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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kjb517@etomato.com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사냥의 시간’에 시달린 한국영화의 짧았던 시간

2020-04-17 17:03

조회수 : 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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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다 제쳐두고, 그 분이 이렇게 무리한 선택을 할 분이었는지 의아스럽다. 혹시 이 업계를 떠날 생각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극적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상처뿐인 화해다. 영화 사냥의 시간논란은 16일 오후 늦게 이해 당사자인 리틀빅픽쳐스와 콘텐츠 판다가 만나 합의점을 도출했다. 결과적으로 리틀빅픽쳐스는 이 논란의 시작점이 된 넷플릭스 공개를 이뤄낼 수 있게 됐다. 또한 콘텐츠 판다는 자신들의 신뢰에 흠집을 남기지 않고, 해외 바이어들과의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게 됐다.
 
봉합이 됐다. 이제는 밝혀도 될 듯하다. 사실 못 밝힐 내용도 아니다. 다만 오해의 소지가 있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리틀빅픽쳐스를 이끄는 A대표의 당시 선택이 나 역시 놀라웠다. 깊은 친분을 나누고 있는 분은 아니었지만 영화 현장에서 많게는 수십 차례를 만나며 그 분의 성격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 A대표는 상당히 격앙돼 있었다.
 
영화 '사냥의 시간' 스틸. 사진/넷플릭스
 
 
투자배급사라고 하지만 기존 영화계의 대기업 계열 메이저 투자배급사에 비해서 리틀빅픽쳐스는 사세가 영세한 규모였다. 무려 100억이 넘게 투입된 사냥의 시간이 뜻하지 않게 코로나19 여파로 국내 개봉이 불투명해지고, 여름까지 이어질지 모를 상황에서 고민과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리틀빅픽쳐스가 넷플릭스와 미팅을 하고 있단 루머도 듣던 차였다. 그리고 보도자료를 통해 나온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공개는 크게 두 가지를 가늠케 했다.
 
“A대표의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무리한 선택을 하는 심적 배경의 진짜가 있을까
 
앞선 한 줄은 리틀빅픽쳐스의 존폐 여부였다. A대표도 실제로 나와의 통화에서 존폐란 단어를 수 차례 쓰며 넷플릭스 공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전했다. 이미 콘텐츠 판다가 해외 30개국에 이 영화를 판매 대행한 상황에서였다. 해외 판매대금이 들어온다고 해도 100억이 넘는 돈이 이미 집행된 상황에서 국내 홍보 마케팅을 위해 추가 금액을 집행할 여력도 없었다. 해외 판매대금이 들어온다고 한들 숨통이 트일 것 같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편에선 A대표의 이런 선택을 의아스럽게 바라봤다. 당연히 자신이 이끄는 회사의 존폐를 위해서라면 어떤 탈출구라도 선택했어야 한다. 하지만 원만한 합의 과정이 아니었다. A대표도 전화통화에서 끝까지 가면 할 말 정말 많다고 격앙돼 있었다. 그 말 속에는 콘텐츠 판다의 비합리적 대응이 있었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법원을 통해 국내를 제외한 해외에서의 사냥의 시간공개 불가였다. 이를 어기고 공개를 하게 되면 하루에 2000만원을 리틀빅픽쳐스가 콘텐츠 판다에게 손해배상 개념으로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논란에 대해 여러 영화 관계자들은 리틀빅픽쳐스를 비난하면서도 그 수위가 오묘했다. 격앙된 비난이라기 보단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왜 그랬을까란 의문이 숨어 있었다. 한 영화 관계자가 전한 이 업계를 떠날 생각인가란 말에 기묘할 정도로 힘이 실렸다.
 
그리고 16일 오후 양측이 극적으로 합의를 이끌어 냈다. 콘텐츠 판다가 법원에 제기한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취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리틀빅픽쳐스가 사냥의 시간을 사들인 해외 30개국 영화사에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도 포함됐다.
 
이날 리틀빅픽쳐스와 콘텐츠 판다가 각각 언론에 공개한 입장문을 보면 강한 늬앙스의 차이가 있었다. 리틀빅픽쳐스는 사과’ ‘이해’ ‘감사’ ‘죄송등이 연이어 담겨 있었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에 대한 사과를 받아 준 콘텐츠 판다 측에 감사하다는 의견이 담겨 있었다. 이 모든 사과문은 회사 명의가 아닌 대표 명의였다.
 
반면 콘텐츠 판다는 논란에 대한 영화 팬들과 자사를 믿고 거래해 준 해외 바이어들에 대한 사과 그리고 상황 자체에 대한 설명으로만 일단락 돼 있었다.
 
수 차례 언급했지만 전례 없던 상황이었고, 또 마무리 역시 전례 없던 상황으로 끝을 맺었다. 무리한 추진이었는지, 아니면 큰 그림을 본 누군가의 농간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남는 것은 한 가지다.
 
상처뿐인 싸움의 결말이었고, 누군가는 분명히 웃고 있단 점이다. 영화 사냥의 시간은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 공개가 된다.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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