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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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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철학 그리고 피아노
①⑨錢

칼 맑스 <자본론>

2019-01-23 11:20

조회수 :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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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가치가 있다 혹은 없다.
가치가 높다 혹은 가치가 낮다.

가끔 월급명세서를 보면서 가치라고 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노동자의 가치를 숫자로 보여준다.
정말 그럴까?
누가 봐도 아니다.
일을 열심히 하면 급여가 올라간다.
잘 못해도 올라간다.
열심히 안해도 올라간다.
열심히 안하면 떨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반대로 열심히 일해도 퇴직을 한다.
체력과 능력을 자랑해도 피할 수 없다.
예순을 못넘긴다.

자칭 타칭 고급인력.
그 높은 가치는 정확할까?
이것도 정확히 틀렸다.

수억원을 받는 고액연봉자.
박봉의 소방대원.
나랏돈을 훔치는 국회의원.
따뜻한 곳에서 비싼 밥 얻어먹으며 키보드만 치는 사람들.
그리고 칼바람 속에서 건물을 쌓아올리는 일용직.
이 중에서 누가 가장 가치가 높은 일을 할까?
그럼 누가 고액의 돈을 받아야 할까?
불로소득자의 돈은 가치가 얼마일까?
고리대금업자는?
투자로 번 주식은?
그럼 투기로 번 주식은?
20억을 떼먹고 해외에서 대대손손 잘산다면?
그리고 자식을 아이비리그까지 졸업시킨다면?



가치라고 하는 것은 종잡을 수 없다.
철학자들은 이러한 가치에 대해서 두가지로 분석했다.
나에게 필요한 가치인 효용가치.
그 자체로써 스며든 노동가치.
노동가치는 무엇인가를 만드는데 들어간 땀방울이다.
효용가치는 그것들을 습득하는 과정속에서 만들어진 화폐의 교환비율이다.
노동가치는 시간과 노력이 포함된다.
효용가치에는 욕망이 내재돼 있다.

과거에는 조약돌이나 조개껍질로 교환을 했다.
그리고 금.
금이 은으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찢어지지 않고 위조되지 않는 종이.
가끔 전자화폐도 그 자리를 넘본다.
교환이 쉬워지고 빨라진다.
물건이 남아돌 정도로 생산력은 폭발한다.
많이 팔고 수없이 교환이 된다.
그래서 순결한 노동의 결과물을 두고 욕망이 춤을 춘다.
정신을 차릴 새가 없다.
여기서 파생되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인 문제가 얼마나 많을까.
얻는 것도 많지만 잃는 것도 만만치 않다.



우리가 이룬 건 뱃살.
잃은 건 인간애이다.
이것을 칼 맑스는 <자본론> 서문에서 '소외' 현상이라고 불렀다.
죽은 것이 산 것을 지배하는 현상.
우리는 노랗게 빛나는 돌덩이에 눈이 먼다.
배추빛 지폐뭉치를 보면 눈이 희번덕 뒤집힌다.
효용가치가 뿜어내는 욕망의 불덩이에 우리는 죽은 것들을 보고 군침을 흘린다.

절정체 치달은 자본주의.
우리는 사고 파는 것에 익숙해 있다.
안사고 안팔면 우리는 죽는다.
노동력도 상품이 됐다.
물질도 사고 팔고 몸과 정신도 사고 판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팔아버리는 것.
누군가의 인간애를 사고 파는 것.
휴머니즘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신을 사고 파는 것.
결코 외면해서는 안되는 우리안의 가치를 사고 판다.

그래서 우리는 '소외'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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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⑧死

에피쿠로스 <행복론>


삶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내달린다.
삶은 축복이다.
죽음은 슬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과 동시에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사는 것이 불행하다고 한다.
다른 이는 죽는 것이 고통이라고 한다.



삶과 죽음.
사람에 따라 삶과 죽음을 행복과 불행으로 다르게 받아들인다.
삶과 죽음은 행복과 불행사이를 왔다갔다 하나보다.
누구나 살면서 후회를 한다.
되돌리고 싶어한다.
불가능하다.
그래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잠시 고민한다.
아찔한 상상이지만 더 깊이 빠져드는 사람들도 있다.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사람들.
한국에서는 그런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삶의 끈을 스스로 놓는 경우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사람이 혼자라고 느껴질때면 약해진다.
사랑해주는 대상이 없고 사랑할 것이 사라지면 사람은 혼자라고 느끼게 된다.
결국 행복과 불행사이를 계산한다.
현실에서 행복이 없다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느끼게 되버린다.
주위를 보자.
자연은 아름답고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끼지 못하고 홀로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줄 준비가 돼 있다.
그것은 누구나 그렇다.

 
로마시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행복론>.
그는 극단적으로 말했다.
죽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생을 마감하라고.
그것은 현실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비참한 상황에 몰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정말 죽으라는 뜻이 아니다.
죽지 않기 위해 주위를 돌아보고 사랑할 것을 찾으라는 뜻이다.
사람이 사는 것은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돌봐주고 아껴주기 위한 것들을 찾는다.
강아지를 껴않기.
화초를 돌봐주기.
고양이 밥주기.
돌보고 지켜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사람은 스스로 삶을 마감하지 않는다.
죽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이 아껴주고 싶은게 없다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아껴주기.
내가 그 사람의 아낌을 받는 사람되기.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는 누군가에게 살아가는 이유를 주게 된다.

 
세상에 아껴주고 싶은게 없다면 춥고 황량한 수백킬로미터 사막을 홀로 걷는 느낌이다.
그렇게 되면 죽는게 더 행복하다고 느끼게 되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껴안고 사랑해야 한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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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⑦獨

스피노자 <에티카>


고독한 것은 좋은 것일까. 

아니면 나쁜 것일까. 
누구나 혼자 있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같이 있어야 소속감을 느끼고 안정을 찾는다.
반대로 홀로 떨어져 있으면 불안정하면서 소속감을 갖지 않는다.

산을 바라볼때는 안에서 밖으로 보는 법이 있다. 
반대로 밖에서 안을 볼 때도 있다. 
나무를 보면 숲이 안보이듯.
숲만 보면 나무 하나하나와 그 주변의 생명체들이 보이지 않듯.
사람은 한쪽만 보게 되면 다른 쪽을 못보게 된다. 

혼자 있을 때만 보이는 것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홀로 고독한 것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홀로 있게 된다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때면 교감을 한다.
고독하게 있다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 
시끌벅적한 사무실에서 홀로 생각해보라.
자기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것은 가장 밑바닥의 있는 인간 본연의 감정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가끔은 집단에서 떨어져 나와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없으니 가끔을 숲을 떠나 산에서 내려다 볼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고독을 멀리하지 않는다.
혼자 있을때만 보이는 것들.
사색.
에세이.
철학.
음악.
미술.
예술.

추억은 강바닥 모래알 일듯

이런 것들은 혼자 있을때만 오롯이 피어난다. 
함께 웃는다면 하루가 금방 지나갈 것이다. 
혼자 운다면 1년 같은 하루가 될 것이다.
대신 흐르는 강바닥에서 모래가 일듯이 추억과 감상이 흩뿌려질 것이다. 
상념은 고독에서 피어난다. 
삶의 방향과 이유.
굳이 거창하게 지을 필요는 없다. 
다만 눈으로 봐왔어도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생명의 기쁨을 느낄 것이다. 
아지랑이 처럼 피어오르는 삶에 대한 사랑을 만나게 될 것이다.



스피노자는 고독하게 살았다. 
평생 안경알을 닦으며 자신과 대화를 했다. 
모든 사람이 굳이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그는 신을 수학적으로 부정하기 위해 <에티카>를 썼다.
그런 과정에서 행복을 받아들이고 불행을 밀어내는 법을 알아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독일의 한 시인은 행복을 누구보다 쉽게 받아 안을 수 있는 방법을 전한다.
이를 시로 노래했다. 
 

인생이란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그냥 두면 축제같은 것이 될 터이니,
길을 걸어가는 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날려 오는
꽃잎들의 선물을 받아들이듯이
매일 매일이 네게 그렇게 되도록 하라.

꽃잎들을 모아 간직해두는 일 따위에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 머리카락 속으로 기꺼이 들어온 
꽃잎들을 살며시 아이는 떼어내고,
사랑스런 젊은 시절을 향해
더욱 새로운 꽃잎을 달라 두 손을 내민다.

릴케 <인생이란>


어떻게 살든 그것은 의미가 없다. 
사람은 다 똑같기 때문이다.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단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명백하게 있다. 
항상 새로운 꽃잎을 달라고 두손을 내미는 아이를 볼때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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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⑥絃

파가니니 <파가니니아>

 
박민호의 삶과 철학 그리고 피아노 코너입니다.
현재까지 ⑮北 : 차인표 <크로싱>까지 연재했습니다.
하지만 수정 작업 중 실수로 삭제가 됐습니다.
16편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독자님들께 송구한 마음입니다.
이에 더 재밌고 더 의미있는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마치 악마가 연주하는 듯 하다.
기괴하지만 현란하고 아름다운 연주.
사람들이 지금껏 연주하지 못한 새로운 기술로 감성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
자극적이면서도 마음 속 깊은 울림을 일으키는 연주는 어떻게 가능할까.

사람들은 형식을 깨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음악가들을 '악마'라고 불렀다.
악마의 영혼을 팔지 않고서는 그런 음악을 연주하는게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음악들은 대중에게 자리를 잡는다.
비주류로 분류되던 음악가들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이름을 남긴다.
인간 안에 내재된 또 하나의 감정선을 만들어 낸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바이올리니스트

이탈리아의 방랑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그는 남루한 옷차림에 해적같은 긴 머리로 악마의 곡을 연주한다.
사람들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연주라고 말한다.
그만큼 기술적으로 가능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서정시인이자 저널리스트 '하이네'.
그마저도 파가니니의 연주를 듣고 "그의 발에 악마의 사슬이 묶여 있는 것을 보았다"라고 비난했다. 
파가니니는 악보도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한다.
기록따위는 하지 않는다.
파가니니는 자신의 고가 바이올린을 도박에 탕진할 정도로 생활에 문제가 많았다. 
여성을 탐닉하지는 않았지만 온갖 염문을 뿌렸다.
그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젊은 여성들은 자지러지거나 실신했다. 

음악가들은 악보없이 연주하는 그의 공연을 보며 손으로 직접 악보를 땄다.
훗날 리스트는 그의 연주를 악보로 만들어 <파가니니아>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악마에 영혼을 팔았을까.

악마와 계약은 27살까지

현대시대에 들어와서 로버트 존슨이라는 흑인 기타리스트가 나온다.
사람들도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주장한다.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음악을 기타로 연주했다. 
블루스에서 시작해 이는 록앤롤로 자리잡는다.
우리가 듣는 모든 대중음악은 그가 산파였다.

 

그는 노랫가사에서 "나는 교차로에서 악마를 만나 영혼을 팔았다. 그리고 그 댓가로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됐다"고 나온다.
떠돌이 무명가수 로버트 존슨의 삶은 최악이었다. 
만삭의 부인은 출산도중 사망했다. 
공연장에서는 실력이 없어서 번번히 쫓겨났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술에 취해 교차로를 걷다가 술김에 마귀를 소환한다.
그리고 그와 계약을 맺는다.
1년 후 그는 거짓말처럼 최고의 블루스맨이 됐다.
27세가 되던 해 그는 공연을 끝내고 당시 교차로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리고 말도 안되게 연기처럼 사라졌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록커들은 모두 27살에 사망한다.
놀랍게도 기교한 음악이지만 대중을 사로잡는 멜로디를 만들었다. 
그들 모두 악마와 계약을 해 27살에 삶을 마감하는 조건으로 천재적인 음악가가 됐다는 후문이다. 
사실일까.

당신의 혼을 뺏는 '라 캄파넬라'

어느날 뜬금없이 천재적인 연주실력으로 돌아와 듣도보도 못한 멜로디를 연주하는 그들.
누구나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 알지못했던 내면의 감정선이 흔들린다.
그들은 정말 악마에 영혼을 팔았을까. 
그리고 왜 모두 30살을 못넘기고 세상을 떠났을까.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를 들으면 혼을 빼앗기는 느낌이다. 
그래서 인생이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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