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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토마토칼럼) 검찰 인사 '유감'

2019-08-08 02:00

조회수 : 4,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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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2기 검찰이 인사 후폭풍으로 소란스럽다. 법무부와 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 전후로 검찰을 떠난 검사들이 7일 기준으로 60명을 훌쩍 넘어 70명에 육박한다. 지금도 사퇴를 고민하는 검사들이 있다고 하니 후폭풍 끝 옷을 벗은 검사들이 몇명일지는 알 수 없다.
 
유례를 찾기 힘든 이번 사태는, 지난 31일 고검 검사급 인사 발표 이후 문제의 본질이 분명해졌다.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전 후로 사표를 낸 검사장급 이상 고위 검사는 14명, 나머지 50명 이상 검사들이 차장검사와 지청장, 부장검사급이다. 검사장급 이상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차장과 지청장, 부장검사급이 대거 사퇴했다는 현실은, 검찰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심각성을 부정할 수 없다.
 
'검찰의 꽃'이 검사장이라면, '거악척결 전선'에서 손에 피를 묻히는 이들이 바로 차장과 지청장, 부장검사들이다. 이들은 모두 15년 이상 일선에서 수사경험을 촘촘히 쌓아 온 베테랑이요, 고위 검사들과 평검사들 사이에서 검찰을 지탱하는 허리다. 2~3년 후 검사장을 역임한 뒤에는 잠재적 총장 후보군에 오르는 자원들이기도 하다. 
 
이렇듯 귀한 국가자산들이 대거 검찰을 빠져나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일각에서는 윤 총장 임명을 필두로 검사장, 고검 검사급 인사까지 이어진 기수 파괴와 '윤석열 사단'을 위한 코드인사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는 모르고 하는 얘기다. 기수 파괴라면 2017년 촛불정부가 들어서면서 윤석열 당시 대전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한 것이 더 파격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검장 자리였던 서울중앙지검장의 급도 검사장급으로 낮아졌다. 야권에서는 이를 두고 오직 윤 지검장을 임명하기 위한 꼼수를 부렸다고 청와대를 두고두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중견 검사들의 대량 이탈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검사장으로 승진 한 사법연수원 기수가 지나치게 낮은 것이 후폭풍을 불렀다는 비판도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지금 인사가 갖지 못한 명분이 있었다. 일종의 검찰 조직 내 합의랄까.
 
2017년 5월부터 9월까지 넉달에 걸쳐 구성된 서울중앙지검은 국정농단과 적폐사건 수사와 공소유지를 위해 '정규조직으로 구성한 TF'성격이 짙었다. 촛불혁명의 완성을 위한 시대적 요청에 대한 대답이다. 
 
꼭 뒷말을 남기는 검찰 인사도 이때 만큼은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 대한민국 검찰은 '상명하복', '검사 동일체' 등이 관습법으로 기능하는 경직된 조직이기에, 통수권자가 소위 "까라면 까"란다고 따르는 무리가 아니다. '검찰 조직 내 합의'가 주요 명분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기이한 현상이나 사실이다.
 
2017년 이 명분이 확보될 수 있었던 것은 수뇌부를 비롯한 고위 검사들의 다독임과 원치 않는 보직을 맡게 된 당사자들의 양보였다. 여기에 '서울중앙지검의 TF'화에 따른 파격 인사가 단행되기 훨씬 전부터 알음알음 예고된 것도 완충 역할을 했다. 당시 검찰 인사에 관여한 한 고위 인사는 "물 먹은 검사들에게 '미안하다. 다음에 보자. 전체적으로 하다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설득하니 당사자도 겉으로는 '너희끼리 다 해쳐먹어라"하고 욕해도 남는 앙금은 없었다"고 했다.
 
이번 인사는 이런 '위무(慰撫,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램)'가 없었다. '위무'는 비단 검찰 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에 대한 인사권자의 '의무'다. 이것은 수사권 조정이나 검찰개혁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위무의 의무자'인지는 검찰청법을 보면 또렷하게 나온다. 검사 인사에 대해 정한 검찰청법 34조1항은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돼 있다.
 
위무가 없는 인사란, 이 얼마나 비정한 것인가. 그러니 이번 인사에서 조직을 떠나는 검사들이 많고 그 들 중에 '정말 아까운' 검사가 적지 않은 것이다. 노력과 능력의 대가로 전례 없는 승진과 좋은 보직을 갖게 된 '남은 자'들도 마냥 기쁘고 편안한 마음이 아님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연일 시끄러운 검찰은 곧 큰 강처럼 유유히 흐르겠지만, 다음 인사 때 그 깊은 밑바닥이 어떻게 변할지 참으로 저어된다.
 
최기철 사회부 기자·뉴스리듬 팀장(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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