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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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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②"독립운동 처벌 피해자, 일본이 법적 책임져야"

전문가들 "'대정8년 제령 7호'는 입헌·법치 무시한 야만적 지배였다는 명백한 증거"

2019-02-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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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8년 제령 7호'는 대표적인 식민지 악법이다. 형 집행에 대해 일본이 책임져야 한다.”
 
역사 또는 법률 전문가들은 일제가 3·1운동 직후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대정8년(1919년) 4월 조선총독부 제령 제7호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은 명백한 위헌·위법적 법령이라고 하나같이 지적했다.
 
"제국헌법에도 정면 위배" 
 
최환용 한국법제연구원 부원장은 27일 제령7호가 당시 ‘대일본제국헌법’에도 정면으로 위배됐다고 지적했다. 입법부가 만든 법률이 아닌 행정입법으로 범죄를 처벌했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 헌법에 적용되던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한 데다, 헌법상 신민의 ‘집회·결사·언론의 자유’도 보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 부원장은 당시 일본 법제에 대해 “일본이나 대만이나 동일하게 ‘대일본제국헌법’이 적용됐는데, 신민에게 집회·결사·언론의 자유를 보장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인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는 “총독부를 설치하면서 일본 국적을 부여해 조선인은 결국 일본 신민이었던 것”이라며 “조선 안에서만 선거권이 없을 뿐 일본에선 선거권도 있었고, 조선인 의원도 10명 정도 인정했다. 일단 일본 헌법이 (조선인에게) 적용됐다는 건 명확한 것”이라고 짚었다. 
 
또 “대외적으론 (조선에) 일본의 헌법과 법률을 적용한다고 해놓고, 총독부령을 통해 헌법과 법률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별도의 통치를 했다는 점에서 ‘근대적 입헌주의’ 관점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라며 “당시 조선을 법치주의나 입헌주의와 아무 상관없는 형식으로 지배했다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조선총독부령을 실제로 총독이 직접 제정하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만이 위임돼 있었다”면서 “내각 총리 대신으로부터 주어진 위임 범위를 넘었다는 점에서 일본 제국주의법률을 위반한 것도 문제가 된다”고 첨언했다.
 
"대표적 식민지 악법"
 
한국법사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반도 인민의 거족적인 3·1독립만세운동에 직면해 기존의 ‘보안법’은 충분한 탄압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우려에 따라 일제가 제정한 대표적인 식민지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또 “일제 본국이라면 ‘법률’을 제정해 규율해야 할 사항에 대해 조선총독의 명령인 ‘제령’으로 규율했다는 절차적인 일탈성도 문제이지만, 내용의 문제는 보다 심각하다”면서 반인권적 측면도 꼬집었다.
 
김 교수는 “‘정치의 변혁을 목적으로 다수가 공동으로 안녕질서를 방해하거나 또는 방해하려고 한 자’를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형량인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로 처벌하겠다고 한 것은 일제의 불법강점으로부터 독립하겠다며 평화적인 만세운동을 한 한반도의 인민을 문자 그대로 탄압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며, ‘제국 밖에서 죄를 범한 제국신민에게도 적용한다’라고 한 것은 한반도 밖의 독립운동까지 탄압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5월24일의 대한민국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의 취지에 비춰 볼 때, 제령7호는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하여’ 제정된 것으로서,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에 지나지 않고, 일본의 불법적인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그 효력이 배제된다’는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따라서 제령7호를 근거로 한반도 인민을 체포, 구금, 기소, 형 집행한 일체의 행위는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서 그에 대해서는 일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민지 특성상 모호한 측면도"
 
다만, 한상희 건국대 법전원 교수는 “누가 봐도 잘못된 것은 분명한데, 당시 식민지라는 일종의 ‘외주’ 특성상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으로, 지금 현재 기준에서 위헌·위법을 따지기 좀 모호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당시 일본인들 맥락에선 소요 사태가 일어났으니 강력하게 처벌해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로, 실제로 많이 적용됐다기보다는 일종의 ‘계엄 포고령’이나 ‘긴급조치’ 같은 걸 만든 것”이라며 “어쨌든 법이란 체제에 종속되는 것이기에, 그 체제하에서 법이나 령의 타당성을 따지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완공된 조선총독부. 사진/서울시사편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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