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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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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을 보내며

2019-01-04 11:01

조회수 : 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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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더 어릴 때는 TV에 나오는 고문장면을 잘 보지도 못했습니다.
텍스트로 접해도 몸서리치고 스킵하던 기억도 꽤 됩니다.
일제강점기, 나치시절 등 온갖 잔인한 방법들로 행해진 고문수법들은 상상만해도 견디기 힘든 수준이죠.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멀리있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까지만해도 비일비재했고, 그나마 민주항쟁을 넘어 1990년대 들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남영동 대공분실은 그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6년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설립, 대공조사를 명분으로 독재에 저항하던 민주화 운동가들을 고문하던 장소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고(故) 박종철 열사, 고 김근태 전 의원 등 이 곳에서 고초를 겪은 인사는 확인된 것만 391명에 달할 정도죠.
그나마 1985년 김 전 의원 고문사건으로 세상에 처음 알려진 이래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가 고문 끝에 숨진 사실에 공분을 불러오면서 그 해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진 건 유명한 사실이죠.
이후 남영동 대공분실 폐쇄 여론이 거세지면서 2005년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뀌었고, 며칠 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이관됐습니다.
 
저 어릴 적만 하더라도 고문이 매체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군대도, 형사들도, 선생도, 학부모도, 친구들도 가벼운 고문 정도는 장난처럼 생각했죠.
그 시절엔 정말로 그래도 됐으니까요.
 
결국, 지금 고문 없는 세상, 우리가 자유롭게 말하고 주장할 수 있게 된 건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물리적, 정신적으로 억압하지 않는 세상이 된 건
당연히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묵언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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