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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현장에서)'국화와 칼'과 일왕 즉위식 참석문제

2019-10-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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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정치부 기자
오는 2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나루히토 천황(일왕) 즉위식에 우리 정부에서 누가 대표로 갈지가 관심사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 중 누가 갈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일왕 즉위식에 문 대통령이 가는 것 자체가 일본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계속 주장한다. 조 교수는 "현 한일관계와 별개로, 문 대통령이 가는데도 불구하고 (나루히토 일왕이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만나주지 않는다면 일본 내에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무슨 말일까.
 
미국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은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책이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 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에서 "동양인이 부채를 지고 있는 것은 과거에 대해서만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다른 사람과의 나날의 접촉 모두가 현재 그의 채무를 증대시킨다"며 "일상적인 의사 결정과 행동은 틀림없이 이 부채로부터 발생된다"고 썼다.
 
일본인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베네딕트는 영어의 '오블리게이션(obligations·의무)'에 해당하는 일본어를 恩(온)이라고 밝히며 "사람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짊어질 수 있는 부담, 채무, 무거운 짐"이라고 설명했다. 이 감정은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일왕 즉위식에 누가 가야하는지는 명확하다. 이번 방일은 나루히토 일왕 즉위로 열린 '레이와 시대'를 축하하는 의미다. 만남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적은 자리다. 문 대통령이 갔음에도 일본 지도자가 만남을 거부한다면, 그에 따른 '온'은 일본이 지게 된다.
 
역대 일왕이 한일관계를 놓고 보여온 입장도 고려함직 하다. 일왕들은 과거 "양국 간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금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1984년 9월6일, 히로히토 전 일왕), "우리나라가 가져다드린 불행한 시기에 귀국 사람들이 경험한 고통을 생각하면 저는 '통석의 념'을 금할 수 없다"(1990년 5월24일, 아키히토 전 일왕)는 발언을 이어왔다. 나루히토 일왕도 지난 8월15일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해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을 표명했다.
 
박명희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아키히토 일왕은 세계 각지의 전쟁에서 희생당한 전몰자에 대한 위령을 지속하고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해왔다"며 "이같은 맥락에서 일왕이 한일관계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국내 일각의 주장이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방일은, 나루히토 일왕이 선왕들의 기조를 이어가기를 바란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하는 신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일 간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는 일반론만 반복하는 청와대가 생각해볼 대목이다.
 
최한영 정치부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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