌라에서, 아내 A씨(40)와 아들 B군(4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들은 모두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에서 목부위만을 수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찔려 사망했다. 방어흔은 없었다. 사건 현장을 감식한 경찰 프로파일러는 수면상태에서 공격 당했다고 분석했다. 
 
경찰 현장검증 15회…증거 못 찾아
 
경찰은 15회에 걸쳐 현장을 조사했지만 범행도구인 흉기는 찾지 못했다. 시신에 남은 상처와 범인이 흉기를 닦느라 침대 시트에 남긴 혈흔으로 범행도구가 날 길이 8cm 이상의 흉기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루미놀을 통한 혈흔 반응 조사도 성과가 없었다. 피해자들이 사망한 안방 침대와 화장실 앞 매트, 부엌 빨래바구니 수건, 세면대 배수구에서만 피해자들 혈흔이 발견됐다. 범인의 동선은 물론, 안방 문 손잡이 마루 등에서도 피해자나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범인이 살해 후 B군을 덮어 놓은 베개도 마찬가지다. 지문이나 족적도 없었다. 조씨는 1심 재판에서 줄곧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손동환)는 조씨가 범인임을 인정했다. 결정적 증거는 피해자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을 전후해 조씨가 피해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법의학자 6명 공판 출석
 
검찰은 피해자 사망시각을 특정하기 위해 법의학자 6명을 공판에 출석시켰다. 법의학자 모두 부검 결과 위에 남아 있는 음식물 상태를 종합해볼 때 피해자들은 저녁 식사를 마친 지 4~6시간 내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A씨의 휴대전화 분석과 가족들의 진술들을 종합한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적어도 사망 당일 오후 7시30분 전에는 저녁 식사를 마친 것으로 판단했다. 즉, 8월21일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 사이에 사망했다는 결론이다.
 
이 시간 동안 피해자들과 빌라에서 함께 있었던 사람은 조씨가 유일했다. 빌라 인근 CCTV를 분석한 결과 조씨는 사건 당일 오후 8시56분에 승용차를 타고 빌라에 도착했다가 다음날 오전 1시35분쯤 다시 승용차를 끌고 빌라를 빠져나갔다. 피해자들의 방어흔이나 빌라 출입문 잠금장치가 비밀번호로 돼 있었던 점, 빌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외부로부터 강제로 물리력을 행사한 흔적이 없는 점 등에 비춰 면식범의 범행으로 추정된다는 사실도 조씨가 범인이라는 사실에 힘을 실었다.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화면 캡처
 
재판부, '사망추정시각' 인정
 
물적 증거나 목격자 등 없이 간접증거만 있는 사건이었지만, 결국 검찰이 특정한 피해자 사망추정시각이 재판부가 조씨의 유죄를 인정한 핵심 요인이 된 셈이다. 
 
최근 발생한 '증거 없는 살인사건' 중에는 '고유정 의붓아들 살인사건'이 있다. 역시 쌍방 항소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달 22일 첫 공판이 시작됐다. 오는 20일 두번째 공판이 열린다. 
 
1심을 맡은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정봉기)는 고유정에 대해 전 남편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나 의붓아들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고유정 사건' 1심, 사망추정시각 '부정'
 
재판부는 의붓아들이 청주 자택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2019년 3월2일 오전 4~6시 고유정이 깨어 있는 상태로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검찰과 법의학자들이 주장한 사망추정시각은 인정하지 않았다. 
 
판결문을 분석해 보면, 검찰은 사망추정시각 특정 근거로 위 내용물 분석 보다는 시반(시체에 나타나는 얼룩)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부검의나 법의학계 연구에 따르면, 시반을 통한 사망 추정시간은 정확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위 내용물 분석을 통해서도 정확한 추정시간을 분석하기는 어렵다고 하고 있고, 달리 이런 견해의 신빙성을 부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추정에 의한 사망시간 특정을 부인한 것이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고인 고유정(37)이 지난 2월20일 선고 공판을 마치고 제주지방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유정, 살해 동기 부족"
 
물론, 재판부가 피해자의 사망시각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만을 이유로 고유정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아니다. 검찰이 유죄 증거로 제시한 모든 간접증거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론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의붓아들과의 관계를 비춰봤을 때 고유정이 살해할만 한 동기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이 인정됐다. 친부인 홍모씨도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아들에게 엄마로서 잘해주려고 노력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홍씨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홍씨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거나 적어도 피해자를 양육해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피고인이 홍씨와의 단란한 가정을 꾸미기 위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검찰이 주장하는 범행동기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관악구 모자 살해 동기 충분"
 
반면,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 1심 재판부는 조씨에게 분명한 범행동기가 있다고 봤다. 법원에 따르면, 조씨는 2013년 결혼한 이후 6년간 일정한 수입 없이 도예공방을 운영하면서 대부분의 경제활동을 아내에게 의존했다. 금천구에 78평 규모로 얻은 3억짜리 공방에 대한 은행 대출금부터 렉스턴 승용차 할부금, 공과금까지 아내가 모두 부담했다. 육아는 물론이었다. A씨는 자신 소유의 부동산을 통해 임대료를 받고 있었지만 별도로 직장생활을 해야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조씨는 내연녀와 불륜관계를 이어가면서 경마에 빠져 살았다. 최근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조씨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끊고 이혼을 요구했다. 부부가 이혼을 하면 재산을 분할해야 하지만, 혼인 중 부부 어느 한쪽이 자식과 함께 사망하면 다른 한쪽이 모든 재산을 상속하게 된다.
 
"경제적 이익+극단적 성격"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피해자인 아내의 조언과 경제적 지원 거부를 자신에 대한 비난과 무시로 받아들여 강한 분노를 품게 됐고 피해자들이 없어지면 상당한 경제적 이익도 자신에게 돌아오고 내연녀와의 관계도 지속하면서 종전의 자유로운 도예활동도 가능하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면서 "이와 같은 동기에 자기중심적이고 극단적인 피고인의 성격이 더해지면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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