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박민호

dducksoi@etomato.com

삶과 철학 그리고 피아노
(예술과 인문학의 만남)20.사랑의 꿈

2019-04-26 09:53

조회수 : 1,478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사랑이란 알쏭달쏭.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같을까 다를까.
같은 것이다.
미워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를까 같을까.
같은 것이다.
사랑과 증오는 양 극단에 있다.
하나의 선 위의 양쪽 끝.
극은 극으로 통한다.
굳이 수학으로 증명을 하지 않더라도.
무한과 유한은 같다.
점과 직선은 일치한다.
직선위의 양 점은 수학적으로 같은 것이다.
0과 1은 같다.
1+1=2지만 1도 증명이 된다.
존재하는 것과 無도 같다.
삶과 죽음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철학자들은 이 알쏭달쏭한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예술과 인문학의 만남 다음편에서 주제를 잡고 한번 다뤄보자.

누가 맘 속에 들어왔길래



서랍을 정리하려면 서랍을 열어야 한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꽁꽁 닫으면 정리가 안된다.
마음의 문을 열어야 서랍처럼 정리가 된다. 
그러려면 자기가 먼저 문을 열어야 한다.

신은 인간에게 서로 사랑을 하라고 했건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너무 많은 증오를 달고 산다.
철학자들은 해법을 연구했다. 

사람들이 탐욕에 가득찼다. 
모세는 10계명을 전파한다.
신의 권위를 빌어 비문에 새겼을 뿐 보이지 않는 신에 사람들은 방황한다.

공자는 자신과 가족을 사랑하라고 했다. 
인의예를 가르쳤다. 
공자는 가족을 벗어나서는 '매너'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가족외에는 사랑하기 어려우니 '타인과 잘 지내는 법'을 가르쳤다.
이는 부족사회를 벗어난 현대사회에서 무참히 깨진다.
지금 세상은 부족을 넘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면서 살고 있다. 
매너의 자발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진시황은 지옥같은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했다. 
그리고 민중에 자유를 줬다.
왠걸.
모든 사람들의 욕망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자유를 주니 지옥문을 연 것이다.
그리하여 책을 불태우고 사람들의 '눈'을 멀게한다.
때려서 말을 듣게 하는 한비자의 법가.

사랑은 미로 

묵자는 다른 생각을 했다. 
겸상애.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외에는 답이 없음을 확신했다.
모순이 생겼다. 
모두를 사랑하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이웃집 아내를 나의 아내처럼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막 퍼주다가는 집안이 거덜난다.
내동생과 동료의 동생을 같게 볼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

사람 예수는 자기애가 강했다.
이고이즘(egoism)은 개인주의지만 이기적 성격이 강하다.
예수는 이고티즘(egotism) 이타적 자기애가 강했다.
스스로 신의 아들이라 칭하고 사랑을 실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이고티즘을 가질 수는 없었다.
예수의 생각은 종교로 둔갑한다.
이집트 고대 '호루스' 신화로 날조되고 포장된다.

칸트는 자율성을 중요시했다. 
자율과 타율.
자유에 따른 책임과 권리, 의무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강에 빠진 이웃을 구한 사마리아인.
성경에서는 "누가 너의 이웃이냐"라고 물었다.
칸트는 강에 빠진 이웃을 구한 사마리아인은 도덕을 핑계로 자신의 이익을 계산한다고 말한다.
동물은 순간적으로 도덕이 아닌 자신의 이익과 손해를 감지한다.
그것이 그대로 행동으로 드러난다.
칸트의 답은 '자율적인 책임'이다.
마치 교실에서 지갑이 없어졌을때.
책상위에 무릎꿇은 아이들.
선생님의 호통에 누군가 조용히 손을 든다.
화가 난 선생님.
이윽고 또 다른 아이가 손을 든다.
당황한 선생님.
얼마지나지 않아 3명의 아이가 손을 든다.
황당한 선생님은 차분해진다.
'자유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
자유가 없는 1명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자유를 가진 사람들이 책임을 지겠다는 자발성.
지금 UN의 정신이다.
'영구적 평화'
분쟁과 전쟁은 자유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자유인들의 권리와 책임.
그곳에서 인간애와 자율성이 나온다고 믿었다.
프랑스 국기의 빨강, 흰색, 파랑.
자유, 평등, 형제애를 의미한다.
칸트는 그것을 그대로 생각으로 뽑아냈다.


<칸트>

니체는 불만많은 낙타처럼 살건지 사자처럼 살 것인지 화두를 던졌다.
사자는 강하지만 자리를 뺏길 위치에 처해 불안하다.
그것을 극복하면 속세에 집착하지 않는 어린아이가 된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극복하는 초인.

데카르트는 무지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아는 것이 힘이요.
모든 것을 의심하는 내 자신의 존재만 명확하다고 말했다.

사랑하기 어렵다. 사랑받기는 더 어렵다.

스피노자는 수학으로 신을 부정했다.
세상은 '선'과 '악'을 규정하고 강요한다고 믿었다.
그는 선과 악은 너의 생각이고 인간은 '좋음'과 '나쁨'으로 삶을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가 주는 선과 악이 아닌 내가 느끼는 좋음과 나쁨.
일치할때도 있지만 어긋날 때도 있다.
윤리와 도덕은 사회가 정한 선과 악이 아니다.
내가 느끼는 좋음과 나쁨이다.

쇼펜하우어 세상은 고통과 권태로 가득찼다고 했다. 
맞다. 
일을 하면 힘들고 고작 이틀 주말인데 지겹다.
고통스럽지 않으면 지루하다.
안지루하면 짜증난다.
결론은 너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즐겁게 해라.
인생은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희망은 처음부터 없다.
인생은 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살아지는 것이다. 
억만금을 가지고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지겨워진다.
대한항공 재벌처럼 다 가지면 행복할 것 같은데 매일 같이 화를 낸다.
삶은 즐겁고 유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라.

석가모니 있는 그대로 보라고 했다.
삶과 죽음을 그대로.
그러면 깨닫게 된다.
군더더기는 없다. 
있는 그래도 보라.
그러면 사랑이 보인다. 



왕충이라는 철학자는 샅샅이 비판하고 뒤지라 했다. 
모든 것을 해체해 낱낱이 분석하면 진실이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도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했다.
인간사회는 계급으로 구성이 돼있으며 종교의 모습으로 얼굴을 들이댄다고 주장했다. 
삶은 투쟁이라는 결론에 달한다.

마음의 정리를 제대로 못한 쇼팽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19살의 쇼팽은 사랑에 대한 감정을 처음 느낀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난 18살때 느꼈다.
별빛이 머리위로 쏟아지는 느낌이다.
보통 그 나이때 느끼나 보다.
짝사랑.
첫사랑.
몰래 한 사랑.
강렬한 기분과 희열이 다가온다.
쇼팽은 글라드코프스카라는 성악가를 사랑했다. 
그는 '매일 밤 그녀의 꿈을 꿔. 그런데 6개월 동안 한마디도 못하고 있네"라고 친구 보이체코프스키에게 털어놓는다.
그녀는 쇼팽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훗날 쇼팽이 죽고 카라소프스키가 쓴 쇼팽 전기를 보고 알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곡은 델핀 포토카라는 여성에게 헌정되는 아이러니가 생겼다.
이 음악은 바르샤바 시대의 절정을 보여준다.

사람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 이런 음악이다.



<프란츠 리스트. 사랑의 꿈>
................................................................................................................

(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①⑨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한 수녀가 있었다.
외세의 침략으로 아이를 가졌다.
선배 수녀에게 털어놨다.
수녀는 아이를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둘은 죽음에 처한다.
둘은 끝까지 숨기고 아이를 낳는다.

임신을 했지만 순결 선언을 지켜야 하는 수녀.
그 치욕은 종교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수녀는 24시간 고통으로 지내다가 한순간 희망을 보며 신에게 묻는다.
주여 어린양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아이를 받는 의사는 무신론자다.

이 이야기는 실제 2차대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인해 생긴 일이다.
그대가 아이를 받는 의사라면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수녀라면.
선배 수녀라면.
고통받는 이들에겐 구원이 내릴까.
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지옥에 가는 것일까.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영화 '야뉴스 데이(Agnus Dei)'>

잔혹한 살인자가 있다. 
모두 그를 죽이라고 소리친다. 
누군가는 인권을 말한다.
악마의 씨앗이라며 저주한다.
사회의 잘못이라고 항변한다.
얼굴을 드러낸다. 
범죄는 또 발생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죽이라고 소리친다. 

태어나면서 사람은 하얀 도화지다.
누군가는 DNA를 탓한다.
다른 사람은 악마는 후천적인 것임을 실험으로 증명한다.
그러나 우발적인 상황도 넘쳐난다.

살인자는 "난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범죄는 때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예측을 할 수가 없다.
솔직히 모른다.
내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깔려 죽었는지도.

두가지가 분명하다.
나비효과.
담배연기는 어떻게 퍼지는지 예측할 수 없다. 
퍼진다는 것은 명백하다.
나의 '화'는 어디에선가 폭풍이 된다. 
누군가의 분노가 나에게 화를 미쳤다. 

또 한가지는 '저주'.
전기의자에 앉은 살인자는 죽기전까지 자신을 저주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목숨을 구걸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사형수는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 
운명을 저주한다.
세상의 모든 범죄자를 죽이면 평화가 올까?
아마 지구위의 모든 사람을 다 죽여야 할 것이다. 
차라리 게으른 정치인을 잡아가두는 것이 더 빠르다.

한명을 죽이면 살인자가 된다.
5천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
나는 운이 좋아서 살인자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대도 운이 좋아서 살해자가 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자기 발로 살인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 
운이 없었던 것이다. 
살인마는 지옥에 떨어질 것인가.
신이 없으니 감옥보다 편안한 죽음을 맞는 것인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퀸 보헤미안 랩소디>

인간은 왜 탐욕적일까?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은 모두 욕망이 강하다.
능력이 있으면 불의를 저지르는 경향.
제 몫의 이상을 차지하려는 마음.
탐욕=Pleonexia.
-플라톤 <국가론>

힘이 생기면 탐욕이 따라온다.
힘은 정의로운 사람에게 주어져도 불의를 저지르는 방향으로 이끌린다.
이로 인해 그 누구도 정의롭지 않게 변한다.
자석처럼 힘이 불의로 밀어내는 것이다.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정확히 말하면 무능한 것이다. 
무능 때문에 마지못해 불의를 저지를 힘을 갖지 못한다.
그들에게 힘을 준다음 욕망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보라.
우리는 대부분 역사에서 이를 목격한다.
정의로운 사람도 정의롭지 못한 사람과 똑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포착하게 된다. 
사람은 천성이 좋은 것을 좇는다. 
아이를 보면 알 수 있다. 
허나 힘과 권력이 주어지면 자연스럽게 달려 들어간다. 
불의로.


<사람의 뇌는 가장 불완전한 신체 기관이다.
힘에 쉽게 끌려다닌다. 선도 악도 모두 평범하게 끌려다닌다.
원래 착하고 나쁜 사람은 없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


법은 이런 이유로 탄생한다. 
법에 의해서 강제로 정의와 평등에 대한 존중 쪽으로 천성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 아래에서 위를 보면 불평등하다.
위에서 아래로 법을 보면 통제가 목적이다. 
혁명가도 언젠가는 고인 물이 된다. 
로베스피에르, 마라, 모택동, 김일성, 스탈린, 박정희, 히틀러, 이방원 등.

물론 그것을 극복한 사례도 많다.
레닌은 본의 아니게 일찍 죽었다.
체 게바라는 물들기 전에 쿠바를 떠났다.
호치민은 아예 눈을 감았다.
나머지는 철학과 예술의 힘을 빌어 탈출했다. 
그 외에는 아예 힘을 갖기를 거부했다. 

담배나 마약이나 술이나 도박이나 권력이나 종교나 한번 맛보면 힘에 끌려들어가게 된다. 

정치를 하고 싶은가?
힘을 갖고 싶은가?
자신 있는가?
힘을 갖은 사람치고 변하지 않은 사람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리하여 많은 대중에서 또 독재자가 나온다. 그리고 또
무릎을 꿇는다. 대중안에서 또 독재자가 나온다. 이런 반복되는
현상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

(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①⑧수컷사용법

수컷들은 이상하죠.
별일도 아닌 것 가지고 싸웁니다. 
단순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술을 마시면 갑자기 동지가 됩니다.
그 다음날 또 싸우죠.
또 마십니다.
어느날 서로 헤어집니다.
남성들은 잘 삐칩니다.
그렇다고 화끈하지도 않죠.

여성들은 삐치지 않습니다.
연을 끊습니다.
맺고 끊음이 확실하죠.
떠난 여성에 미련을 두지 마세요.
남성과 달리 여성은 미지근하지 않습니다.
떠난 남성에게 낚시를 던져보세요.
100% 뭅니다.

남자들은 싸우기도 하고 싸우는 척도 합니다.
차이콥스키와 루빈스타인 그리고 한스 판 뷜로.
차이콥스키는 루빈스타인에게 헌정하기 위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만듭니다.
루빈스타인도 자존심이 있죠.

"진부하다. 촌스럽다. 부적당하다. 연주할 수 없는 곡이다"

남자들은 서로 칭찬을 합니다.
곧이 곧대로 들으면 안됩니다.
그말은 "열심히 잘 하되 나보다는 더 잘하면 안돼"라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잘하면 "촌스럽다"는 말이 나오죠.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남성은 잘한 남성에게 "잘했어"
라는 말을 절대 안합니다. 그런데 못한 여성에게는 "잘했어"라고
합니다. 신기하죠?"


루빈스타인은 이 곡이 너무 아름다워 충격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어쨌거나 차이콥스키는 삐칩니다. 
아마 삐친 척을 한 것이겠죠.
이곡은 한스 폰 뷜러에게 재헌정됩니다.
한스 폰 뷜러는 '바그너'에게 '코지마'라는 부인을 뺏긴 음악가죠.
1875년에 초연됩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루빈스타인은 혹평을 사과합니다.
그리고 다시 우정이 회복되죠.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은 총 3개입니다.
그 중 1번만 유독 유명한 것이 이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스 폰 뷜로. 자신의 스승인 '바그너'는 뷜로의 부인 '코지마'
와 결혼을 한다. 코지마는 리스트의 딸이다. 수컷은 이상하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절망과 불행속에서 작곡했습니다. 
친구 루빈스타인이 무시했으니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요.
이곡은 전형적인 러시아의 향수를 자아내는 곡입니다.

이곡은 피아니스트로 인정받는 관문입니다.
기능성과 예술성을 가늠하는 척도죠.
이곡을 칠 수 있으면 그때부터 피아니스트가 됩니다.
프로가 되는 거죠.

차이콥스키, 루빈스타인, 한스 폰 뷜러.
친구는 좋은 것입니다.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 친구입니다.

가끔 주위를 둘러봅니다.
나는 친구가 있는가.
나는 누군가의 친구가 맞는가.
어쩌면 친구의 불행을 보면서 '난 불행하지 않다'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선배=후배=친구.
같은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친구'라는 단어에 묶여 양떼처럼 몰려다는 것은 아닐지.
친구란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겠죠.



<루빈스타인의 '로망스'. 남자가 싸우는 것은 서열정리가 목적이다. 화해하는 것은
서열확립이 목표다. 시끄러운 수컷들도 서열정리하면 조용해진다.>


......................................................................................................

(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①⑦말괄량이 길들이기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귀족의 두자매가 있었습니다.
언니는 드세고 제 마음대로 였죠.
여동생은 차분하고 성격이 좋았습니다.
둘째는 매번 청혼을 받았습니다.
첫째는 매번 청혼을 거절하거나 거부당했습니다.
감당할 남자가 없었죠.
 

<셰익스피어>

둘째를 먼저 시집보낼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첫째 언니에게 퇴짜를 맞은 남자가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옳구나. 내가 청혼을 하지"라고 맞받아쳤습니다.

그 남자는 다짜고짜 첫째 언니집에 찾아가 청혼을 합니다.
일방적으로 첫째를 만나 통보하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냅니다.
사실 허락도 안했는데 가버렸습니다.
다음날 그 남자는 첫째 언니를 안고 결혼식장으로 갑니다.
주례가 뭐라든 신경쓰지 않고 결혼서약을 한후 신부를 둘러매고 집으로 갑니다.

남편은 젊은 말. 
아내는 늙은 말을 타고 갑니다.
아내의 말은 드센 여자가 싫어 내동댕이 칩니다.
화가 난 아내에게 남편은 "그럼 걸어오시오"라며 가버립니다.
집에 도착한 아내는 배가 고팠습니다.
집사가 맛있는 음식을 내왔습니다.
남편은 화가 났습니다.
"내 아내에게 어찌 이런 엉터리 음식을 주나. 당신이 1등 요리사 맞아? 해고야!"
두번째 음식이 나왔습니다.
남편은 식탁보째로 싸서 버렸습니다.
"여보 잠이나 잡시다"


<아이들과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제는 '역지사지'.
타인과 어울리는 법>


아내는 피곤하고 배고파 쓰러졌습니다.
남편은 "이런! 내 아내가 이렇게 더럽고 엉터리 침대에서 자게 할 수 없지!"
남자는 집사를 불러 호통을 쳤습니다.
"넌 해고야"
하루종일 굶은 그녀는 바닥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빵이 조금 탔습니다.
"이런! 어디서 이런 음식을!"
남자는 또 버렸습니다.

"여보..제발 그거라도 먹게 해주세요.."
울먹이는 그녀에게 남편은 "여보. 우리 친정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읍시다"
7시에 출발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왠걸 2시에 남편은 다짜고짜 출발하려고 합니다.
"여보 7시라고 해서 준비도 안했어요"
"이런 부인. 배가 고파서 정신이 흐릿하군요. 지금은 7시에요. 갑시다"
억지로 끌고 친정으로 갑니다.

한참 가던 중 남편은 "여보 별밤이 참 아름답지 않소?"
"여보. 무슨 소리세요. 지금 한창 낮인데요"
"내가 밤이면 밤이고 낮이면 낮이에요. 에잇 그냥 돌아갑시다"
그녀는 울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몇일 후 친정사람들은 놀랍니다.
그녀가 동생보다 더 조숙하고 성숙해졌기 때문입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동화입니다.
말괄량이는 보통 여성을 의미합니다.
남성은 '천덕꾸러기'가 어울리겠네요.
셰익스피어 시대는 남성우월시대라 우리는 말괄량이를 천덕꾸러기 길들이기로 바꿔 해석해도 좋습니다.

더 센 말괄량이가 나타났다


<엠마 톰슨 주연의 '더 페이버릿'. 앤 여왕과 사라 제닝스의
욕망과 암투. 남성은 서열을 정하느라 싸우는 척합니다. 여성
은 정말로 싸웁니다.>


앤이라는 말괄량이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왕이었습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합병한 지금의 '그레이트 브리튼' 제국의 주인이죠.
앵 여왕은 1714년에 사망합니다. 
독일 출신이자 영국에 귀화한 헨델은 그녀를 위해 '수상음악'을 많이 지었죠.
여왕의 총애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헨델이 영국 여왕 앤의 총애와 후원을 받기 위해 만든 '수상음악'. 물 위에서
듣는 이 음악은 황홀하다. 앤 여왕이 죽고 난 후 그 다음 왕을 위해서도 끊임없
이 헨델은 음악을 바친다. 독일에서 대접이 형편없어서 영국 귀화에 성공한다.>


앤여왕의 남편은 천연두로 사망합니다.
두딸도 천연두로 죽습니다.
모두 9번 임신했지만 모두 10살을 못 넘고 죽는 비극이 일어납니다.
앤의 남편인 찰스 2세가 사망했지만 자기 아들이 없었죠.
그래서 다른 혈통의 아들인 제임스 2세가 등극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터집니다. 
앤은 개신교의 상징입니다. 
제임스 2세는 카톨릭 수문장입니다.
가톡릭의 반란이 시작됩니다.

앤 여왕의 언니 메리는 네덜란드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래서 SOS를 칩니다.
앤 여왕의 형부가 네덜란드의 윌리암공인데 개신교의 황제격이었죠.
결국 오렌지공은 부인과 처제의 힘을 업고 잉글랜드를 침공합니다.

카톨릭의 후예 제임스 2세는 프랑스로 도주합니다.
이를 명예혁명이라고 부른다.
권리장전이 탄생하죠.
메리와 윌리암은 앤 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릅니다.


<앤 여왕의 언니 메리. 메리는 네덜란드로 시집을 갔다.
메리의 남편 네덜란드 윌리암공. 오렌지공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 더 센 말괄량이가 나옵니다.
바로 앤의 친구 '사라 제닝스'죠.
그녀는 완벽한 여성입니다. 
과감하고 저돌적이죠.
존 처칠(훗날 처칠 수상의 조상)과 결혼하면서 대박이 납니다.
앤 여왕과 언니 메리 사이에 앤의 친구 사라 제닝스가 끼면서 자매는 싸웁니다.
급기야 메리는 사라 제닝스를 감옥에 넣죠.

윌리엄과 메리는 이후 천연두로 사망.
1702년 앤의 대관식이 열립니다.
하지만 사라 대닝스는 엄청난 야망을 가진 여자입니다.
스페인 왕위계승에 간섭할 정도죠.
앤 여왕에게 대놓고 화를 낼 정도라 여왕이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습니다.
주종이 바뀐 거죠.

안되겠다싶어 앤 여왕은 또 다른 말괄량이를 들여옵니다.
아비게일이라는 여성이죠.
토리당은 애비게일.
휘그당은 사라 제닝스.
심지어 정치적으로도 적이었죠.



사라는 앤 여왕이 자기 보석이 아닌 아비게일이 추천한 보석을 차고 오자 욕도 합니다.
최초의 지라시도 이때 나옵니다.
에비게일과 앤 여왕이 동성애자라는 시를 유포합니다.
시인에게서 돈을 주고 얻어낸 가짜 지라시죠.
앤의 남편이 죽으면서 그녀는 비만과 유산으로 치닫습니다.
사라는 거기에 대놓고 비수를 꽂습니다.
"아비게일한테나 가서 징징대쇼"

8년 후 앤은 뇌출혈로 쓰러지고 사망합니다.
에비게일은 고향으로 결국 돌아갔고 사라는 80세 가까이 오래 살았습니다.
말괄량이들의 전쟁.
영국 역사에서 길이 남은 사건들입니다.
결국은 가장 센 말괄량이 사라 제닝스가 이겼네요.


<분노를 음악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
남성은 여자문제 외에는 싸울일이 없다. 여성은 그렇지 않다. 분노의 폭이 더 크다.
감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뜻이다. 화를 낼 때는 내야 한다.>

...................................................................................................

(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①⑥직장에서 딴짓하기

구글의 모토는 두가지다.
구글 홈페이지 오류를 찾아내는 사람은 프리패스 입사.
또 하나는 '직장에서 딴짓하기'다.
책상에 앉아서 모니터만 보고 있으면 발전이 없다.
키보드를 친다고 일하는 것은 아니다.
재밌는 것을 해야 한다.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한다.
뻔하디 뻔한 것은 누구나 다한다.
가끔 글이 안써지면 부장님께 '영화 좀 보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안보내주면 그냥 나갔다 와야 한다.
가능하면 구글이 된다. 
불가능하면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
노는 사람은 잡아두면 못나간다.
창의적인 사람은 쇠사슬로 묶어놔도 나갔다 온다.
직장에서 딴짓을 해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

어? 넌 좀 다르네? 퍽!

범상치 않은 사람.
유별난 사람.
환영받지 못한다.
특히 동양은 그렇다.
같아야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수업끝날때 질문하면 눈치보인다. 
개성보다는 전체가 중요하다.
튀어나오면 문제아다.

문제를 일으키면 문제아다.
다르다고 문제아는 아니다.
세상은 유별난 사람들이 만들어 왔다. 
사실 인간도 유별난 영장류라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모든 사람은 유별나다.
드러내느냐 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바흐 이전에는 비발디의 세상이었다.
비발디는 지진과 함께 태어났다.
비발디의 어머니는 지진 때문에 넘어졌다. 
그때부터 진통이 시작되면서 비발디가 세상에 나왔다.


<비발디 'storm'>

신부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비발디는 성직자였다.
문제아 신부님이다.
미사중에 사라진다.
놀러간게 아니라 바이올린 연주하러 간다.
또 사라진다.
작곡하러 도망쳤다.
교황청은 처음에는 이해했지만 결국 훈방, 주의, 경고를 연달아 먹였다.

신부수업을 할때는 아프다고 핑계를 댔다.
알고보니 방에서 작곡 공부를 했다. 
신부가 됐었어도 미사를 빼먹고 공부하다 여러번 혼났다.


<피아노로 사계 '겨울'을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한번은 카를로 골도니라는 극작가이자 법률가가 비발디를 모욕했다. 
비발디는 바이올린은 만점.
작곡가는 그저그러편.
사제로는 빵점.

비발디 성격은 폭풍같았다.
맞받아쳤다.

골도니는 험담가로서 만점.
극작가로서는 그저그런편.
법률가로서는 빵점.

비발디는 결국 사랑때문에 교황청에서 쫓겨났다. 
신은 서로 사랑하라고 했는데 아이러니다.
합창단원이자 제자인 안나 지로,
결국 사태가 커지자 교황청은 징계를 내렸다.

아이가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비발디는 결백을 주장했다. 
그 이후에는 아무도 모른다.
징계를 받을때가 비발디의 음악적 역량이 폭발했던 때다.
벌을 많이 받아서 시퍼렀게 날이 섰다.

왜 감옥만 가면 노작이 나오나

웬만한 대작이 이때 다 나온다. 
독특하다.
정치인들도 유배만 가면 명작을 쓴다.
시련은 그들을 옥으로 다듬는 것인가.


<베트남 전쟁에서 여성이 없었다면 정복당했을 것이다>

세계사에서 유일하게 정복이 되지 않은 나라가 하나 있다. 
베트남이다. 
제갈공명은 맹획을 8번 잡고 9번 풀어준 것이 아니다.
그건 그들의 주장이다.
9번이 두들겨 팼는데 포기했다. 
힘을 다 쓴 촉나라는 결국 위나라에게 먹혔다. 

프랑스가 가장 힘이 셀 때 동남아시아를 침공했다. 
베트남을 제외하고 다 식민지가 됐다.
미국이 '베트남 쯤이야'라며 공격했다. 
최초로 패배한 미국은 쑥대밭이 됐다. 
두번의 제국주의 전쟁을 호치민이 막았다. 
그는 감옥에서 벌을 받으며 이런 시를 썼다.


<영화 플래툰. 전쟁은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
과 싸우는 것이다. 적은 자기안에 있다. 이기나 지나 죽는건
마찬가지다. 음악은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쌀을 찧을 때, 
그 고통 말할 수 있으랴만 
방아 찧고나니 정녕 하얀 솜 같아라. 
사람살이도 마찬가지이지 
시련이란 당신을 옥으로 다듬는 것을!

-호치민, 옥중일기(獄中日記)


<호치민. 평생 남루한 집에서 살았다. 정약용 선생의 제삿
날을 한번도 빠뜨리지 않고 챙겼다고 한다. 박헌영과 레닌
대학교 동기다. 박헌영이 준 목민심서를 가장 좋아했다>


강해지기 위해 억지로 감옥에 갈 필요는 없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벌을 받는다고 울지 말자.
도둑질 한 것 아니고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같지 않으려는 과정에서 나오는 모습이다 .
특히 글을 쓰는 사람이나 쓰려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통과의례다.

잊지말자.
직장에서 딴짓하기.
시련은 그대를 옥으로 다듬는 것이라.



<일본은 한국에 만행을 저질렀다. 반드시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한국도 베트남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우리는 단 한번도 베트남에 사과한 
적이 없다. 지금의 경제성장은 베트남 학살로 번 돈이 밑천이었다.>

..................................................................................................

(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⑮사계절 꽃을 피우는 소녀
한 소녀를 향한 소년의 사랑.
소녀는 사계절 다른 꽃을 피운다.
쉽게 만나고 금방 헤어지는 시대.
빨리 잊혀지고 다른 사랑으로 채우는 사람들.
사랑이 아닌 욕망.
언제부턴가 사랑도 사람도 소비의 대상이 됐다.
안타깝다.

소년과 소녀가 사랑을 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판사봉?
청진기?
SKY?
금덩이?
모두 다 사라진다.
사실 사랑도 닳아 없어진다.
감정도 호르몬도 영원하지는 않다.


<샹송 가수 엘렌 롤. 노랫가사가 예쁘다.
소년의 사랑에 사계절 꽃을 피우는 소녀>

변치 않는 것은 세상에 딱 하나 있다.
'사랑이 변치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에 둘이 남아 있느냐 마느냐다.
둘만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조연이다.
사랑은 둘만의 경험이다.
모든 것은 배경이 된다.
둘의 마음은 둘만 안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


<어떻게 해야 할까? 밤은 깊어가고 날은 밝아오는데>

사랑의 유효기간


사랑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누구는 10초.
다른 사람은 3개월.
학자는 6개월.
시간은 다 다르다.
감정의 농도도 모두 다르다.
열흘 가는 꽃은 없다.
그럼에도 꽃은 사라지지 않는다.
형체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마음속에 피었다는 것이 문제다.

"꽃이 진다고 해서 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형태만 없어졌지 꽃이라는 것은 영원히 존재한다. 
-플라톤의 이데아


눈앞의 그놈이 사라진다고 해서 잊혀질까?
기억에서 지워질 뿐이지 머릿속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
보지 않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건'은 항상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랑이든 분노든.

그러면 감정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추스리는가가 중요하다.
순간의 감정.
1년, 2년, 10년, 20년, 죽기전까지 감정.
사랑해서 살거나 억지로 살거나 사랑은 존재한다.
순간의 감정이 훅 들어온 순간 선택의 문제다.
결론은 서로의 마음을 어떻게 확인하느냐다.
속마음은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드러내는 사람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엔 왜 이런 영화가 없을까. <은밀한 유혹>. "너 없
으면 이 돈도 필요없어. 미련을 내려놓는 순간 사막에 
눈이 내린다. 사랑이라는 눈>

친구집에 우연히 들른 남자.
친구를 위해 복수를 한 혁명가.
친구의 여동생과 사랑에 빠진 사람.
둘은 사랑을 확인한다.
그리고 남자는 15년 형을 받는다.
가혹하다.
몇번이나 만날까?
그대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4계절 꽃을 15번 피워야 한다.
사랑은 둘만의 경험이다. 
나머지는 배경이다.
사랑은 책임일까 감정일까.
쉽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어렵지도 않다.
둘의 마음은 둘만 안다.


<영화 부베의 사랑.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까? 
마음이 멀어져서 몸이 멀어지는 걸까?>


세기의 연인 사르트르와 보봐르.
둘은 사랑을 하면서도 자유롭게 다른 이성과 밀애를 즐겼다.
늙어서 둘이 한 말.
"보봐르는 나의 첫 여자다"
"사르트르는 나의 첫 남자다"
이상한 커플이다.
사랑을 하기 때문에 서로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것.
나같은 속물에게는 '자유로운 사랑'이 끔찍하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사랑이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
그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해체'해야 한다.
사랑도 세계도 모두 낱낱이 '분해'해서 보이지도 않는 '분자'로 각각 인식해야 한다.
사람과 사랑을 해체해 그 속성 자체를 보는 것.
위험하다.
어쩌면 우주 밖으로 튕겨나갈 지도 모른다.
나는 단언한다.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사랑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둘의 마음은 둘만 안다.
배경인 우리는 둘의 '진심'을 모른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는 것이다.


<계약결혼으로 50년을 산 사르트르와 보봐르. 사랑은
알 수 없다. 둘만 아는 것이라 다른 사람은 이해 못한다.
사랑은 지성처럼 때론 아이처럼..가늠조차 못한다>


슈만은 법대생이었다.
문학을 사랑했다.
어느날 피아니스트인 애인의 연주회에 참석한다.
'클라라'라는 어린 소녀가 연주를 한다.
감동에 가득차 사랑에 빠진다.
클라라의 아버지의 제자로 들어간다.
그리고 슈만과 클라라는 사랑에 빠진다.

슈만은 재능이 없었다. 
손가락 힘을 기른다며 돌을 손가락에 매고 연습하다 문제가 발생했다.
작곡가로 전향한다.
그러기를 몇년.
가능성이 없어보였다.


<사랑을 하려거든 그들처럼. 앞으로는 소년이 소녀에게
사계절 꽃을 피우는 날도 오리라. 남성육아휴직 만세!>


반면 클라라는 '파가니니', '괴테', '리스트' 등 당대의 최고 음악가들과 교류를 했다.
여성 베토벤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당시 20살의 미래가 보장된 여성.
결혼을 하겠다는 두 남녀.
아버지는 반대했다. 
무능한 슈만이 싫었다.
슈만은 3류 작곡가였다.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법정에 선다.
수년이 흘렀다.
법원은 둘의 결혼을 허락한다.

슈만은 법원의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시인의 노래'라는 가곡집을 만든다.
그 힘든 시간을 견디며 오직 클라라만을 생각하며 쓴 곡이다.
슈만은 죽은 후에 음악이 빛났다.
그동안 클라라가 매년 4계절 새로운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소년에 대한 소녀의 사랑.
소녀에 대한 소년의 사랑.
소년 슈만은 빛났고.
소녀 클라라는 꽃이 졌다.
훗날 사람들은 슈만의 노래만 기억한다.
그 안에서는 클라라가 살아나 사랑을 노래한다.

사랑은 둘만의 경험이다.
둘의 마음은 둘만 안다.
나머지는 배경이다. 
이 많은 인파속에서 그대만 보이는 이유.
시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그대 말만 들리는 이유.



<슈만은 오직 클라라만을 위해 작곡했다. 클라라만을 위해 연주했다>

..........................................................................

(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⑭직진만 하는 인생은 피곤해
 
인생이 직진이면 좋습니다.
다만 주위 사람들이 피곤하죠.
굳은 심지.
쉽게 가질 수 없습니다.
직진인생이더라도 때로는 유연하면 더 좋겠죠.

독일의 음악가 '바그너'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같은 천재에게 사람들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것은 당연하다"


<바그너. 당대는 브람스와 양대산맥이었다.>


그는 자존심도 세고 고집도 강했습니다.
음악을 만드는 댓가로 돈을 지원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아낌없이 돈을 썼고 대작을 만들었습니다.
재능도 뛰어났죠.
니벨룽겐의 반지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사랑도 직진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친구인 리스트.
그는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결혼합니다.
코지마는 리스트의 사생아입니다.
그러나 이미 결혼을 하고 아이가 셋이었습니다.
심지어 나이 차이도 20세가 넘습니다.
코지마의 남편은 바그너의 훌륭한 제자였습니다.
제자의 아내와 결혼을 한 것이죠.
이유는 "난 이 여자가 좋다"였습니다.
코지마는 결국 바그너와 재혼을 합니다.
코지마의 남편은 바그너의 제자였지만 당황스러웠습니다.
이후 바그너의 라이벌인 브람스에게 갑니다.
평생 바그너를 증오하며 삽니다.


<지옥의 묵시록 주제가이기도 한 '발퀴레의 기행'. 영화도
잔인하고 무섭습니다. 히틀러도 그렇죠.>


당시 바그너의 친구인 리스트도 절대적으로 반대했었습니다.
직진인생 바그너는 결국 황당한 결혼을 성공했습니다.
남편이 있고 자식이 셋인 여성과 결혼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이렇게 복잡한 관계속에서.

역설적이게도 바그너는 코지마와의 결혼생활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날이었습니다.
정말 직진이죠.
이 당시 코지마의 내조 덕에 최고의 음악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죠.

바그너는 이후 어디선가 20대 미혼 여성을 데려옵니다.
재혼을 하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직진도 어지간히 해야죠.


<케인즈가 경고했다. 1차대전을 
일으킨 죄로 독일을 저렇게 못살게
굴면 두번째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바그너의 음악은 웅장합니다.
히틀러가 좋아했죠.
'발퀴레의 기행'
히틀러는 전쟁을 벌일때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순례자의 합창'
홀로코스트 가스실에서 유대인을 학살할 때 이 노래를 틀었습니다.
유대인들을 죽이면서 끝까지 이 노래를 듣게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정작 '순례자의 합창'은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주제입니다.


<바그너의 순례자의 합창. 홀로코스트 사연을 알고 듣는
다면 정말 소름이 돋습니다.>


바그너와 히틀러의 공통점은 없습니다.
한명은 성격이 구부러지지 않았고 한명은 학살자입니다.
한명은 음악가고 한명은 미술가입니다. 
굳이 공통분모를 찾자면 '죄책감이 없는 나쁜 남자'입니다.
결혼.
학살.
두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잘못된 것'이라는 의심을 했었을 겁니다.
다만 성찰이 부족했다는 것이죠.
나쁜 남자는 매력적입니다. 
죄책감과 성찰이 없는 나쁜 남자는 매력이 없습니다.

사랑을 쟁취하는데 이유가 있겠습니까.
다만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쟁취만 하다보니 결국 심장마비가 온 것이겠죠.
초인플레이션으로 망해가는 독일을 살리겠다는 히틀러는 대중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권력은 달콤했고 이는 복수심에 불을 질렀습니다.
자기성찰이 없다면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입니다.

누구나 자기 생각이 있습니다.
자기 주장도 있죠.
히틀러처럼 자신의 투쟁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찰이 없다면 아마 그 끝은 낭떠러지겠죠.?



<바그너는 죄가 없다. 히틀러가 나쁠 뿐.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이 
오페라는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다.>


..................................................................................................

(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⑬과도한 안도감과 희열감
 
최초의 경제학자는 의사였다.
프랑스 출신 의사 '프랑수아 케네'
그는 혈액의 순환을 예로 들어 경제현상을 설명했다. 
돈은 돌라고 해서 돈이다.
피처럼 돈이 잘 돌아야 사람이 살고 경제가 산다.
피는 끊임없이 생겨나고 죽는다.
은행에서 찍어낸 돈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다시 만들어 낸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경제도 인간의 생로병사와 같은 것이다. 
인간이 병드는 것이나 경제가 침체되는 것도 같은 원리다.

때로는 인간이나 경제나 큰 실수를 한다.
잘못하면 사망한다.



죽음과 행복 둘다 안도감을 부른다

케인즈는 이런 말을 남겼다.
"돈을 미친듯이 뿌려대면 욕조안에서 과도한 안도감과 희열감을 느끼며 죽는 것과 같다"
손목을 그은 사람이 따뜻한 욕조에서 잠이 들면 그대로 저승길이다.
물안에서는 피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빈혈이 안도감을 부른다.
희열이 죽음을 부른다.
케인즈의 말로는 '유포리즘'.
안도감이라는 '유포리아'가 어원이다.

노동이 사라진 세상.
금융자본주의 시대.
몸안의 세포보다 피가 넘치는 경제.
언젠가는 욕조안으로 흘러들게 된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여기에 임박해 있다.
노동은 가치다.
효용은 그저 교환일 뿐이다.


정의가 패배할 수 있음을. 폭력이 정신을 꺾을 수 있음을. 용기가 보답받지
않을 수 있음을 스페인 내전에서 배웠다. -앙드레 말로. 영상은 영화 <랜드 앤 프리덤>


유포리아는 마법이 아닌 마술. 눈속임

안도감과 희열감.
인간이 느끼는 최고의 감정이다.
해방과 자유.
세상은 유포리아를 거저 주지 않는다.
헌금을 내거나 돈을 내거나 땀을 내야 한다.
자유는 자기가 가져야지 남이 주지 않는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정치, 종교, 문화.
모두 유토피아를 얘기하지만 뒤로는 돈을 챙긴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거짓 선지자를 경계하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다가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이니라"

우리는 알면서도 매번 당한다.
하얀 솜사탕을 유포리아라고 흔들어대면 어김없이 달라든다.
구원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무소의 뿔이다.



아이돌은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유포리아를 부른 방탄소년단을 만났다.
솔직히 무슨 노래인지 모르겠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다.
한해에 300그룹의 아이돌이 공장에서 생산된다.
그중 하나가 대박이 났다.
솜사탕을 흔들어 댄다.
소녀들은 달려든다.
코뭍은 돈 치고는 꽤 많다.

두가지를 말하고 싶다.
한류나 빌보드나 목적은 돈이지 '구원'이 아니다.
돈이 목적인 승냥이는 항상 종교의 얼굴로 들이댄다.

무지개처럼 지워진 꿈을 찾아 헤맸을까
운명같은 흔한 말관 달라
아픈 너의 눈빛이 나와 같은 것을 보는 걸
Will you stay in dreams
저기 멀리서 바다가 들려
꿈을 건너서 수풀 너머로
선명해지는 그곳으로 가

Take my hands now
You are the cause of my euphoria

모래바닥이 갈라진대도
그 누가 이 세계를 흔들어도
잡은 손 절대 놓지 말아줘
제발 꿈에서 깨어나지 마

너는 내 삶에 다시 뜬 햇빛
어린 시절 내 꿈들의 재림
모르겠어 이 감정이 뭔지
혹시 여기도 꿈 속인건지
꿈은 사막의 푸른 신기루
내 안 깊은 곳에 아프리오리

숨이 막힐 듯이 행복해져
주변이 점점 더 투명해져
저기 멀리서 바다가 들려
꿈을 건너서 수풀 너머로
선명해지는 그곳으로 가

-BTS 유포리아 가사


이 노래를 듣고 한 소년이 생각났다.
지옥을 탈출하지 못하고 해변에 쓰러진 3살 아이.
아이 얼굴에는 차가운 파도만 계속 흐른다.
난 BTS의 유포리아가 그 소년을 이야기 하는 줄 알았다.



'아이다' 오페라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나는 칼로 적을 막고 피리로 승전고를 울린다"
"아니다. 당신은 칼로 사람을 죽이로 피리로 조롱을 한다"


유포리아는 큰 부자가 된 자신들의 안도감일까.
대중문화는 기분이 좋은데 허영심을 먹고 자라는 단점이 있다.
승리의 노래가 조롱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유포리아를 말하는 게 아닐까.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데.
눈속임일지도 모른다.
트롱프뢰유.
넥타이를 안맺는데 맨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
솜사탕을 흔들어대는 효과.



박제된 90년대

대중문화는 90년대를 꿈꾼다.
그때가 전성기다.
창작도 많았는데 베끼는 것도 많았다.
팔게 많았던 시절이다.
돈도 많이 벌었다.
IMF가 빵하고 터졌다.
속 빈 강정이 드러났다.
대중문화의 거품도 걷어졌다.
경제나 문화나 베껴대던게 더이상 안통했다.
그래도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베껴대고 있다. 
한쪽은 실리콘밸리, 한쪽은 빌보드만 쳐다보고 있다.
뒤로는 중국도 경계한다.
더 빨리 베끼는 민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 것은 없다. 
다 남의 것 베껴놨다.
기자들도 베낀다.
틀린 줄도 모르고 베껴댄다.
천재 소년은 지도교수가 논문을 베끼는 바람에 바보가 됐다.
5G는 안베낀척 하려다 결국 길거리에서 터지지도 않는다.
요금제만 비싸다.
베껴대면 이렇게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진다. 

한국의 문화는 90년대에 박제돼 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아이돌.
공장에서 찍어내는 아이들.
인형이 돼버린 소년들.
섹스어필이 돼버린 소녀들.
2019년은 주크박스다.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복고열풍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거 만들기엔 부담스럽다.
그래서 예전것을 우려먹는 것이다. 
90년대 노래를 트는 주크박스 뮤지컬.
이걸로 안되면 영화로 무비컬.
무비컬도 안되면 안유명한 음악을 짜깁는 컴필레이션 뮤지컬.

어찌어찌 하다보니 갈곳이 없어 BTS까지 갔다.
생각이 없는 문화는 미래가 없다.



<크렌베리스 '좀비'>
.........................................................................................................

(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⑫너무 늦었네요
 
베토벤은 술을 좋아했다.
귀도 안들리고 노년에는 눈도 안보였다.
말년에는 포도주 회사에서 한박스를 보내줬다.
베토벤은 답했다.
"너무 늦었네요"
얼마안가 그는 사망한다.
베토벤의 사인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매독에 걸렸다고 의심받았다.
묘안의 시신을 꺼내 해부했다.
매독이 걸리면 수은중독이 나와야 하는데 납중독으로 판명됐다.
싸구려 포두주병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천재인지 아닌지 또 꺼내서 해부했다.

1824년에 '환희의 송가'를 발표했다.
베토벤은 인류의 자유라는 큰 꿈을 꿨다.
아버지와 달리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는 30년동안 프로젝트를 짠다.
그것이 '환희의 송가' 합창이다.
자유의 합창.
원래 꿈이 원대한 사람이었다.
극악의 환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

 

마니아는 교향곡보다 현악 4중주

베토벤이 마지막으로 작곡하던 곡은 현악 4중주다.
악보에는 마지막 메모가 남겨져 있다.
"Muss es sein"
"Es muss sein"

영어로는 "Must it be?"
"It must be"다.

어렵고 힘들게 내린 결정.
반드시 그래야만 할까?
그래야만 한다.

그리고 옆에는 이런 메모도 같이 있었다.
"박수를 쳐라. 희극은 끝났다"
베토벤은 "자신의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낸 사람"이었다는 의미다.
유언이었다.
베토벤의 생각은 '불멸의 사랑'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
그것을 음악으로 '불멸'하게 새기고 싶었다.
유일한 오페라인 '피델리오'에 그대로 나타난다.
원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보면 반드시 결과가 나온다.
때로는 엉뚱하지만 어떻게든 결과로 나타난다.

사랑도 피아노도 너무 늦었다

반면 슈베르트는 소박한 삶을 살았다.
슈베르트는 한마디로 '겨울나그네' 그 자체다.
빌헬름 밀러가 만든 시에 가곡을 만들었다.
'겨울나그네'는 1번 '안녕히 주무세요'부터 마지막 '거리의 악사'로 끝난다.
삶이 참 재밌다. 
왜냐면 노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소박한 가정을 이루고 피아노 한대 갖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피아노도 마지막 연주회에서 번돈으로 겨우 샀다고 한다.
겨울나그네를 보자.

 
<사랑에 실패하고 떠난다는 말도 없이 가버리는 슈베르트.
그 여자는 그 남자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도 모른다. 
유리창 옆에서 작별인사를 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치없이
걷다 얼어죽는다.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고독한 남자
슈베르트>


마이스터를 찾아 떠난 한 나그네.
그곳에서 마이스터의 딸을 사랑하게 된다. 
고백도 못하고 끙끙 앓기를 몇년.
그녀는 사냥꾼을 사랑한다.
사실을 알고 떠난다.
좋아했다는 것도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떠난다는 말도 없이 간다.
가을에 가거나 봄에 갈만도 하건만.
꽁꽁 얼어붙는 겨울. 
그것도 마음먹은 바로 그날 밤.

1번 '안녕히 주무세요' 가곡은 유리창 너머로 자고 있는 그녀에게 속으로 말하고 떠난다.
그러다 몸이 꽁꽁 얼어붙는다.
마음도 언다.
길을 걷다 정신을 잃는다.
보리수 나무에서 그녀를 생각한다.
꿈을 찾아 헤매는 자신의 모습.
성밖을 나가니 눈보라가 휘몰아 친다. 
길도 모른다.
다시 쓰러져 정신을 잃는다.
어디선가 거리의 악사가 연주를 한다.
정신이 들낙날락 하는 중 음악이 가물가물 들린다.
그러다 눈속에서 사망한다.

꿈꾸는 그대를 방해하지 않겠소.
평온함을 깨뜨리지는 않았으면.
내 발소리 들리지 않게.
조용히, 조용히 문을 닫아요.
지나가며 그대의 문에 써놓으리다.
'잘 자요'라고.
그러면 그대도 알겠지요.
내가 그대를 생각했음을

-겨울나그네 1번 '안녕히 주무세요'



실제 슈베르트는 이렇게 죽었다. 
운명이 겨울나그네다.
피아노와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베토벤과는 극과 극이다. 
슈베르트는 우물쭈물 하다가 삶을 끝냈다. 
생은 일찍 마감했지만 뭘하든 제때 맞추지 못했다.

큰 별 작은 별 없다. 모두 같은 별이다.

현대의 음악가 제럴드 무어.
그는 음악을 좋아했지만 큰 재주는 없었다.
평생을 반주자로 살았다.
공연이 끝나면 그의 대기실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저 음악이 좋아서 했을 뿐이다. 
행복한 반주자.
결국은 모든 음악가들이 그의 반주에 맞춰 노래부르고 싶어했다. 
그의 고별무대.
독주를 사람들은 요구했다.
무어는 거부했다. 
단 한번도 무대에서 주인공이 아니었어도 자신은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어두운 객석에 앉았다.
그리고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관객들의 소동이 그렇게 듣기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고독하게 음악을 해왔다.
그건 자기가 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를 최고의 음악가로 추켜세우는 것이 의미 없어진 것이다.
'너무 늦었다'

 
<슈베르트의 '음악에'. 내용은 '그냥 음악이 좋다'이다.
제럴드 무어가 가장 좋아했던 곡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음악이 좋았다고 한다. 좋으면 그냥 하는 것이다. 누가
알아줘서 하나. 좋아서 하는 거지 >

소중한 건 곁에 있다.
알아차릴 때는 너무 늦다.
It's too late.

..........................................................................................................................

(예술과 인문학의 만남)⑪금지된 사랑
 
금지된 사랑에 목을 매는 사람.
사람은 독특한 동물이다.
도시락을 싸들고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저 죽을 줄 알고 금지된 것을 사랑하는 동물.
금지된 것을 사랑할때 느껴지는 감정 '에로티즘'이다. 

베르테르는 왜 목숨을 끊었을까.
에로티즘을 극복하지 못했다. 
갖지 못하는 것을 사랑하게 되는 감정.
소유하지 못해서 아름다운 사랑을 이기지 못했다.
사랑하지 못한게 아니라 사랑해서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금지된 것을 사랑하는 아름다움을 견디지 못하고 사랑을 소유하는 순간.
그것은 신기루 처럼 사라진다. 
사랑을 잡으려 하면 시들어 버린다.
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 
그것이 에로티즘이다.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지된 사랑은 사람을 끊임없이 졸라댄다. 
금지된 사랑에 발을 들여놓으면 막장이 된다. 
지족대사는 수십년의 면벽수행을 했다. 
하루는 황진이가 찾아왔다. 
영롱한 등잔불 아래서 말없이 앉아있다 떠났다.
지족대사는 그날부터 야차가 돼 평생 황진이를 찾아다녔다.
에로티즘을 벗어나버린 것이다.
사랑을 소유하려는 순간 손안에서 신기루처럼 빠져나간다.
그리고 귀신에 홀린 듯 집착하게 된다.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사랑을 잡으려.

이성은 때로는 뮤즈처럼.
때로는 엄마나 아빠처럼 다가온다. 
금방 사랑에 빠지는 현상.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이다. 
이성을 밝히는 것이 아니 '에로티즘'의 모습이다.
금지된 것을 사랑하는 존재.



금지된 사랑에 빠진 프랑스 음악가 '드뷔시'
청소년때 후원자의 딸과 사랑에 빠져 쫓겨난다.
다음은 '바니에'라는 후원자의 아내와 사랑에 빠진다.
몸이 떨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
훗날 가브리엘 뒤퐁이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또 다른 사랑을 찾아 헤매는 드뷔시.
뒤퐁은 자살 소동을 벌인다.


<뒤퐁 덕분에 만든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프랑스 시인 말라르메의 시에 곡을 붙였다>


목신

나는 이 요정들을 영원한 존재이게 하고 싶다.
이 요정들의 연분홍빛 살결은
하도 깨끗하여, 숲 속의 잠으로 해서
졸리운 공기 속을 떠돌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꿈이었었나?
옛날 밤에 쌓인 내 의혹은 절묘한 수많은 나뭇가지에서
끝나버리고 그 가지들은, 실제의 숲은
그대로 남아 있어 슬프게도 그것들을 증명한다.
내가 혼자서 장미의 상상적 착오를 승리로써 나 자신에게 돌렸음을.
곰곰히 생각해 보자

-말라메르 시집 '목신의 오후' 중 일부


로댕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
드뷔시는 그녀와도 사랑에 빠진다.
로댕이 43살.


19살의 천재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클로델이 19살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그 사이에 드뷔시가 금기를 넘나든다.
사실 로댕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클로델은 홧김에 드뷔시와 짧은 연애를 한다.
천재 조각가인 클로델.
이별의 선물로 '왈츠'라는 동상을 드뷔시에게 준다.
클로델은 로댕에게 돌아간다.


<드뷔시가 평생 간직했다는 카미유
클로델의 동상 '왈츠'>


이후 패션모델과 사랑에 빠진 드뷔시.
결혼은 다른 여성과 했다.
에로티즘에 빠지는 사람은 상처를 받는다.
결국 자신도 막장의 주인공이 돼 가브리엘 처럼 권총자살 소동을 벌인다.
정작 아이는 다른 사람과 낳는다.
엠마라는 유부녀와의 사랑.
슈슈라는 딸을 낳는다.
이름은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딴 '클로드 엠마'


<드뷔시의 딸 '슈슈'를 보면서 만든 '어린이의 세계'.
드뷔시는 보이는 음악인 '인상주의'를 만든다. 음악이
시각적이다.>


금지된 것을 사랑하는 것은 본능이다.
중요한 것을 금지된 것을 소유하느냐 마느냐다.
손에 쥐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다.
자신도 같이 증발한다.
가지지 않는다면 '에로티즘'이 극에 달한다.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름다움 그 자체로 남는다.
불멸이다. 
쉬운 말로는 정신적 사랑.
어렵게 말하면 플라토닉 사랑.
에로티즘도 많이 느끼면 둔감해진다.
베르테르나 드뷔시처럼 소동을 벌일 수 있다.


<사랑에 실패했다면 드뷔시의 음악을 들으라는 말이 있
습니다. 사랑하고 싶다면 드뷔시의 음악을 들으라는 말도
있죠. 드뷔시는 사랑만 연주했습니다. '달빛'>


그럼에도 인간은 사랑의 불나방이다.
사랑에서 모든 영감이 나오기 때문이다. 
에로티즘 앞에선 그대는 어떻게 할까?
그곳에서 예술과 진실이 가장 빛나는 승리를 거두길. 
  • 박민호

삶과 철학 그리고 피아노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