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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경

(데스크칼럼)'74년생 박영호'

2019-11-15 06:00

조회수 : 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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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이 화제다. 개봉 전부터 논란이 일었던 이 작품은 개봉 후 박스오피스 좌석판매율 1위를 기록하며 흥행 행진 중이다. 이처럼 영화의 내용을 두고 우리 사회에서 뜨겁게 논쟁이 펼쳐진 적은 드물다. 198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에 자라고 2000년대를 사는 한 인물의 평범한 이야기가 세대와 성별을 아울러 공감을 주고 있어서다. 페미니즘이든 반페미니즘이든 어쨋든 82년생 김지영은 이들 세대의 아픔과 고민을 적절하게 스토리로 엮어 풀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쯤에서 기자는 '74년생 박영호'를 돌아보게 된다. 특정인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해당 세대를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박영호의 현실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13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을 보면서 문득 박영호가 떠올랐다. 10월 취업자수는 41만9000명 증가해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고, 15~64세 고용률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물론 정부 재정투입 일자리가 늘어난 탓에 노인 일자리만 증가했을 뿐 청년 일자리와 일자리 질 자체는 좋지 못하다는 비판도 상당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잡히는 단어들이 있다. 바로 '40대와 제조업'이다. 모든 연령대의 고용률이 상승했음에도, 40대 고용률은 0.6%포인트 하락했다. 제조업 취업자는 8만1000명 감소하며 19개월 하락세다. 
 
74년생 박영호로 대변되는 세대는 54만명이 아닌 120만명이 넘는 수험생 사이에서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해야 했고, 성인이 된 후에는 편지에서부터 스마트폰까지 기술의 발전을 온 몸으로 느꼈다. 취업의 문턱에서는 IMF외환위기를 마주해야 했고, 직장을 다니면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어느덧 40대 중반. 드라마 '미생'에서 비유된 전쟁터 직장을 떠나 지옥과 같은 직장 밖 현실을 접해야 하거나, 이미 자영업으로 그 지옥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이 바로 74년생 박영호다. 
 
정부와 기업은 4차 산업혁명 육성으로 신산업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고,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기조 하에 혁신에 매진하고 있다. 노인 일자리는 정부 재정 투입으로 어느정도 해소될 수 있는 측면이 있고, 신산업은 새로 고용시장에 유입되는 에코세대에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산업도 좋고 노인 일자리도 좋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조업은 우리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이다.
 
성과를 내기 위한 단기 대책에 집착하기 보다 우리 시대와 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풀어가는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장 산업화 시대 시각에서 비롯된 직업훈련부터 업종과 분야를 획기적으로 다양화 하고 세분화해야 한다. 중장년층 고용 연장과 신규 채용 기업에 인센티브를 더 부여하고, 대기업 골목상권 진입 제한 생계형 적합업종 지원도 늘려야 한다.
 
"퇴직 후를 대비해 직장에 있을 때부터 짬을 내 10개의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정작 일자리를 알아보러 가면 나이가 애매하다며 채용을 꺼리는 사업주가 많다"고 토로하던 남성과 "가게를 운영하면서 매달 임대료와 비용을 제하고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 안팎 뿐"이라고 울먹거리던 여성 버전 74년생 박영호. 현장을 취재하면서 만난 이들의 표정은 고용동향을 취재할 때마다 눈에 아른거린다.
 
권대경 정책부장 kwon21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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