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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노트르담 복원법'에 겹치는 한국 국회

2019-07-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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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개월 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휩싸여 첨탑과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많은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그간 노트르담을 사랑했던 세계인들은 재건축을 위한 성금행렬에 동참했다. 화재발생 이틀 만에 사람들이 약정한 성금은 한화로 1조원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은 이 뉴스를 보고 노트르담 재건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리라 믿었고 프랑스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할까. 지난 8일 파리 대주교가 RTL(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지금까지 들어온 성금은 3800만유로(한화 약 503억원)에 불과하다. 기부자들이 약속한 성금의 5%에 불과하다. 거액 기부자들은 현행 약정규정이 너무 엄격해 쉽게 돈을 내놓고 있지 않는 것이다.
 
복원을 위한 법률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지난 3일 프랑스 국회는 재건축을 위한 새 법안을 채택했다. 이날 새벽 3시30분, 약 40여 명의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32명이 찬성하고 7명이 반대했다. "노트르담 재건에 있어 우리는 절대로 신속함과 성급함을 혼동하지 않을 것이다." 프랑크 리에스테르(Franck Riester) 문화부 장관은 파리 노트르담 재건에 관한 법안을 놓고 적지 않은 반대가 있자 끝까지 남아 설득했다. 프랑스 의회는 노트르담이 불탄 뒤 9일 만에 법안을 긴급 검토했지만 적지 않은 문제에 부딪쳤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약속한 재건축 기간 5년은 합당한가. 재건축은 불타기 전 모습과 꼭 같아야 하는가. 문화재 규정을 지키는 선에서 현대식으로 재건할 것인가. 성금은 충분한가. 그리고 흑자를 가져올 수 있는가. 혹시 성금이 부족하다면 누가 재정을 지원할 것인가. 기부자들에게 세금을 인하해 줄 것인가. 공사를 감독할 특별기관을 설치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기관이 할 것인가. 공사 지휘는 문화재, 환경, 도시화, 고고학 규정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많은 문제를 둘러싸고 공방이 오가다 법안 채택은 무산됐다.
 
이번에도 역시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좌파정당인 <불복하는 프랑스>의 장 뤽 멜랑숑(Jean-Luc Melenchon) 대표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성금은 성금이다. 따라서 성금을 낸 사람들에게 보상은 필요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우파의 저격수로 나선 콩스탕스 르 그립(Constance Le Grip) 의원은 화재 후 국민 화합을 끌어내지 못한 마크롱 정부의 책임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182년 된 노트르담 대성당을 너무 성급히 재건하려는 의지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립 의원은 "이 성당은 오래된 유적이다. 우리는 신중하고 조심성 있게, 그리고 겸허히 행동해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이 종교적 고딕 예술의 귀중한 보물을 현대식으로 재건축하는 것은 덧없는 일이다. 재건은 화재 전 상태로 복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리에스테르 장관은 법안의 기본원칙은 양보하지 않는 선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의원들과 가능한 한 타협을 하려는 자세를 유지했다. 그는 "후원자들의 관대함에 성의표시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이 악용하지 않도록 철저히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아울러 "노트르담 재건축을 21세기에 걸맞은 현대식으로 할지,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 목재를 이용할 것인지 등은 투명한 방법으로 재검토하겠다"고 제안했다. 저녁 무렵 시작된 토론은 결국 새벽 3시30분 법안 채택으로 마무리됐다.
 
이를 지켜보면서 한국 국회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우리 국회의 모습과 너무 판이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설득과 타협을 한쪽은 멋지게 보여주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한국 국회는 파행이 일상이고, 설득과 타협대신 고성이 오간다. 얼마 전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를 저지하겠다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문희상 국회의장실을 항의 방문하고,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을 감금한 장면을 상기해 보라. 설득과 타협대신 완력을 쓰는 정치인들이 난무하니 우리 정치가 이 모양이다. 어디 그뿐인가. 80일간 국회가 파행을 거듭한 것도 지나칠 수 없다. 국회의원 한 달 월급이 1000만원이 넘는 판국에 구호만 외치다 월급을 받아가니 국민의 세금이 너무 아깝다. 오죽하면 국회의원 본인이 나서 국회의원을 임기 중 소환해 파면할 수 있게끔 하는 국민소환제를 주장하고 나설까.
 
물론 제도적 장치가 만사는 아니다. 제대로 된 정치인을 배출할 수 있는 문화가 전제돼야 한다. 지금처럼 다른 분야에서 종사하다 여의도를 은퇴 후 재취업 장소로 여기는 정치인들이 많다면 국민소환제 역시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트르담 재건축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독자에게 알려주고자 시작한 글이 결국 정치이야기로 끝을 맺어 아쉽다. 하지만 노트르담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한국정치가 신사정치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런 바람에서 프랑스 의회의 노트르담 재건축 법안채택 과정과 우리정치를 결부시킬 수밖에 없었다. 정치와 민주주의의 성숙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차원에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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