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채명석

주주에게 쫓겨난 첫 총수…한진그룹 경영도 안갯속

2019-03-27 17:27

조회수 : 2,556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대학에 나오는 한자성어로,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아마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7일 오전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 결과를 접한 뒤 이 성어를 곱씹었을 듯하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후 18년 1992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해 사내이사에 처음 이름을 올렸고 1999년에는 한진그룹 회장에 올랐다. 올해로 46년째 ‘KAL(대한항공 영문 이니셜)맨’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단 30분 만에 주주들의 반대로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 주총에서 주주들에 의해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총수는 조 회장이 처음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해 7월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재계에서는 조 회장에 대해 창업주이자 부친인 고 정석 조중훈 회장의 경영수완을 이어받아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사로 키운 기업가라고 평가한다. 특히 대한항공은 전 세계 항공사중 유일하게 제조업까지 갖춘 수직계열화를 갖췄는데, 서비스와 제조의 결합은 선진국 기업들도 포기할 만큼 이질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그런 사업구조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장본인이 바로 조 회장이다.
 
하지만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조 회장이 저평가를 받는 이유는 형제와의 갈등, 자식들의 비도덕적 행동 등 일반인들이 인상을 찌푸릴 정도의 사건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은 부친의 별세후 2세 경영체제로 들어서면서 한진그룹과 둘째 조남호 회장의 한진중공업, 고 조수호 회장의 한진해운, 조정호 회장의 메리츠금융지주 등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계열 분리 후 한진가는 장남인 조 회장과 둘째 조남호 회장, 넷째 조정호 회장과 수년간 재산권 분쟁을 치뤘다. 경영에 몰두하기에도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형제간 갈등이 어느 정도 진정될 기미가 보일 즈음 이번에는 자식들은 물론 부인까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행동을 벌인 것이 폭로되면서 조 회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실패의 직접적인 사유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수년간 쌓인 불안한 가정사가 주주들의 반감심리를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2017년 한진해운이 파산해 종합물류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상실한 데 이어 올 초에는 경영난을 겪던 조남호 회장의 한진중공업이 채권단에 넘어가 경영권을 상실했다. 여기에 조 회장도 주력기업인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부결이라는 악재를 맞이하면서 범 한진가의 비운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진그룹측이 밝힌 데로 사내이사 선임이 좌절됐다고 조 회장이 경영권을 내려놓는 것은 아니다. 조 회장은 한진칼(29.96%) 등 특수관계인 우호지분 33.35%를 보유한 대한항공의 최대주주이고,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수한 전문경영인들이 포진하고 있는 만큼 당장 대한항공 경영에도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가 우려스러워 하는 점은 아직까지 한국 기업은 오너 총수의 결정에 의해 미래를 그리는 구조가 강하기 때문에 조 회장이 없는 대한항공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장 사내이사 연임 부결에 성공한 기관투자가와 사모펀드 등 외부 주주들의 경영간섭이 심해질 경우 스피드가 생명인 의사결정체계가 더디게 진행되어 적기의 사업 투자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조 회장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도 차질이 우려된다. 6월에 서울에서 개최되는 항공업계 ‘UN총회’라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에서 조 회장은 의장을 맡을 예정이고, 미국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V) 사업도 조기안착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일정 수정을 감안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29일 열리는 한진칼 주총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최대 쟁점은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으로 올린 정관변경 안건, 즉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이사는 결원 처리한다’는 것과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다. 두 안건 모두 주주들의 주장대로 통과된다면 조 회장은 정말로 경영권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 채명석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