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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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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파랑새를 쫓아 하늘로 올라간 피터팬

2019-04-04 14:22

조회수 :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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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기억의 이름이었습니다. 취재를 위해 며칠 전 약속을 했던 한 영화 관계자와 오전에 만났습니다. 군입대 전 대학 시절 영화 현장에서 일을 할 때 알게 된 분입니다. 꽤 흥행도 했던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셨습니다. 연출 준비도 했는데 잘 안돼 최근에는 준비 중이란 스탠스만 유지한 채 숨고르기를 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필요한 것들을 듣고 또 질문하고. 모닝 커피를 겸한 자리에서 대화를 주고 받던 중이었습니다.
 
김 기자 혹시 예전에 000에 스태프로 일했던 적 있었지 않나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에요. 그걸 기억하시고. 크래딧에도 이름 못올렸는데. ㅎㅎㅎ
그 영화에 스태프로 있었던 oo 기억해?”
누구지? 00? 00? ~~~~”
 
당시에 인상 좋은 그 분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결론은 지난 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름을 밝히기도 나이와 성별을 밝히기도 어렵습니다. 개인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그 분이라고만 하겠습니다.
 
 
 
제가 영화 스태프로 일하던 시기인 1990년대 말에는 이른바 표준계약서도 없던 시기였습니다.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촬영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각 파트별 스태프 막내들은 급여는 꿈도 못꿀 시기였습니다. 그저 먹여주는 끼니와 해당 작품의 제목이 새겨진 두툼한 외투(겨울용) 혹은 반발티(여름) 한 벌이면 족합니다. 거기에 해당 영화에 참여했다는 증거가 되는 시나리오 한 부. 이게 급여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막내 스태프라도 연봉 개념으로 1000만원 수준의 수입을 얻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 금액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예전에 비해선 천지개벽 수준입니다.
 
돌아가신 그 분의 경우 1990년대 말 영화 현장을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이 관계자 분과 나눈 얘기로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꿈 하나만 쫓으며 영화란 파랑새를 찾아 해매던 그 분의 마지막이 너무 허망하게 들렸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쓰며 연출 데뷔를 준비 했었다고 합니다. 데뷔 감독이 아니기에, 스태프로서 참여한 작품이 워낙 예전이었고 막내급 스태프였기에 스태프 조합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것 같다고 합니다. 사실 말 그대로 영화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경험을 밑천 삼아 감독을 꿈꾸던 지망생이었을 뿐입니다.
 
이 관계자 분은 당시 그 영화의 현장 프로듀서였습니다. 그래서 어렴풋이 기억을 해낸 것입니다. 본인도 파랑새를 쫓았고 그 파랑새를 잡아본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사실은 꿈만 꾸며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단 푸념을 합니다. 돌아가신 그 분처럼.
 
그 분의 덧없는 죽음을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의 꿈을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2011년 대 초반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님의 죽음이 기억이 났습니다. ‘죄송하지만 배가 너무 고프다. 먹다 남은 김치와 찬밥이 있으면 좀 나눠 달라고 적힌 메모장을 자신이 새들어 살던 집주인 집 대문에 붙여 놓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던 분입니다. 지병도 있으셨던 걸로 압니다. 하지만 극심한 생활고가 결국 최 작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표준계약서가 도입된 현재.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화 현장은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정말 최소한이지만 꿈만 먹고 살 수는 없는 현실에서 그 꿈을 쫓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이 될 동력을 표준계약서가 제공하고 있습니다.
 
운전을 하고 가다가 기름을 떨어지면 보험사에 전화를 겁니다. 그러면 보험사에선 주유소까지 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름을 제공합니다. 그 최소한의 기름을 갖고 다시 달릴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주유소까지 힘겹게 가는 것이고요.
 
저 역시 한때 영화 제작 현장에서 현장 밥을 먹으며 꿈을 쫓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그 분이나 8년 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신 고 최고은 작가도 그러하셨을 겁니다. 저 앞에 주유소가 있는데. 거기까지 갈 그 최소한의 기름만 좀 누군가 주셨으면. 도와주셨으면.
 
도움을 구걸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과 말이 곧 힘이 되는 자리에 있는 분들. 제발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 하시길. 영화계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버린 박양우 문체부 장관님. 그리고 영화계의 힘 있으신 분들. 본인들의 꿈을 위해 본인들의 파랑새를 위해 그 최소한의 기름이 돼 버린 여러 청춘들의 금 쪽 같은 시간을 제발 귀하게 여겨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영면하시길.’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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