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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법적 책임 소재는?…메르스땐 '국가 배상' 일부 인정

"환자와 유족에게 주의의무 위반 증명 책임 있어 승소 어려워"

2020-01-2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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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우한 폐렴'으로 불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희생자가 나온다면 그 법적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수 있을까. 이와 관련 2015년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재판이 주목받고 있다. 메르스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국가와 병원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법정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국가는 병원과 책임 여부를 따지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증상이 있으면서도 외부와 접촉한 환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9일 법원 등에 따르면 5년 전부터 메르스 감염 피해자들은 대한민국 정부와 의료기관들을 상대로 줄줄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국가의 과실을 인정받았다. 2018년 30번 환자 이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항소심 선고에서 서울중앙지법은 메르스 의심환자 신고에 따른 검사와 조사 등 조치가 지연된 책임이 있다고 보고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자녀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가 메르스에 감염돼 사망한 104번 환자의 유가족도 국가와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내 1억여원의 손해배상을 받았다. 지난해 9월 다른 메르스 환자의 유족들도 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 2900여만원을 배상받았다.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내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해 설치된 선별 진료소 앞에서 의료진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환자들의 손을 들어준 재판부들은 대부분 보건 당국의 관리 감독 부실을 인정했다. 법원은 보건 당국이 1번 환자가 중동지역 방문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입원했던 평택성모병원에 대한 역학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감염원으로 추정되는 후속 환자들에 대한 조치도 지연됐다고 본 것이다. 
 
다만 패소 사례도 적지 않다. 대법원은 지난해 4월 38번 환자 오모씨의 딸·아들이 국가·대전 대청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법원은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질병관리본부가 수행한 메르스에 대한 사전 연구 등이 재량의 범위를 일탈해 현저하게 부실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환자 본인이 아닌 유족들이 국가기관이나 지자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승소율이 더욱 떨어진다.
 
손해배상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환자나 유족들이 스스로 국가나 병원이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김제헌 변호사는 "국가기관이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감염병이 확산됐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서도 "원고 측이 국가기관과 병원이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므로 환자들이나 유족들의 승소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병원에게 책임을 묻는 일도 어렵다. 보건복지부가 "삼성서울병원에도 메르스 확산방지 실패의 책임이 있다"며 내린 과징금부과 처분에 삼성서울병원이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 복지부는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패했다. 1심과 2심은 서울삼성병원이 접촉자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신속하게 대응에 나섰고 복지부 장관의 명령을 위반한 바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해당 재판은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들 일부가 수일간 외부활동을 했으며 발병 지역 방문을 숨겼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이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 때를 감안해보면 감염병 환자들이 감염병예방법을 위반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감염병예방법은 제79조에 근거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고 있다. 다만 역학조사를 거부·방해하거나 거짓 진술을 하고 거짓 자료를 제출했을 경우에 한정한다. 
 
김 변호사는 "환자가 증상만을 보고 감염병 임을 알아차리고 병원에 가서 신고 후 진단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그렇다고 감기, 볼거리 등 감염 가능성이 있는 병에 걸렸다고 해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도 없어 환자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로 확산 중인 제주국제공항에서 마스크를 쓴 이용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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