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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고르

문하시중 이야기

2019-07-05 13:42

조회수 :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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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공식적인 의견이 아닌 사견입니다. 해당 언론사의 편집방향과 무관합니다. 이 글은 한국의 정치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한국정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시민들의 토론과 토의를 유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기사가 나왔다.
 
[정가 인사이드] 총리 교체 3가지 시나리오...이낙연 후임에 김진표 급부상
 
뉴스핌 기사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보니 김진표 의원과 관련한 총리후임설은 뉴스핌이 유일하다. 
 
1. 의문이 든다. 
공식적인 채널로 인한 보도인가. 정치인들의 사견에 의한 기사인가. 실체를 확인하기 어렵다. '급부상'이라는 단어에서 객관성을 알기 어렵다. 혹은 통상적인 주관성도 확보되지 않는다. 소문이거나 소문을 일으키거나로 보인다. 이낙연의 후임인가?

2. 총리 하마평이 돈다.
여성총리론도 들린다. 어디까지나 소문이다. 김현미 장관, 추미애 의원, PK 총리론 등 설이 난무한다. 현 이낙연 총리의 유임론도 나온다. 이것들은 모두 언론이나 혹은 유튜브 정치 채널에서 나온다. 혹은 이들이 지역구 출마의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점친다. 소문이 소문을 낳는다. 아마 여론을 시험하고 움직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정치와 언론은 유착관계다. 민주당 내부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며 제3신도시 문제로 지역구가 밀려 변수가 된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여성총리론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보통 언론이라고 한다. 어쩌면 여성쪽에서 주장한 것이 아닐까?
 
3. 경제통 김진표 총리설
언론에 따르면 친문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라고 한다. 친문, 비문, 반문은 구분하기 힘들다. 붙이기에 따라 친문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 김진표 의원은 '구직대신 창직하라'는 책을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경제부총리를 지냈다. 하지만 '창직'과 '창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해결법을 내놓을지 미지수다. 위 뉴스핌의 기사를 보면 '문희상 의장이 지원한다'는 얘기와 '김진표만한 중량감있는 사람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든다. 이 이야기들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다. 말 그대로 설이다. 소문이거나 사석에서 나온 말일 것으로 보인다.
 
4. 2020 총선
내년 총선에서 문제는 대북정책이다. 야권에서는 대북라인을 문제삼는다. 물론 친정부 측에서도 이견이 많다. 흔히 학생운동 시절 민족해방계열(NL)의 제국주의 식민사관에 갇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급변하는 세계에 처지는 생각"이라고 내세운다. 대체로 이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안으로 정세현씨를 내세운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다. 현재 대북라인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씨가 "북한 전문가이며 외교를 알고 실무를 잘한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현 대북라인의 '제3세계'와 관련한 NL 이론을 내세운다면 지금의 세계관과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가 총선에서 여권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5. 종교와 정치
김진표 의원에 대해서는 종교가 따라붙는다. 특히 K목사와 연관된 문제에 민감하다. 이 목사는 야당 대표와도 인연이 있다. 특히 여권 내부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다. '김진표 의원와 사이가 안좋은 유력 '스피커'들을 버리게 된다'. 물론 일부의 주장일 뿐 객관성은 없다. 그동안 과정을 봐왔을때 김진표 의원과 날을 세웠던 스피커들이 입장을 바꿀 이유는 없다.
 
6. 여성총리 대안
김영란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손혜원 의원도 마찬가지다. 판단은 시민들이 한다. 총선은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다. 후보들의 하마평과 이들을 흔드는 세력이 난무한다. 
 
5. 유력 스피커는 누구인가
누군가 총리가 되거나 하마평이 오르면 호위무사들이 나온다. 호위무사들도 경제적,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애국애족을 순수한 목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다.
 
6. 재계의 시각
총리에 대해서는 재계도 관심사다. 돈줄이 중요하다. 대기업은 누가 총리를 했으면 할까? 정경 유착관계는 심증과 물증이 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재계도 분명히 관심이 있다. 유착은 가능성일 뿐 예단할 수는 없다. 이런 소문도 있다. 총리를 만드는 키플레이어가 있다는 것. 과거 스캔들로 현재는 재야에서 활동한다는 사람. 물론 소문이라 추측성 글을 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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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이 동화는 원래 온즈의 마법사이다. 금본위제를 은본위제로 바꾸자는 의도가 있었다. 금은 은보다 문제가 많았다. 먼저 왜 금이 화폐의 수단이 됐는지를 알아야 한다. 금은 안변한다. 다른 금속은 산소에 반응한다. 그래서 녹슨다. 금은 중금속이라 먹지도 못한다. 금은 자연에서 반응하지 않는다.
 
치아에 금을 넣는 이유기도 하다. 다른 금속을 치아로 만들면 부작용을 일으킨다. 금은 반짝반짝 빛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을 끈다. 귀금속으로 신분의 상징이 됐다. 무엇보다 금은 귀하다. 희소성이 있다. 희소성을 가진 귀한 금속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통주관성을 가진 금속은 금이 유일하다. 사실상 객관성에 가까운 화폐의 역할이다. 금에 시비를 거는 문명인은 없다.
 
과거에는 화폐를 소금으로 사용했다. Salary의 원어는 Salt에서 나왔다. 소금이 귀해서 돈으로 썼다. 조선시대에는 옷감이 돈으로 사용됐다. 화폐는 하지만 작아야 했다. 교환의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닳아없어지지 않아야 했다. 딱 적당한 것이 금이다. 그리고 캐기가 쉽지 않아 양이 적다. 이런 이유로 서양은 금본위제를 썼다. 반면 중국은 은본위제를 사용했다. 은은 금에 비해 양이 많았다. 
 
하지만 금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금은 화폐공황을 유발한다. 희소성의 역설이다. 금값이 오르면 사람들이 유통을 하지 않는다. 팔아먹기 위해 축적한다. 금이 품귀현상으로 값이 오르는 것이다. 
 
물건을 많이 만들어 경제가 성장하면 금도 많이 유통되야 한다. 하지만 희소성으로 인해 물건이 만들어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금이 상대적으로 귀해져 값이 오른다. 유통되는 금이 부족하니 재테크 수단이 된다. 신용경색이 생겨 금값이 더 오른다. 결국 금을 더 움켜쥐려고 한다. 유통의 수단이자 축자의 수단이 된다. 
 
금으로 돈을 버는 세상. 악순환이 반복된다. 오즈의 마법사는 이런 이유로 온즈의 마법사를 의미한다. 은본위제가 되면 금으로 돈을 버는 악덕 자본가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 주제다. 더 좋은 세상이 온다는 메시지다. 은이 더 많기 때문에 경제불황을 통제하기 쉽다는 것이다. 
 
결국 은본위제는 실패했다. 그리고 금본위제를 폐기하려는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지폐로 바뀐다. 금은 무대 뒤로 숨었을 뿐 실제 수렴청정을 하고 있다. 금은 전략자원이 됐다. 한국도 IMF때 금을 사고 팔았다. 안그랬으면 망했을 수도 있다. 전세계 금의 50%는 미국에 있다. 세계 경제를 통제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다. 마이 프레셔스를 외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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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이란 어디에 있을까? 우리 안에 있을까? 나의 밖에 있을까?  앎이란 무엇일까? 지식이란 정체가 무얼까?
 
앎에 대한 궁금증은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나뉜다. 합리론은 앎이란 우리 머리안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로 이어진다. 반면 앎이란 경험을 통한 것으로 감각으로 알게된다는 주장. 이것은 경험론이다.
 
로크에서 버클리, 흄으로 이어진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앎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그것은 앎이란 존재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이말은 '우리는 정말 알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합리론과 경험론은 칸트가 집대성한다. 그리고 헤겔로 이어진다. 
 
경험론의 로크는 데카르트에 대비된다. 둘은 공통점이 있다. 지식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기는가에 의문을 품었다. 그들은 과학혁명 시대에 살았다. 하지만 대답은 달랐다. 
 
데카르트는 이성으로 알 수 있다고 믿었다. 로크는 이성이 아닌 경험으로 앎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합리론과 경험론의 시작이다. 둘은 친 과학적 철학자다.
 
먼저 로크를 보자.

로크는 경험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지식의 원천에 관한 문제.
데카르트는 본유관념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로크는 본유관념을 믿지 않았다. 
 
로크는 경험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지식의 원천에 관한 문제. 데카르트는 본유관념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로크는 본유관념을 믿지 않았다. 
 
존 로크는 인식론을 주장한다. 본유관념은 무엇일까? 아이작 아시모프라는 작가가 있다. 런웨이라는 SF공상과학소설.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는 명령어를 칩에 심는다. 두번째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명령어를 넣는다. 세번째, 로봇은 1, 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설정한다.
 
인간을 최우선으로 지키고 명령에 따르라. 그리고 3순위가 자기를 보호하라는 명령이다. 이 3원칙은 메모리 펌웨어속에 집어넣는다. 지워지지 않는다. 3원칙은 훼손되지 않게 펌웨어 속에 저장된다. 인간에게도 펌웨어가 있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생각이다.
 
기학학과 수학적 원리다. 두점을 이으면 직선이다. 그것이 최단거리다. 하지만 이것을 보고 알까? 누군가 가르쳐주면 알까? 아니다. 기학학과 수학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안다. 도덕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은 어떻게 알까?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안다. 
 
신, 주체, 실체의 관념. 이런 생각도 태어날때부터 안다. 로봇의 3원칙. 펌웨어. 인간은 이런 관념을 태어나면서 부터 갖는다. 이것을 본유관념이라 한다. 
 
로크는 이를 부정한다. 로크는 본유관념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기하학, 수학, 도덕, 자아. 이런 것은 경험을 하면서 가지게 된 개념이라고 말한다. 즉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백지상태인 빈 서판이다. 경험을 통해 관념과 지식이 생긴다. 타불라 라사라고 한다. 이것이 경험주의의 출발이다.
 
로크는 말한다. 지식을 얻게 되는 프로세스는 무엇일까? 인간오성론이란 책에서 말한다. 인간은 색, 소리, 냄새, 맛, 촉각, 모양 등. 생각의 대상. 관념은 이로 인한 생각이다. 내적경험도 관념으로 생겨난다. 사고, 의욕, 기억, 추리, 판단. 이러한 단순관념들이 복합관념으로 발전한다. 복합관념이란 힘, 존재, 통일, 기쁨 등이다.
 
감각과 반성(머릿속의 사고과정)이 합쳐진 것이다. 단순관념은 수동적으로 주어진다. 여기에 오성(이성)이 결합한다. 생각하는 능력이 결국 오성이다. 단순관념은 복합관념으로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 오성이 능동적으로 결합된다.  그럼 우리는 오성으로 어떻게 지식을 얻을까?
 
로크의 생각이다. 실체와 양태(실재의 부수물). 관계. 원인과 결과. 시간과 공간. 복합관념에서 지식이 나온다. 이것은 직관적 지식. 논증적 지식도 있다. 예를 들면 '삼각형의 내각합은 180도'. '신이 존재한다'. 이런 생각들이 논증적 지식이다. 반면 감각적 지식도 있다. '사과는 빨갛다'라는 식이다. 하지만 감각적 지식은 확실하지 않다.
 
빨갛고 동그랗고 매끄럽다. 하지만 불을 끄면 검게된다. 누군가는 사과가 시큰한 맛일 수도 있다. 색과 맛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사과는 여전히 여전히 동그랗고 매끄럽다. 고로 사물의 1차 성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달라지는 것은 2차 성질인 맛과 향기다. 왜 2차성질은 변할까? 1차 성질은 본래의 것이다. 2차 성질인 색은 원래 성질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를 표상적 실재론이라고 부른다. 경험론에서는 이러한 오류와 논란이 생긴다. 바로 '그럼 사과는 진짜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에 부딪힌다. 진짜 사과가 무엇인지조차 알기 힘들다. 사과는 내머릿 속 이미지일 뿐이다. '빨갛고 단 과일'. 하지만 누군가는 분홍빛 시큼한 열매라고 생각한다. 사과는 머릿속에만 있게 된다. 
 
사과는 결국 경험론에 의하면 머릿속의 현상에 불과해진다. 관념론이다. 하지만 사과는 1차적인 불변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만 아닌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증명이 된다. 이것을 실재론적 입장이라고 한다.
 
경험론의 결론은 이렇다.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이 있다.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과 외부에 실재하는 것이 있다. 이것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마치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경험은 항상 오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외부에 존재하지만 지각대로 존재하는 것. 빨간색은 나에게 표상되는 것. 보이는 것일 뿐이다. 표상적 실재론이다. 로크는 표상적 실재론으로 경험론을 결론낸다.
 
즉, 경험론의 결론은 이렇다. 경험으로 인한 지식은 감각적 경혐과 내적 경험이 있다. 이는 단순한 관념이 모여 복합적 관념을 이룬다. 실체와 양태, 관계.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지식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마침내 논증, 직관 등의 사고가 가능해진다.  
 
표상적 실재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
 
.우리가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경험으로는 이것을 구분하기가 힘들다.
오류를 많이 일으킨다. 그러면 데카르트의 합리론은 맞는가? 지식은
우리 머릿속에 근본적으로 존재하는가?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그 어떤 지식을
형성할 수 없다.
 
 
합리론과 경험론은 칸트가 훗날 종합적 정리를 한다. 순수이성비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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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송가 베토벤 환희의 송가는 원래 '자유의 송가'다. Ode to Freuden의 원제목은 Ode to Freiheit다. Freuden이 Freiheit로 바뀐 것은 검열 때문이다. 당시 자유의 송가라는 제목은 혁명적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때문이다. 봉건 귀족들은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자유의 송가'라는 이름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들어보면 느낌이 다르다. 당시는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었다.
 
이 음악은 2차대전 당시 BBC가 시작곡으로 틀었다. 비록 적국 독일의 노래지만 초월적이며 보편적인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무려 30년동안 기획된 곡이다. 이 곡은 쉴러의 시 '환희에 부쳐'를 가사로 한다. 합창은 초창기 프리메이슨이 즐겨 불렀다. 그들은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비밀결사조직이다. 1824년 초연을 앞둔 '합창'. 당시 사람들은 로시니의 음악에 열광했다. 이런 이유로 베토벤은 베를린에서 초연을 하려 했다. 하지만 빈의 음악가들이 간청해서 결국 베를린이 아닌 빈에서 초연된다. 1824년 5월4일. 하지만 음악이 어려워 초연은 사흘 연기된 7일에 열린다. 당시 음악가들은 레치타티보(연극의 대사처럼 노래를 부르는 것)가 어렵고 낮은 음역을 위해 콘트라 파곳을 넣어달라고 했다.
 
결국 베토벤은 승낙했다. 베토벤은 이 곡을 지휘하지 않았다. 귀가 안들려서다. 연주가 끝나고 소프라노 '웅어'가 허리를 굽혀 대신 답례했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연주에 맞춰 악보를 읽어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연주가 이미 끝난 부분을 한참후에 넘겼다
 
그리고 지휘자는 악장이 끝날때마다 베토벤의 어깨를 두들겼다. 당시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냉정을 찾고 책상앞에 앉아도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예술과 진실이 가장 빛나는 승리의 순간이었다. 감히 말할 수 있다. 더이상 역작은 없다
 
베토벤은 교향곡을 완성했다. 그리고 현악 4중주를 비롯해 금단의 영역을 구축했다. 브람스, 브루크니의 교향곡은 모두 9번 합창에서 시작한다.
 
기쁨이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이여
낙원의 딸이여 천상의 것이여,
우리는 몹시 취하여 당신의 신전에 들어선 것이다.

당신의 능력은 시간의 흐름이 갈라 놓은 것을
다시금 결합시켜 준다.
모든 사람들은 당신의 날개가 멈추는 곳에서 동포가 된다.

껴안아라, 수백만 사람들이여!
너희 입맞춤을 온 세계에 주어라!
동포여, 별하늘 위에 사랑하는 아버지가 살고 계시리라.
한 친구의 벗이 되는 큰 행운을 가진 사람은,
착한 여성을 차지한 사람은 그 환호 소리를 섞도록 하라!
그렇다 - 비록 한 영혼이라도
이 지상에서 자기 것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환호하라!
그리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자는
울며 이 결합으로부터 떠날지니라!

이 지구에 사는 사람은 이 공감(共感)에 봉사하라!
이 공감은 미지의 존재가
군림하는 별 있는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자연의 젖가슴에 매달려 기쁨을 마시나니
모든 선인이나 모든 악인이나 기쁨의 장미 발자취를 따라 간다.
기쁨은 우리에게 입맞춤과 도취를 주고
죽음의 시련을 겪은 친구를 준다.

쾌락은 구더기에게 주어지고
그리고 천사는 신 앞에 서 있다.
너희는 엎드려 있는가, 수백만 사람아?
너희는 창조주를 예감하는가,
세상 사람아? 별하늘에서 그를 찾아라!
별 위에 신은 존재하시리라.
기쁨은 영원한 자연에 있어서의 강한 용수철이다.

기쁨, 기쁨은 크나큰 세계의 시계 속에서
톱니바퀴를 돌아가게 한다.
기쁨은 꽃을 그 싹으로부터 이끌어 내고
별을 하늘로부터 이끌어 내며 기쁨은
천문학자의 망원경도 모르는 천체를
하늘에서 회전하게 한다.

창조주의 별이 장엄한 하늘을 날 듯이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동포여
너희 길을 나아갈지니
영웅이 승리를 향해 전진하듯
기쁨으로!

-환희에 부쳐 '프리드리히 쉴러'
 
베토벤은 사람들이 자유의지로 서로 의지하며 평등하게 살 것을 꿈꿨다. 그리고 그것을 믿었다. 보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베토벤을 음악의 악성. 음악의 성자라고 부른다. 환희는 자유다.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서로 아끼며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 오리라 믿었다. 그의 생각은 자유를 향한 고귀한 신념과 숭고한 이상이다.
 
베토벤의 스승은 하이든이다. 그는 귀족에게 고용돼 부귀영화를 누렸다. 베토벤은 생각이 달랐다. 하이든을 보며 음악적으로 자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육을 하고 연주회를 열며 스스로 삶을 산다. 악보산업 덕분이다. 악보산업이 활성화 되면서 그는 자유를 얻을 수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악보의 출판이 음악가에게 자유를 준 것이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냉혹했다. 독일 본에서 태어났다. 열등감에 절은 아버지는 베토벤을 혹독하게 키웠다. 방에 가두고 연주만 시켰다. 모차르트로 만들기 위해서다. 음악은 베토벤에게 저주이자 축복이다.
 
 
 
어머니마저 사망한다. 장남인 그는 동생들의 생계까지 책임진다. 지독한 인내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20대에 청력을 읽었다. 30대 초반에는 아무것도 안들렸다.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대미문의 걸작을 쏟아낸다. 이것은 기적이다. 자신 운명의 올가미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것이 운명교향곡으로 탄생했다. 시작하는 8개 음. 그를 기반으로 기존과 전혀다르며 아무도 못만들어낸 완벽한 곡을 만든다. '교향곡'을 창시한 것이다. '운명'은 너무 완벽해서 연주할때 마다 모든 곡이 다 다르다. 총 9곡의 교향곡. 3번은 영웅, 5번은 운명, 6번은 전원, 9번은 합창이다. 
 
 
 
베토벤 교향곡은 5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여덟개의 음을 중심으로 치밀한 구성. 안톤 쉰들러는 베토벤의 비서다. 그는 이렇게 들었다고 증언한다.

운명은 이런 소리로 문을 두드린다
 
다른 나라는 'C단조 교향곡'이라고 부른다. 한국과 일본만 '운명'이라고 한다. 베토벤의 제자 '카를 체르니'는 베토벤이 '노랑 촉새'의 노랫소리를 듣고 영감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파울 베커라는 독일의 음악사학자는 '운명'을 이렇게 평한다.
 
1악장은 투쟁, 2악장은 희망, 3악장은 의심, 4악장은 승리
 
프랑스 대혁명 뒤 변화의 한복판에 선 19세기. 시민계급이 귀족에게 예속되기를 거부하는 분위기를 반영한다. 음악도 귀족에게 예속됐다. 귀족에게서 벗어나면 자유의 대가로 생계가 어려워진다. 베토벤은 그 운명의 올가미들을 모두 벗어난다. 베토벤은 프리랜서 작곡가로 매일같이 가계부를 썼다.
 
자유을 얻은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스승 하이든과 커피를 마셔도 베토벤이 돈을 냈다면 항상 가계부를 썼다. 음악가가 자립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돈이 많다면 자유을 잃는다. 역설적이다. 그래서 예술은 어려운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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