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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고르

원심력

2019-06-1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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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도는 힘. 원심력이다. 중심은 끌어들이는 힘. 원심력은 벗어나려는 힘이다. 끊임없이 당기고 벗어나려는 힘이 작용한다. 당신의 원심력은 무엇인가.
 
직장인은 돈을 번다. 생계를 위해서다. 짜증나고 힘들어도 가족을 생각하며 참고 일한다. 가족은 중심이다. 벗어나고 싶어도 결국 계속 돌아야 하는 직장인. 원심력이 작용한다. 생계와 돈이 원심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직장인은 일은 한다. 자아실현이다. 일을 통해서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구.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원심력을 발휘한다.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부단히 도는 것이다. 그것은 성취를 위해 참고 돈다고 보면 된다. 힘들고 지쳐도 무언가를 위해서 계속 도는 것이다. 자신을 잡아당기는 '돈과 생계' 그리고 '자이실현'. 생계에 찌들어 탈출하고 싶은 자신과 '하고 싶은 하려고 하는 욕구'. 끌어당기는 힘과 원심력이다. 
 
원심력도 생각없이 돌면 지친다. 알고 보면 자신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가족이 없다면 무슨 힘으로 돌까. 자아실현이 없다면 이 힘든 원심력을 발휘할 수 없다.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원심력이라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가족과 지금의 일이 감사한 이유다. 자신이 돌 수 있는 이유와 힘이 나오는 곳이다. 그러면 이 원심력을 어떻게 잘 이용할지를 고민하면 된다. 
 
바흐를 보자. 그는 끊임없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했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생계유지가 목적이었다. 그리고 자아실현을 위해 '좋아하는 일'을 했다. 바흐가 살았던 시대는 경제적 자유가 보장됐다. 이런 경제적인 성취 과정에서 꽃을 피운 음악시장. 출판산업과 함께 고전음악도 발전하던 시기다. 시대적 배경을 먼저 보자.
 
음악의 발전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생겼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외치며 가톨릭에 맞섰다. 가톨릭의 부패를 고발하고 부정한 95개의 논제. 이는 교회를 뒤집은게 아니라 세상을 흔들었다. 하지만 루터는 라틴어로 글을 써 독일 국민의 95%는 읽지도 못했다. 루터는 독일어로 번역해 성서를 낸다. 이로 인해 새로운 사상이 빠르게 확산되며 문맹도 사라진다. 
 
종교개혁의 성서는 결국 인쇄술과 출판업을 발전시킨다. 이는 악보의 인쇄와 출판도 돕는다. 예전에는 다른 나라를 가서 악보를 구했다. 하지만 집에서 다른 작곡자들의 작품을 만나게 됐다. 악보 출판으로 작곡가들은 생계유지가 가능했다. 자유로운 작곡가 시대 열린 것이다. 바흐는 이 시대적 흐름의 수혜를 받았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서양사람들은 이 말을 모른다. 이것은 일본의 출판사가 '표제'로 붙인 것이다. 바흐는 바로크 시대에 악보산업의 수혜를 받은 첫세대다. 그는 평생 독일밖을 나가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악보산업이 활발해져 이탈리아와 프랑스 음악을 융합해 개성있는 음악세계를 열었다. 
 
  
바흐는 자식이 20명이 넘었다. 그래서 돈을 벌어야 했다. 먼저 교회성가대에 취직했다. 그의 형은 요한 크리스토프. 그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였다. 바흐는 작곡을 배우기 위해 형에게 의존했다. 형의 악보를 손으로 베끼면서 작곡 공부를 했다. 형은 음악 대가들의 악보를 많이 소유했다. 형 몰래 베끼며 공부했다. 이것이 바흐의 업적을 만들었다. 악보산업의 발전과 개인의 의지. 생계를 위한 일.
 
1705년 20살이 된 바흐. 그는 450킬로미터를 걸어서 '북스테후데'의 콘서트를 보러갔다. 그곳에서 넉달동안 머무르며 공부했다. 생계를 위해 당연히 그곳에서 취직을 했다. 독일 아른슈타트의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 일한 것이다. 그곳에서는 무난하지 않았다. 자신의 일에 있어 완벽성을 추구하는 정신 때문에 종종 싸움이 일어났다. 바흐가 한번은 악단원을 혼내니까 몽둥이를 들고 덤벼들기도 했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진지함을 잃지 않은 노력파였다. 일은 돈을 위해서도 하지만 자신의 '완성도'를 위해서도 해야 한다. 
 
음악가들은 가난했다. 하지만 인쇄술의 발달로 생계를 이어가기 쉬워졌다. 에스틴 로저라는 사람은 음악출판 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동판인쇄기법으로 더 좋고 더 싼 제품을 공급했다. 이로 인해 바흐를 비롯한 음악가들은 좋은 음악을 더 빨리 공부할 수 있게 됐다. 
 
바흐는 늘 생계를 부양해야 했다. 가정을 위해 직장을 자주 옮겼다. 월급을 많이 주는 곳으로 옮긴다. 바흐는 장소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보수와 자녀들의 대학 교육때문에 자주 옮겨다닌다. 바흐는 고단한 조건도 받아들인다. 이유는 생계비와 자녀 교육때문이다. 
 
그러나 바흐의 음악은 어떤가? 당대는 인정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졸려했다. 평가를 제대로 못받았다. 훗날 바흐는 멘델스존에 의해 부활한다. 독일 바그너는 이렇게 말한다.
 
"바흐는 엄청나고 대단한 음악가다. 아무도 그런 과정을 못견딘다. 한사람이 이루기에도 힘든 업적이다"
 
베토벤은 바흐를 이렇게 평가한다.
 
"바흐(Bach)는 시냇물이라는 뜻이다. 그는 시냇물이 아니라 바다다".
 
바흐가 만든 책은 60권이다. 46년동안 1000곡 이상을 지었다. 그의 유작 중 없어진 것도 많다. 그의 흩어진 작품들을 추정한다면 믿을 수 없이 많다. 그중 마태 수난곡은 마태복음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음악이다. 종교음악에서 최고의 연주곡이다. 마태 수난곡은 없어진 곡인데 훗날 찾은 곳이다. 
 
무반주 첼로모음곡도 잊혀졌다가 파블로 카잘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곡이다. 바흐의 곡은 또 어딘가에 있다. 그것을 찾는 사람은 대박이다. 바흐의 작곡은 일부일 뿐이다. 바흐는 오르간, 성가대 악단지휘, 행정업무에 라틴어 강의도 했다. 사람은 멀티플레이어가 될 필요가 있다. 많은 일을 동시에 하게 되면 능력에 시너지가 급격히 올라간다. 
 
바흐는 그럼 작곡을 언제 했을까? 일이 다 끝나고 집에 와서 했다. 그래서 백내장으로 고생을 많이했다. 65세에 죽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헨델도 백내장으로 사망한다. 둘은 존 테일러라는 떠돌이 영국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부작용으로 죽는다. 
 
어쨌건 바흐는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고 죽는다. 그는 악보출판으로 돈을 못벌었다. 연주자로서는 좋은데 작곡자로는 인정을 못받은 것이다. 그는 비발디와 헨델처럼 프리랜서가 아니고 싶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한 직장에 그대로 남으려 했다. 종교음악으로 남았다. 바흐는 독일에서 유럽각지의 음악을 모두 섭렵했다. 악보산업의 발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829년 독일에서 낡은 악보를 들고 뛸 듯 기뻐한 남자. 멘델스존. 그는 슬럼프에 빠졌었다. 어느날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마태수난곡' 중 일부. 연주해보고 충격에 빠졌다. 엄청난 명곡이었던 것이다. 그는 사라진 바흐를 자신의 손으로 완성코자 했다. 마태수난곡 조각을 찾아다녔다. 3년 뒤 그는 거의 모든 악보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을 못찾았다. 마침내 발견한 마지막 악보. 1829년이니 마태수난곡을 만든 1729년으로부터 100년만에 다시 완성된 것이다.
 
1729년 초연시 대중은 "난해하다"라고 평했다. 1829년 3월11일. 멘델스존이 연주하자 대중은 감동으로 눈시울을 적셨다. 이 자리에는 헤겔도 있었다. 그는 그자리에서
 
"바흐는 위대하고 진실한 신교도이며 강인한 천재다. 완전한 형태에 그에게 감사한다"라고 말한다. 
  
삶이 힘들고 고단한가? 무엇인가가 그대를 당긴다. 벗어나고 싶지만 끊임없이 당긴다. 짜증나고 힘들어도 잘 생각해보라. 끊임없이 도는 원심력은 그 중심부가 끌어당기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 때문에 원심력이 생긴다. 원망이 대상이 사실은 힘의 근원인 셈이다. 생계를 위해서 자아실현을 위해서 일을 하다보면 결국 '성과'가 나온다. 생계와 꿈을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위대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결과'를 맺게 된다.  
 
5. 별똥
 
 별똥 떨어진 곳,
마음해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오.

-정지용
 
어릴 적 마산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불꽃놀이가 있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80년대 중반 경제는 번성했다. 복지아파트 단지였다. 그때는 5층 건물. 지금으로 치면 고급아파트다. 어린 내게 놀이터와 동산은 산처럼 크고 넓었다.
 
한번은 별똥이 떨어졌다. 저 언덕너머에 떨어졌다. 엄마는 말했다. "지금 가면 벌겋게 뜨겁고 빛나는 별똥을 주을수 있어". 소원을 이뤄준다는 별똥. 혼자 캐러가고 싶었다. 하지만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다음날 엄마와 함께 별똥을 주으러 가자고 했다. 그리고 그날은 잠을 푹 잤다. 어느덧 깨어보니 33년이 지났다. 이상하다 분명 잠이 들었을 뿐인데.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지. 앞으로는 더 빨리 흐를텐데. 모두 사라진다는 것. 허무하다.
 
4. 권태
 
 카뮈의 이방인. 주인공은 권태를 이기지 못하고 총을 쏜다. 삶은 쾌락이 아니다. 권태로 가득하다. 권태를 이기기 위해 쾌락을 좇는다. 그럼에도 쾌락을 얻지 못한다. 소유하는 것과 소비하는 것. 이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식욕, 성욕, 수면욕. 이것들은 가지게 된다면 또 가져야 하기 때문에 뫼뵈우스의 띠처럼 혼란스럽다. 결국 권태로 다시 떨어진다. 권태를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 자신을 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권태의 굴레를 벗어날까. 사람들은 고민했다. 윤작법처럼 쾌락을 여러개 선택한다. 지루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들을 심미주의자들이라 부른다. 쾌락은 여러가지가 있다. 밑바닥 쾌락과 고상한 쾌락. 하지만 그 어떤 쾌락도 권태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클럽에 빠져도 권태다. 내일 또 가지 않으면 지루하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어도 권태다. 내일 또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에만 빠지면 권태를 쉽게 느낀다. 그래서 여러개의 쾌락을 추구한다. 
이런 것은 모험적인 삶이다. 쾌락을 돌려막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보면 최상의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권태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극도의 쾌락을 찾게된다. 사마귀가 죽음의 쾌락을 느끼면서 죽는것. 최고의 쾌락은 죽음과 맞닿아있다. 영화 <감각의 제국>. 쾌락을 추구하면 결국 죽음에 이른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갈망하는 것이다. 어떤 쾌락도 물려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싶어지지 않는다.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어진다. 심미주의의 결과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은 배중률이라는 모순에 빠진다. 선택의 고뇌. 선택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존재다. 자유를 선고받은 존재기 때문이다. 배중률이란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 참이다'라는 논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배중률을 주장한다. 하지만 훗날 헤겔은 이를 부정한다. 삶은 동시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즉,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존재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고 동시에 저것이면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선택의 모순에 항상 빠진다. 선택을 하지 못하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로 인간은 선택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심미적에서 윤리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택적인 역할을 수행하다보면 자기 자신은 사라진다. 자신의 위치에 맞추면서 살면 안되냐고 묻는다. 그냥 즐기면 되지 않냐라는 의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을 바꿔 사는 것은 가면을 바꾸는 것이다. 자기의 역할놀이는 깨져있는 얼굴이다. 심미적 존재는 그래서 허물어진다. 타인에게 드러내는 모습은 모두 환상이다. 역할놀이에서 그대는 아무것도 아니다. 타자와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 자신의 모습이 없어지고 허구적인 삶에 불과하다. 역할놀이다. 그래서 윤리적인 존재로 나아가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가면을 벗어야 한다. 그렇다고 한밤중에 도망가는 것은 가능할까? 밤은 반드시 온다. 병든 자아를 소멸시키고 자아를 찾겠다는 존재감이 폭발한다. 결국 이 순간에는 분열적 인격을 벗어나기 위한 도약이 필요해진다. 도약해야 한다. 기존의 심미적 자아를 잊어버리고 윤리적 실존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는 부서진다.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매일 서지만 선택이란 것은 불가능하다. 선과 악 중 무엇을 선택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럼 윤리적 실존은 무엇일까. 선택의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다. 선과 악이라는 요인 자체를 인정하되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적 실존은 선택하는 것. 그 가운데 자신의 기준을 넣는 것은 윤리적 실존이다. 이 경우 인간의 역할은 분열을 멈춘다. 일관적 자기를 알게 된다. 무언가를 선택하게 되는 문제가 인생에서 항상 생긴다. 그럴 경우 가혹한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  
 
심미적 실존단계에서는 선택. 윤리적 실존은 분열자아를 벗어나 선택적 자아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윤리적 존재도 결국 딜레마에 빠진다. 유죄냐 무죄냐만 있고 유예라는 힘들어진다. 그래서 윤리적 실존의 문제에 도로 빠지게 된다. 결론은 심미적 실존이나 윤리적 실존이나 오십보 백보다. 결국 인간은 두려움과 떨림의 단계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윤리적 실존의 문제에서 종교적 실존으로 가게 된다. 물론 비종교적인 실존도 존재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실존. 이것은 신이라고 하는 존재에 대해서도 끌려다니는 삶을 끝내겠다는 판단이다. 나의 '존재' 판단만 존재한다. 그것을 깨우치자. 종교적 실존이나 비종교적 실존이나 중심의 '나'의 존재다. 모든 답은 거기서 나온다.
 
3. 예술과 돈
 
 예술은 배고픈 직업인가. 굳이 배고플 필요는 없다. 하지만 배가 부르면 예술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돈과 예술은 무관하다. 볼테르라는 프랑스 철학자는 부자였다. 비지니스 수완이 좋았다. 멘델스존은 음악사상 최고의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런점을 본다면 돈과 예술은 무관하다. 그렇다고 돈과 예술이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상대적인 관계다. 
 
예술가들은 대부분 지원을 받는다. 유명한 사례는 차이콥스키의와 폰 메크 부인을 들 수 있다. 폰 메크 부인은 차이콥스키의 예술활동을 위해 모든 것을 지원했다.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았다. 그런 점이 차이콥스키의 예술성을 꽃피웠다. 예술가와 후원자와의 관계는 무엇일까. 예술가와 공연지원자의 관계는 어떻게 되야 할까?
 
<차이콥스키와 후원자 폰 메크 부인>
 
일본의 거부 나카토 회장은 예술가들과의 인연이 깊다. 그는 러시아의 리히테르를 후원한다. 리히테르와 첫 만남. 리히테르는 싸늘했다.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카토 회장은 정중하게 그를 대했다. 이후 소식이 끊겼으나 리히테르가 연락을 했다. 의외로 친절한 태도를 보인 리히테르. 그는 그런 식으로 상대를 시범해 본 것이다. 여유를 잃지 않는 나카토를 보고 판단한 것이다.
 
한번은 리히테르가 고소공포증으로 비행기 못타게 됐다. 나카노 회장은 그를 배를 이용해 일본으로 오게 했다. 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동차가 고장났다. 나카토에게 문제해결을 요구하자 기꺼이 수리를 해줬다. 그럼에도 고장을 일으킨 차. 결국 나카토 회장은 급히 새 자동차로 교환해 준다. 이로인해 둘은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나카토 회장은 훗날 경영위기를 맞는다. 리히테르가 위기의 나카토를 구한다. 적은 출연료로 더 많은 무대에 선다. 이로 인해 회사는 이미지가 상승해 중대한 고비를 넘는다. 
 
그럼 우리의 예술후원 현실은 어떤가? IMF때를 보자. 무더기 초청공연들이 취소됐다. 계약을 마쳤었도 위약금을 무는게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청중과의 약속을 지킨 곳도 있었다. 그런 경우 예술가들은 출연료를 포기하며 연주해 기획사를 살렸다고 한다. 성의를 다해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자 서로간 신뢰도 얻고 수익도 증가했다고 한다. 만약 기획사들이 약속을 안지키면 유명 아티스트들은 기획사도 바꿔버린다. 혹은 터무니 없는 개런티를 요구한다. 무신뢰에는 무신뢰로 답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카토 회장이 이 이야기를 하자 일본 학생들은 수익금과 조건에 대해서만 물어봤다. 예술과 경영을 수치로 요구한 것이다. 나카토 회장은 이와 관련해서 배석한 관계자를 통해 말하도록 했다. 자기는 관여하지 않았다. 회의는 팀별로 기획안이 모이면 스스로 결정토록 했다. 나카토 회장은 단지 조정자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는 예술경영인들의 자세를 말한다. 자기생각과 달라도 예술가를 절대 신뢰해야 한다. 그들의 경제적 안정을 지원한다. 폰 메크 부인이 차이콥스키에게 그랬듯. 나카토 회장은 리히테르의 조력자였다. 예술경영은 더이상 경영에 힘쓰지 않아도 예술가가 스스로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현대 핀란드에서 볼 수 있다. 에사 페카 살로넨이란 핀란드 지휘자자. 1979년 지휘를 시작으로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음악가다. 노먼 레브레히트라는 평론가에 따르면 그는 한국의 정명훈과 더불어 유망한 음악가다. 그는 LA변주곡, 색소폰 협주곡 등 유명한 곡을 남겼다. 이 외에도 핀란드에는 유카 페카 사라스테도 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음악가 중 70%는 핀란드 출신이다. 앞으로 세계를 이끌 유망한 음악가 두명 중 한명은 핀란드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지휘와 작곡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발휘한 핀란드 음악가들. 배경은 핀란드 국민의 각별한 음악 사랑에 있다. 정부의 지원정책도 공이 크다. 세계에서 예술지원 예산이 가장 많다. 핀란드는 2만원에 클래식을 관람할 수 있다. 한국은 10만원이 넘는다. 핀란드는 교향악단법에 따라 25%를 국가가 지원한다.
 
  
또 시민과 음악 애호가들이 오케스트라를 결성하고 지자체가 60%이상 재정을 마련하면 국가가 도와준다. 이로 인해 전국 22개 오케스트라가 활동하고 있다. 세계에서 연주회 관람횟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이로 인해 '아이노유하니 라우타바라'라는 걸출한 작곡가도 나왔다. 핀란드의 유명한 작곡가 '시벨리우스' 이후 최고의 작곡가라는 평을 받는다. 그의 음악 '빛의 천사'와 '알렉시스 키비라'라는 오페라도 추천한다. 물론 음악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다. 뿌리없는 나무에서 가지를 키울 수는 없다.  
 
정부에서 무조건 지원해준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핀란드도 부작용이 발생했다. '예술가 평생연금제도'. 여기에 대해서는 의무조항이 없다. 반드시 작품을 발표하라고 하는 의무가 없다. 그래서일까. 시벨리우스는 32살때부터 연금을 받았다. 42살부터는 종신연금을 탔다. 그가 기거한 야르벤파 숲속. 정부는 그의 예술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비행기 항로까지 바꿨다. 그러나 시벨리우스는 종신연금을 받기 시작한 이후 작품을 내놓지 않았다. 시민들은 '배고픈 예술가가 더 낫다'라며 조롱했다. 핀란드 정부는 그럼에도 예술가 연금제도를 시행 중이다. 마치 폰 메크 주인이 아무런 댓가없이 차이콥스키를 지원하듯.
 
예술과 돈의 관계는 이렇다. 예술로 돈을 벌기는 힘들다. 예술경영은 비지니스와 성격이 다르다. 회사의 경영은 이윤이 목적이다. 예술경영은 예술이 목적이다. 회사의 경영은 돈으로 사람을 살린다. 예술경영은 예술로 사람을 살린다. 하지만 신뢰라는 요소는 둘이 같다.
 
2. 성경의 역설
 
성경에는 역설이 있다. 그 역설은 믿음이다. 예수는 이런 말을 했다. "나를 따르라". 제자들은 실존적 선택을 한다. 어떻게 사람을 믿고 따를까? 그것은 바로 무한한 체념과 긍정적 믿음이 동시에 생기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과 떨림을 느낀다. 종교를 믿는 것은 바로 이 '두려움과 떨림' 때문이다. 믿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두려움과 떨림'을 묻는다. 성경을 보자. 믿음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 믿음이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가. '아브라함과 이삭'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
 
신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한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죽여 바치려 한다. 하지만 신의 목소리가 망상인지 신인지 알 수 없다. 설사 신이 명령했다고 해도 아들을 죽이는 것은 흉악한 범죄자다. 그러면 왜 아브라함은 신을 믿고 아들을 죽이려 한 것일까. 여기에는 '존재적인 의문과 답'이 있다 .아브라함은 역설적 운동이라는 무한한 체념이 작동한다. 그리고 믿음의 운동도 동시에 생긴다. 이삭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긍정적 믿음인 것이다. 
 
사람은 원래 불안한 존재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평생을 산다. 결국 무한한 체념으로 이어진다.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모든 것을 잃는다. 이는 모든 것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기 힘들기 때문에 결국 무한한 자기체념으로 빠져든다.
 
사람은 쾌락으로 자신을 확인하려는 심미적 존재. 여기서 더 나아가 쾌락에서 자유로운 윤리적 자아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 종교적 자아로 나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무한한 체념에서 윤리적 자아를 포기한다. 종교적 자아로 나아가기 위한 믿음으로 실존을 얻는 과정이다. 그럼 이것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키에르 케고르는 말한다. 자신의 셔츠는 자신이 짜라. 무한한 포기도 주체가 자신이다. 새로운 자아를 얻고 낡은 자아를 포기하는 것. 병든 자아에서 실존적 자아로 나아가는 것. 그 과정이 성경속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다. 아브라함의 행동은 도덕과 법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목적론적 정지. 윤리적 실존을 정지시키는 행위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 아들을 죽여서는 안된다. 비유적인 표현일 뿐이다. 아브라함의 살인행위는 결국 부조리의 힘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무한한 자기체념의 모습이다.
 
교회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한다. 그럼 아들을 바쳐야 하나? 그럼 아브라함에게 사회는 죄를 묻게 된다. 살인를 신성한 행동으로 포장하는 것 외에는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역설. 그럼 이 실존적 물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한한 체념과 믿음의 운동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기독교의 역설이라고 한다. 무한한 체념으로 모든 것을 잃고 믿음의 운동으로 이를 다시 얻는 과정이다. 신이 이삭의 목숨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 그의 믿음은 부조리의 힘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믿음의 기사다. 존재의 의문에 답하는 신앙의 기사.
 
아들까지 바칠 수 있는 믿음은 살인이다. 고로 무한한 자기체념과 신이 아들을 요구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동시에 작용한다. 그래서 가능하다. 단 설명하기 어렵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 실존은 결국 본인만 안다. 이삭을 포기하면서도 포기안해도 된다는 상반된 두개의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 인간은 누구나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보인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체념과 믿음이 동시에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하지만 이는 광기보다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카라바조의 그림 '이삭의 희생'>
 
굳이 말한다면 신성한 광기. 자신을 증오하면서 신성시하는 존재의 답이다. 신을 위한 체념이 아니다. 이는 신앙의 기사를 얻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음으로서 모든 것을 얻는다는 광기. 자신을 들여다보라. 이러한 체념과 믿음이 동시에 느껴지지 않는가. 믿음의 기사가 되려면 역설의 무게를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 동반자는 없다. 홀로 신앞에서는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만나는 신처럼.
 
현실의 종교를 보자. 떼로 모여서 기도하는 곳은 가짜다. 거기는 돈이 목적이다. 불교를 보자. 대승불교는 거짓이다. 신앙과 믿음은 스스로 해야 한다. 구원자는 없다. 자신만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신의 뜻에 맞혀 살아가는 사람들. 그럼 자기들끼리 믿음을 알아볼까? 그렇지 않다. 종교로 실존의 단계로 들어가면 신앙의 기사끼리 알아보나? 아니다. 서로 못알아본다. 신앞에서는 자기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이라는 것은 신앞에 선 단독자다. 신과의 독대다. 자신과의 마주함이다. 구원은 단체로 얻지 못한다. 그곳은 계모임이다. 그들의 신앙에 나의 숟가락을 얹는 것음 불가능하다. 신앙과 믿음은 내가도약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보통 우리는 쾌락에 매이거나 떼어내려는 심미적, 윤리적 실존에 머무른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무한한 자기체념과 믿음의 기사가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구원은 스스로 해야 한다. 그길에 체념과 믿음이 동시에 생겨난다.
 
1. 중년에 접어들면
 
중년에 접어들면 독특한 현상이 생긴다. 자신의 가면을 벗는다. 젊었을때는 여러가지 가면을 쓴다. 회사에서 가면. 연인앞에서의 가면. 부모 앞에서의 가면. 중년에 접어들면 이런 가면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젊었을때는 이것이 안된다. 중년에 접어들면 이것이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자아가 자기를 향해 가는 것이다. 개별화, 개성화. 자기 실현의 과정. 나를 찾아 떠나는 영화같은 것이다. 자기를 찾는 것이 삶의 목표다.
 
밖으로 튀어나온 자아가 내면속의 자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 그것이 삶이다. 자기실현의 기회. 자기의 무의식을 들여다 본다. 대담하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자기의 무의식과 대면하는 것. 그 안에는 자신의 양성성이 있다. 남성의 여성성인 아니마. 여성의 남성성인 아니무스. 남성성과 여성성의 굴레를 벗어나는 구간이 중년이다. 이 여행은 죽을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고로 잠재성과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자신의 개별화 과정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고갱의 그림.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나'>
 
심리학에는 3명이 있다. 프로이트, 융, 아들러.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럼 융의 답을 들어보자. 프로이트는 인간은 3개의 층으로 구성됐다고 했다. 의식, 전의식, 무의식. 의식은 사고와 지각 경험이다. 전의식은 기억이나 저장된 지식이다. 무의식은 성적욕망, 폭력적 충동, 수치심, 이기적 욕구다. 프로이트는 행동의 기저에는 성적충동이 깔려있다고 한다. 이것을 리비도라고 부른다.
 
리비도는 사춘기때 갑자기 나타나는게 아니라 서서히 발달한다. 유아성욕론. 4~6세는 엄마에게 성적욕망을 느낀다. 그래서 아빠에게 적개심을 가진다. 이른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우리가 느끼는 히스테리나 강박증, 신경증은 모두 성적에너지와 관련된 것이다. 융은 여기에 반대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유아성욕론과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일로 프로이트와 융은 헤어진다. 이로 인해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 융은 분석심리학을 이끈다.
 
프로이트가 유아성욕론과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굽히지 않은 것은 그가 살아온 배경과 관련깊다. 프로이트의 아버지는 결혼을 세번했다. 40세 아버지와 스무살의 어머니. 프로이트 아버지는 전처사이에 아들이 있었다. 그는 21살이다. 프로이트 아버지는 그 아들과 새 부인의 나이차가 없는 것 때문에 고민했다. 만약의 일을 대비해 아들을 멀리 보낸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아버지보다 엄마에게 의존한다. 반면 융의 어머니는 정신질환을 앓았다. 그래서 유년시절 아버지와만 보냈다. 그래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경험하지 못한다. 의식은 지각과 경험이다. 이것이 자아다. 그러나 자아가 나의 진짜 모습인가? 아니다. 우리는 가면을 쓴다.
 
무의식이 우리의 진짜 모습이다. 자아의 억압된 성향과 충동. 무의식은 짐승이거나 괴물의 모습이다. 융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집단 무의식을 밝혀낸다. 과거의 경험이 누적된 무의식. 인간이 뱀과 어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경험에서 나온다. 꿈, 환상, 신화, 예술에서 반복되며 집단 무의식을 형성한다. 그리고 무의식은 남성의 여성성인 아니마. 여성의 남성성인 아니무스. 나 자신 'SELF'는 여기에 걸쳐있다. 프로이트와 융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프로이트는 억압된 의식이 꿈으로 위장해 나타난다고 봤다. 특히 프로이트는 정신질환을 연구하며 과거지향적이다.
 
원인을 찾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또 리비도를 성적에너지로 봤다. 융은 무의식은 꿈을 통해 드러난다고 봤다. 의식의 언어와 무의식의 언어가 달라서 '꿈을 해석하기 어렵다'고 봤다. 마치 꿈은 외국인과 같은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을 '범죄자'로 본 것이다. 융은 프로이트와 달리 보통사람의 미래지향적인 자아를 보고자 했다. 프로이트와 달리 리비도가 성적에너지가 아닌 창의적인 에너지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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