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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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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로 돈의문박물관마을①)돈의문 안 ‘작은 시간의 섬’, 6백년 역사 담아 미래를 비치다

한양도성 성문 안 첫 동네, 역사의 질곡 그대로…'뉴타운' 아픔 딛고 박물관마을로 조성

2019-04-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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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2019년을 사는 청춘들에겐 아파트가 삶의 터전이 된 지 오래이고, 어릴 적 모든 놀이활동은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에서 이뤄진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1960~1980년대 유년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골목의 기억’이란 것이 남아있다. 그 때의 골목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었다. 놀이터이자 사교장이자 학습공간이며, 웃음과 눈물이 모두 그 곳에서 탄생했다. 
다시 2019년, 골목의 기억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돈의문박물관마을이라는 기억의 보관소가 탄생했다. 예전 어렸을 때 보던 골목들의 모습도, 오락실도, 만화방도, 극장도, 사진관도 모두 그 곳에선 그 때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이는 기성세대에겐 옛 향수를, 젊은 세대에겐 경험하지 못한 흥미를 불러온다. 요즘 흔히 얘기하는 뉴트로(New+retro)를 그 곳에서 만날 수 있다(편집자 주)
 
철거 위기에서 골목과 동네의 역사성을 인정받아 박물관마을로 재탄생했다. 사진/박용준기자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을 새로 지은 것이 아니다. 조선이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래 한양도성 성문 안 첫 동네는 600년 넘게 오랜 역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시대가 흥하면 흥하는대로 힘들면 힘든대로 끈질기게 버텨내던 마을도 뉴타운 광풍 앞에서만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다행히 전면철거 위기에서 문화시설을 넣는 도시재생 방식으로 보전을 택하면서 동네는 사라질 위기에서 벗어났다.
 
역사 흐름 따라 동네도 흥하기도 아니기도
 
1396년 조선 태조는 수도 한양의 8문을 완성하면서 경희궁에서 독립문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서대문에 해당하는 돈의문을 만들었다. 돈의문 밖으로는 의주, 마포·양화진 등으로 이어지며 사람과 물자의 통행이 잦았다. 그러면서 자연히 거주지역인 새문안동네가 형성됐다.
 
개항 이후까지만해도 경인철도로 경성에 온 외국인들이 돈의문으로 드나들며 함께 번창하던 새문안동네는 일제가 1915년 돈의문을 헐면서 성문 안 첫 동네라는 독창성을 잃었다. 일제강정기에 새문안동네에는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고, 인구가 늘면서 큰 필지는 작게 쪼개져 사방팔방 연장되는 골목과 독특한 형태의 도시한옥을 남겼다.
 
과외방에서 식당가로 변한 동네
 
1960년대 새문안동네에는 새로운 독창성이 생겼다. 덕수초, 경기중, 서울고, 경기여고, 경기고 등 당시 내로라하던 명문학교가 죄다 새문안동네 근처에 자리잡았다. 덕분에 새문안동네 주택가에는 명문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과외방이 하나 둘 자리잡았다. 시대마다 유행하던 과외도 달라 1960년대엔 중학교 입시 과외, 1970년대엔 고입·대입과외가 성행했다. 새문안동네의 사교육 열풍은 1970년대 말 명문고의 강남 이전과 1980년 정부의 과외 금지정책이 발표되며 자취를 감췄다.
 
1980년대 중반 새문안동네엔 주변 대기업, 관공서, 병원 등 직장인과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식당가가 들어섰다. 초기엔 가로변에 자리잡던 식당들은 점점 골목 안으로 들어왔고, 동네가 식당가로 변하면서 기존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떠났다. 주민이 떠난 자리엔 다른 식당이 들어서는 일이 반복돼 2000년에는 마을의 90%가 식당으로 운영됐다. 문화칼국수, 풍미추어탕, 한정, 안동회관, 경향신문 배달소년 기숙사 등은 당시 새문안동네를 차지하던 이름들이다.
 
전면 철거 위기에서 역사성에 주목
 
뉴타운 광풍 속에서 새문안동네도 2003년 돈의문뉴타운으로 지정됐다. 그나마 남은 사람들도 점차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고, 식당들도 이주비와 영업보상비를 받고 멀지 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전면 철거라는 위기를 눈 앞에 둔 시점, 도시재생이 찾아왔다. 
 
도시재생은 새문안동네를 다 밀고 공원으로 만든다는 계획 대신 역사성에 주목했다. 전문가들은 새문안동네를 일컬어 ‘작은 시간의 섬’이라고 부른다. 100년 전 사진과 지금을 비교해도 골목과 땅 모양이 거의 같을 정도로 오래된 도시조직이 잘 남아있는 동네다. 
 
오래된 땅 위에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과 전쟁을 거쳐 다양한 시기의 집들이 들어섰다. 그 중에는 한일미주택처럼 한옥의 바탕에 일식과 서양식이 섞인 독특한 양식의 집이 지어지기도 했다. 1930년대 지어진 도시한옥에서, 일식 목조주택과 해방 후 등장한 슬라브집, 현대에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들까지 크고 작은 규모의 건물들이 오래된 도시조직과 어울려 새문안 동네는 ‘작은 시간의 섬’을 이루고 있다.
 
서울시는 삶과 기억이 잘 보존된 마을 그 자체를 박물관마을로 재생하기로 하면서 마을 내 건물을 최대한 살린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조성했다. 30여개 동의 기존 건물은 그대로 두면서 본래 조성 취지인 ‘살아있는 박물관마을’이라는 정체성을 살릴 계획이다. 서정협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새롭게 쌓여갈 기억들을 포함하는 가능성의 공간”이라며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에 빠져드는 부모 세대와 오래된 스타일을 새롭게 즐기는 자녀 세대를 함께 아우르는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말했다.
 
1930년대 도시한옥부터 콘크리트건물까지 건물과 골목형태를 잘 갖추고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 전경. 사진/서울시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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