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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업자 책임 강화로는 n번방 재발 못 막아"

'n번방 방지법, 재발방지 가능한가?' 토론회 참가자들, 실효성·중복규제 문제 짚어

2020-04-2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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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최근 국회가 내놓은 'n번방 방지법'에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n번방 방지법에 포함된 인터넷 사업자의 불법 촬영물 필터링 및 삭제 등 기술적 조치 의무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중복 규제 우려마저 있어 법안 마련에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28일 서울 강남구 앤스페이스에서 개최한 'n번방 방지법, 재발방지 가능한가?'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배한님 기자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28일 서울 강남구 앤스페이스에서 'n번방 방지법, 재발방지 가능한가?'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20대 국회가 올해 발의한 디지털 성착취 범죄 대응 관련 법안 16개 중 인터넷 사업자의 의무 부과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법안 3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n번방 방지법 중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과 박광온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두 건과 미래통합당 송희경 의원이 발의한 성폭력범죄처벌법 개정안에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ISP)와 온라인서비스제공자(OSP)에게 불법 촬영물의 발견·삭제·전송방지·중단에 대한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날 '디지털 성착취 범죄 방지 법안 실효성 검토'를 주제로 발표를 한 최민식 경희대학교 교수는 인터넷 사업자에게 부가될 기술적 관리 의무가 불가능한 것이며 사생활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현재 해외에서 서비스하는 SNS 대화 내용은 종단간 암호화 상태로 저장돼 내용을 볼 수 없고, 모든 사업자가 이것을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필터링이 불가능하다"며 "아울러 이는 모든 통신 대응 사업자가 개인 간 대화를 다 검열하라는 이야기인데 이는 불가능한 의무를 부과하며 요행을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질적 범죄는 해외 사업자 망 서비스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내버려 두고 국내 사업자를 규율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가 민간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도 이에 동의하며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반복되는 원인은 지나치게 낮은 형벌로 인한 법의 위하력 상실과 국제공조 역량의 미흡에서 시작되는데 이에 대한 분석이 선제돼야 한다"며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인 방심위의 선삭제, 후심의 절차 도입, OPS책임강화 규정 등은 모두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했다. 
 
중복규제 문제도 지적됐다. 최 교수는 "현재도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저작권법 등에 인터넷 사업자에게 불법 촬영물 등 불법 정보 유통 금지가 규정돼 있다"며 "기존에 충분히 규율하는 법들이 있는데 국회와 정부가 여론에 따라 경쟁적으로 여러 법안을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도 있는 법체계를 먼저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사무총장은 "최근의 대안들은 사건의 본질에 정밀하게 대응할 수 없는 대책들로 신중하게 논의돼야 하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전기통신사업법, 저작권법, 정보통신망법 등 현존하는 규제를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넷 사업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정진근 강원대학교 교수는 "최근 논의되는 ISP에 대한 규제는 n번방의 책임을 범죄자가 아닌 ISP에 초점을 맞추도록 해 문제의 핵심을 희석시킬 수 있다"며 "ISP를 범죄의 방조자로 보는 입법 태도에서 벗어나 수사와 증거보전, 그리고 범죄자 처벌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입법안이 설계돼야 한다"고 했다. 
 
황용석 건국대학교 교수도 "범죄의 수단인 기술 체계 자체를 범죄 행위로 인식하는 사회적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며 "여론을 의식한 입법이 법체계의 불완전성을 초래하고 있으니 시간을 들여 법령 간의 관계 등 법체계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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