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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남

피해자, 투자자, 소비자

2019-12-0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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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신병남 기자]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사태가 진행되면서 눈에 띄었던 점 중 하나는 은행 상품을 구매한 고객에 대한 지칭 변화입니다. 올해 광복절을 전후로 확대된 사태 초기에는 '피해자'란 명명命名이 다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상품을 구매한 대다수의 고객들이 원금손실이 예정된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1조원 규모의 손실 예상액, 위험한 파생상품 구조, 은행의 불완전판매 등 이익에 눈먼 은행에 고객들이 해코지를 당했다는 양상이 컸습니다.
 
취재를 하며 들었던 은행들의 입장은 변명으로 들렸습니다. 사태와 무관한 은행들도 '백데이터'를 말하며 해당 상품이 과거 사태에 비춰 손실이 날 확률이 매우 낮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트럼프 리스크가 확장돼 전례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당국자가 '갬블(Gamble)'에 상품을 비유했지만, 5%대 수익률과 100% 손실률의 비상식적인 상품을 두고 은행, 고객, 정부 모두 어떤 시각을 가졌을 지는 분명합니다. '손실 가능성이 없다.' 수익 가능성이 손실 가능성에 월등하지 않고서야 해당 상품은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금융감독원이 이례적인 '중간 검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피해자란 이름은 조금씩 옅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수차례 사모펀드(DLF)에 잇따라 가입한 '투자자'들이 상당수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상품에 대한 이해 없이 권유와 강요에 따른 피해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상품 구조상 고액 자산가들도 적지 않을 거란 음지의 지적이 양지로 올라온 순간입니다. 아니 감독부실 논란을 받던 금융당국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피해자 대신 투자자가 부각되길 바라는 발표로까지 보였습니다.   
 
지난 11월을 전후로 해서는 기류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해당 해외금리들이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면서 본래 상품에 고지된 대로 수익을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KEB하나은행이 판매한 상품 중 오는 11일에 만기가 도래하는 DLF는 3.7% 수익이 날 전망입니다. 이제 DLF에 투자한 은행 고객에 대한 시선이 불분명 합니다. 이제 모든 매체에서 투자자란 명명이 지배적입니다. 당국도 관리책임에서 벗어나고 은행도 책임소지가 줄어드는 편리한 이름붙이기가 되고 있습니다.
 
아직 진행 중이지만 DLF사태를 둘러싼, 상품을 구매한 고객들은 피해자일까요, 투자자일까요. 아니면 권익도 보호해야하고 편익도 지켜줘야 할 '금융소비자'일까요. 현장에서 다양한 명명법이 오가는 양태를 보고 있자니 헷갈리기도 하고 그 안에 감춰진 속내들도 다양하다고 느낍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아무리 일부라지만, 다시 수익률이 났다고 하지만, 판매되지 않아야 할 사람들에게 판매가 됐다는 점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다른 모든 걸 차치하고 '피해자'라 쓰고 싶습니다.  
 
DLF·DLS 피해자 비대위 및 시민단체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DLF사태 관련 금융당국의 책임 촉구 및 금융위·금감원·고용보험기금 감사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병남 기자 fellsic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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