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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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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①'대정8년 4월 제령 제7호'를 아십니까

'비폭력 3·1운동'에 놀란 일제, '법령'이라는 문명적 도구로 독립 여망 짓밟다

2019-02-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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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기미년, 일제는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다. 비폭력적 항거라는 점에서 세계 열강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데다가 독립운동이 조선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는 궁리 끝에 '법령'이라는 문명적 도구로, 조선국민의 독립 여망을 짓밟기 시작했다. 3·1운동 이후 조선의 독립운동 처벌의 근거가 된 ‘대정8년 제령 제7호’. 그것은 일본헌법 위에도 군림한 '역사에 길이 남을 악법'이었다(편집자주).
 
구한국 광무11년(1907년) 법률인 보안법 제7조는 ‘정치에 관하여 불온한 언론동작 또는 타인을 선동, 교사 또는 사용하거나, 타인의 행위에 간섭함으로써 치안을 방해하는 자는 50 이상의 태형, 10개월 이하의 금고 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3·1독립만세운동’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일본은 정확히 한 달 보름 만인 4월15일 독립운동을 탄압할 법·행정적 근거를 마련했다. ‘대정8년(1919년) 4월 조선총독부 제령 제7호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이 그것이다. 일제는, 이 제령을 제정·공포와 동시에 바로 시행했다. 
 
‘보안법’ 보다 5배 가중처벌
 
1조는 ‘정치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여 다수공동으로 안녕 질서를 방해하거나 방해하고자 하는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고 정했다. 2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하던 기존 ‘보안법’보다 훨씬 가중한 것이다. 정치 변혁을 목적으로 ‘선동’한 자도 똑같이 처벌하고, 영토 밖에서 꾀한 행위에도 적용토록 했다. 발각 전 자수하면 형을 경감하거나 면제토록 해 조직 와해도 노렸다. 법원도서관이 발간한 ‘국역 조선고등법원판결록’에 따르면, 실제로 3·1운동 직후 전국 각지에서는 크고 작은 독립만세운동이 빈발했다. 붙잡힌 독립운동가들은 주로 보안법과 제령7호 위반으로 처벌받았다. 
 
‘독립시위운동 공모’, 징역 6월
 
1919년 3월11일 조선독립사상을 고취하고 독립시위운동을 선동한다는 내용의 ‘조선독립광주신문’을 300부씩 두 차례 인쇄·반포한 혐의를 받은 황상호는 제령7호를 위반했지만 범죄사실이 제령 시행 전에 발생해 보안법과 출판법위반으로 처벌받았다. 
 
1919년 음력 4월 진주군 나동면 삼계리에 거주하던 농민 박재수는 박재룡, 강대익 등과 유생을 규합해 조선독립시위운동을 공모한 혐의로 '대정8년 제령7호' 2항에 의해 징역 6월의 실형을 확정 선고받았다. 1920년 12월 제령7호 및 신문지법 위반 확정 판결을 받은 신문기자 이달은, 동경 유학생들이 조선독립을 이룰 목적으로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자마자 가맹하고 단장이 돼 활약해 ‘신조선’이라는 제목의 신문을 간행해 유학생 간에 활발하게 조선독립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투옥됐다.  
 
중국에서 불교에 귀의해 19163월경 조선으로 돌아와 경북 의성군 고운사 승려가 된 송세호는 1919년 3월 이래 경성을 비롯해 조선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자주 일으키고, 중국 상해에서 조선독립을 표방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가정부 조직에 협조하며, 조용주·연병호의 주창에 의해 정낙윤·유여식·김홍식·이경하 등이 경성에서 조직한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참가, 상해 가정부와 연계를 가지기 위해 스스로 상해 지부장이 돼 치안을 방해하고자 한 혐의 및 이강 공 전하(의친왕.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자 순종의 아우) 탈출 사건연루 혐의로 제령7호를 위반해 각 징역 3년씩을 선고받았다. 1921년 2월 상고가 기각되면서 징역 6년형 등이 확정됐다.
 
3·1 운동 직후 ‘독립운동 붐’ 시기에 보안법을 적용받거나 실제 10년 이하의 강력한 징역형이 선고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제령7호의 엄격함은 그 자체로 독립운동 참여를 제지할 위협이 되기 충분했다. 고등법원 재판부는 3·1운동 직후 발생한 다수의 독립운동에 대해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함은 조선에 대한 일본제국의 정치를 배척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대정8년 제령 제7호’ 1조의 소위 정치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이 소장한 대한제국 대심원, 통감부,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민·형사 판결이 근대 일본어로 수록된 조선고등법원판결록전권.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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