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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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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뉴스토마토 산업1부 김진양입니다.
(차기태의 경제편편)국민연금의 의미있는 제안

2019-03-27 06:00

조회수 : 2,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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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은 여러 모로 주목받고 있다. 주요 기업의 주총의안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주주제안도 내놓는다. 특히 과거와 달리 국민연금의 입장을 사전에 공개함으로써 많은 투자자들에게 참고서 역할을 한다. 
 
국민연금이 최근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내놓은 주주제안 가운데 주목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정관에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 관련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결원으로 본다’고 못박아 두자는 제안이다. 
 
이 제안은 지난 1일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2019년도 제2차 회의에서 결정된 ‘제한적  경영참여영 주주권 행사’ 방침의 하나로 마련된 것이다. 그 누구를 해임하라고 직설적으로 요구하는 대신에 채택한 우회적이고 ‘온화한’ 결정이다. 
 
대상은 두말 할 것 없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다. 조양호 회장은 지난해 270억원대 횡령·배임과 약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제 재판 시작단계에 불과하므로, 유죄 여부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지금 조양호 회장의 해임을 바로 요구하면 회사 임직원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물의를 일으킨 조 회장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용인하는 것도 곤란하다. 
 
더욱이 실형을 받을 경우에도 이사 자리를 지킬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을 필요성도 있다. 지금이야 유죄 여부가 판명나지 않았으니 이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그렇지만 훗날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해임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정관에 미리 마련해 두는 것은 이치에 어울리는 일이다. 설사 해임이 안되더라도 의결권을 배제함으로써 이사의 권능을 실질적으로 박탈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현행 상법에서 금고형 이상을 받거나 형기를 마친 후 2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사외이사로  선임될 수 없다. 그렇지만 사내이사와 기타비상무이사에 대해선 상법뿐만 아니라 자본시장법에 그런 '결격사유' 규정이 없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이번 주주제안은 바로 정관을 통해서 이런 맹점을 보완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추후 재벌과 자본시장을 향해 던진 묵직한 암시이다. 횡령 배임 사건에 연루된 다른 재벌 총수들에게도 적용할 새로운 잣대를 제시한 것이다. 정관에 이렇게 원칙적인 조항을 담아두면 횡령 배임을 저지르지 말라고 경종을 울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실 한국 재벌의 총수에게 횡령과 배임은 약방의 감초처럼 너무나 흔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 2014년 2월 배임 등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황제 보석'으로 비판받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최근 2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롯데케미칼의 사내이사로 재선임이 유력시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7년 특경가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일부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나하나 나열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한국의 재벌총수들은 횡령 배임을 죄로 여기지 않는지도 모른다. 대체로 죄를 짓고도 경영권을 지켜왔다. 이들이 건재한 모습을 보고 중소기업 경영자들도 따라한다. 이 때문에 코스닥 상장사들 가운데서도 횡령 배임 사태가 무수히 일어난다.  
 
그러나 횡령과 배임은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임직원과 협력업체가 땀 흘려 벌어들인 것을 가로채고 빼돌리는 짓이니 크나큰 배신행위이다. 회사를 믿고 투자한 주주와 채권자도 저버린 것이다. 
 
그리고 배신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나쁜 죄악의 하나이다. 고대 크레타의 왕 미노스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의 고조 유방 등도 배신행위를 추상같이 응징했다. 중세의 시성 단테가 남긴 불멸의 명작 <신곡>에서도 배신행위를 저지른 천사 루치페르는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갇혀 있다.
 
배신행위는 기업경영 세계에서도 일소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민연금의 이번 제안은 참신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29일 열리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제안이 채택될지는 불확실하다. 
 
설령 이번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횡령배임을 저지른 재벌총수의 경영배제 원칙을 분명히 제시한 것만으로도 일단 의미있는 일이다. 건전한 경영풍토의 조성과 시민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기소된 당사자가 스스로 먼저 책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그런 명예로운 처신은 한국에서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제 상법이나 자본시장법에 이런 원칙을 명시하는 노력이 뒤따라야겠다. 
 
차기태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편집장 (eramus414@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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