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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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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인터뷰)‘크게 될 놈’ 김해숙, 그래서 ‘엄마’를 이해하게 된 지금

“수 많은 엄마 연기, 이제야 진짜 ‘엄마’의 마음 알게 됐다”

2019-04-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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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국민 엄마란 타이틀은 딱 한 명에게만 붙일 수 있다. 배우 김해숙. 이견이 나올 수 없는 수식어이다. 김해숙의 연기에선 모든 종류의 어머니가 있다. 세상의 어머니는 다양하다. 영화 무방비도시속 범죄자 엄마도 있다. ‘박쥐속 기괴한 엄마도 있다. ‘깡철이속 치매에 걸린 엄마도 있었다. ‘희생부활자속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엄마도 있다. 영화 재심에서의 눈물 겨운 엄마도 김해숙이었다. ‘허스토리속 세월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엄마도 김해숙의 모습에서 나왔다. 모든 엄마가 김해숙이었다. 엄마들의 모습은 언제나 달랐지만 그 엄마들 속에서 김해숙이 연기한 엄마는 언제나 한 가지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다. ‘모정이다. 색깔이 다르고 모습이 다르고 감정이 달라도 모정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랬다. 세상에 마르지 않는 샘물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모정한 하나 뿐이라고. 김해숙은 배우로서도 또 인간 김해숙으로서도 언제나 엄마였다. 최근 개봉한 신작 크게 될 놈에서도 그는 마르지 않는 모정의 엄마로 돌아왔다. 그는 엄마가 될 수 있었고, 또 엄마가 됐고, 이제 엄마를 연기하다 보니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됐단다. 환갑을 훌쩍 넘긴 이 베테랑 연기자의 진심은 언제나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배우 김해숙. 사진/준앤아이
 
영화 개봉을 며칠 앞두고 만난 김해숙은 지독한 몸살 감기로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주 앉은 그의 모습에선 지금까지 자신이 연기해 온 모든 엄마의 모정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잠시 개인사를 주고 받으며 엄마란 화두로 인터뷰를 시작해 봤다. 그는 이제야 아주 조금은 엄마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단다. 수십 년 째 엄마를 연기해 왔지만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이에서 그것을 알게 됐단다.
 
살다 보니 알게 됐죠. 우리 엄마가 나한테도 이런 마음이었구나. 정말 많은 엄마를 연기해 왔지만 그걸 그냥 기계적으로 연기를 한 것뿐이죠. 나도 딸 둘을 키웠지만 몰랐죠. 왜 그렇게 엄마하고 지지고 볶고 싸우며 그랬는지. 왜 우리 엄마가 나한테 그렇게 모진 말도 하고 그랬는지. 다 자식이 힘든 게 너무 가슴에 아팠던 거야. ‘널 위해서라고 하면서도 모진 말을 내 뱉으시는데. 오죽하면 그랬을까. 난 이제 알겠더라고요. 그렇데 많은 엄마를 연기하면서도 잘 몰랐는데.”
 
그런 가슴 절절한 모정은 언제나 김해숙의 화두였다. 사실 그건 대중들이 김해숙을 통해 원하고 또 보고 싶었던 엄마였을 것이다. 그래서 김해숙이 만들어 낸 엄마는 우리 모두의 엄마처럼 다가왔다. ‘크게 될 놈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형수 아들을 둔 엄마이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을 건 낸다.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오간다.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오롯이 홀로 받아낸다.
 
배우 김해숙. 사진/준앤아이
 
제가 연기한 순옥이 까막눈이잖아요. 이 작품 출연 결정도 글도 모르는 섬마을 늙은 아줌마가 아들 하나 살려 보겠다고 글을 배우고 그 먼 거리를 오가며 고생하는 마음이 와 닿더라고요. 삐뚤빼뚤한 글로 쓴 편지를 보내는 장면이 참 좋았죠. 그게 엄마 마음 아닐까요. 아들이 비록 나쁜 짓을 저질렀어도 엄마는 포기를 못하잖아요. 이 영화가 그걸 담았더라고요. 영화 속 편지가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 아닐까요.”
 
워낙 다양한 엄마, 그리고 너무도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모정을 많이 연기했기에 심적으로도 매번 힘든 고충이 있었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사형수 아들을 둔 엄마다. 젊은 시절에 연기한 엄마였다면 과연 이런 일이 있을까싶기도 했다고.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더 많은 삶을 살아오다 보니 이번 크게 될 놈속 엄마의 삶은 분명히 현실처럼 다가왔다. 이미 주변에선 이보다 더 힘든 상황이 많지 않냐며 되묻는다.
 
뉴스만 봐도 그러잖아요. 정말 세상에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이 너무 많고. 이런 엄마도 있을까? 아니 더한 엄마도 있겠죠. 왜 없겠어요. 그래서 이런 힘든 상황을 연기할 때는 제가 온전히 마음으로 다가서지 않으면 정말 제대로 전달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힘든 작품 하나 끝내고 나면 몸이 좀 많이 나빠지죠. 이번에도 감기가 너무 심하게 걸린 게 아마 그 여파가 좀 있나봐요(웃음)”
 
영화 '크게 될 놈'스틸. 사진/영화사 오원
 
영화에선 아들 기강(손호준)을 살라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속을 썩히는 못된 아들이지만 아픈 손가락이라고 부른다. 사실 그런 아들보다 더 아픈 손가락이 딸 기순(남보라)이다. 아들에게만 온 신경을 쓰고 있는 엄마의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한 딸 기순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겐 또 다른 아픔이다. 힘들고 지치고 아프기도 하지만 기순은 그걸 묵묵히 받아낸다. 그래서 더 안쓰럽다.
 
정말 미안하죠. 아휴 지금 생각해도 안쓰럽네(웃음). 아마 모든 엄마들이 다 그럴 것 같아요. 열 손가락 중에 아픈 손가락도 있고 조금 믿는 손가락도 있고. 절대 안 아픈 손가락은 없어요. 절대요. 아들은 그저 아픈 손가락이죠. 다 컸지만 언제나 엄마인 순옥에겐 물가에 내놓은 어린 아이 같은. 반면 자기 일 알아서 잘 하는 기순이는 믿는 손가락이랄까. 의지가 되고. 미안하지만 엄마도 그럴 구석이 하나 있어야 했죠. 기순이도 그걸 알고는 있어요. 세상 모든 딸이나 아들이 알고 있어요.”
 
가장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갔다. ‘국민 엄마. 그는 언제나 이렇게 불려왔다. 그가 연기하면 어떤 모정이든 진짜 엄마가 됐다. 이미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색깔의 엄마를 연기했지만 그건 김해숙이 연기한 엄마이기에 가능했다. 관객들은 그 모든 엄마에게서 자신의 엄마를 바라보게 된다. 물론 이런 평가 자체가 진부할 수도 있다. 김해숙이란 대배우이기에 진부함이란 타이틀이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배우 김해숙. 사진/준앤아이
 
“’이번에도 또 엄마야라고 하실 수도 있을 거에요(웃음). 글쎄요. 제 생각에는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연기가 엄마 연기에요. ‘그냥 엄마면 다 엄마 아니야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비슷한 시기에 무방비도시’ ‘해바라기’ ‘박쥐를 연달아 하면서 모두 엄마로 나왔어요. 다 다른 엄마잖아요. ‘세상에 이런 엄마가 있다고?’라고 저도 놀랐으니. 그때 제가 엄마도 장르다라고 했으니. 하하하. 아직도 표현 못한 엄마가 있죠. 배우로서 엄마로서 전 언제나 즐거워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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