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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dducksoi@etomato.com

삶과 철학 그리고 피아노
③恕

공자 '논어'

2019-01-09 09:28

조회수 :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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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면 아이들은 제일 뒷자리로 간다.
중년들은 중간에 앉는다.
이유는 경로석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피해서 아이들은 뒤로 간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자리 양보를 안하고 버틸 수 있기 때문에 중간에 착석한다.
노인들도 이를 알고 뒷자리로 가지는 않는다.

간혹 뉴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청소년과 노인간의 싸움이 나온다.
예의가 없다는 것이 노인들의 주장이다.
경로석에 앉아있거나 노인을 앞에 두고도 폰만 본다던지 졸고 있는 상황이 불쾌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인가

동방예의지국에서는 딜레마에 빠진다.
노인도 피곤하고 청년도 힘들다.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준수한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눈치를 보게 된다.

임산부석도 마찬가지다. 
분홍색 자리에 앉자니 부담스럽다.
사람이 없을때는 괜찮은데 지하철이 붐비는 경우는 가시방석이다.

예의라는 것.
매너라는 것.
에티켓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예의일까.
양보하지 않는 것을 혼내는 것이 예의일까.
결국 애매한 문제는 젊은이와 노인간의 주먹다짐으로까지 번진다.

사람들은 예의에 대해 공자의 사상을 따른다.
하지만 우리가 자리를 두고 서로 양보하느냐 마느냐를 따지는 것은 공자사상과는 무관하다.
공자의 예절이라는 것은 바로 '자발성'을 기본으로 한다.



공자가 말한 禮

공자는 묘지를 방문했을때 묘지기에게 향을 어떻게 피우고 절을 몇번하는지 일일이 물어봤다고 한다.
옆의 제자 자공은 이를 두고 궁금해 물었다.
"스승님은 예의범절에 있어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인데 왜 묘지기에게 일일이 격식을 물으시는 겁니까?"
공자는 답했다.
"혹시라도 묘지기가 무안해할까봐 먼저 물어보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예의에 대해 공자는 <논어>에서 '恕'라고 말했다.
같을 如와 마음 心.
같은 마음.
이해하는 마음.
상대와 내가 같은 마음을 느끼는 것.



지하철 임산부석이 부담스럽다

이런 이유로 노약자나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할때는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에서 자발성이 중요하다.
공자의 예의는 측은지심과 자발성을 기본으로 한다.
매너라는 것도 이럴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노약자석과 임산부석을 지정해 둔 것은 어쩌면 예의를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자발성이 없는 상태에서 억지로 자리를 양보하는 현상이 생긴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양보는 어색함이 따른다.

서로가 서로의 심정을 이해하는 역지사지의 문제.
사회가 각박할 수록 이런 마음을 공유하고 퍼뜨리는게 동방예의지국이 아닐까.
공자는 제자 자공에게 평생동안 가지고 살아야 할 신념이 있다면 그것은 '恕'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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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욕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사람은 누구나 욕을 합니다.
듣는 사람들은 욕설을 혐오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욕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욕은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단체에 연대감을 표시합니다.

친구들끼리 혹은 직장동료들끼리 모여서 뒷담화를 나눕니다.
이것은 상관이나 동료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면서 화풀이를 하는 것이죠.
이로 인해 욕설을 공유하는 사람은 일종의 유대관계를 맺습니다. 



단 욕은 어른과 아이입장에서 다른 기능을 갖습니다. 
어른들은 욕의 의미에 대해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아이들은 욕의 심오한 뜻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국에서 쓰이는 욕은 대부분 성기나 동물과 관련한 것들이 많습니다. 
어른들은 의미를 잘 알고 쓰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죠.

욕설을 서로 공유하면서 아이들은 친구관계를 맺게 됩니다. 


왜 아이들은 욕을 먼저 배울까?

아이들이 욕을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른들이 쓰지 말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교양있고 기품있는 언어를 쓰라고 합니다. 
정작 어른들은 운전할때나 통화할때 거친말을 쓰면서도요.

아이들은 욕설을 통해 자신의 틀밖에 있는 어른들의 세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욕을 통해서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는 것이죠.
놀이터에서 욕설을 하는 아이들은 서로를 따라하면서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집에서는 단정하고 예의 바른 말만 쓰도록 강요받았는데 친구들과 놀때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이죠.
사실 어른들도 어렸을때 알게 모르게 친구들과 욕을 공유하면서 성장했습니다. 

친하지 않으면 욕도 안한다

어느날 친한 동료가 "식사하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떨까요.
상사 뒷담화를 주고 받던 동료가 격식을 차린다면 그것은 거리감을 두는 것입니다.

욕을 나누는 것은 친밀함을 의미합니다. 
격식있는 말은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뜻이죠.
욕을 주고 받는 것은 허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만의 언어로 교감을 하는 것이죠.

욕은 유대관계를 맺는 열쇠

우리가 쓰는 말은 장소와 나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전개됩니다.
그 언어에 맞는 세계가 구분돼 있죠.
우아한 클래식 연주장에서 쓰는 언어를 전통시장에서 쓴다고 상상해보세요.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아주머니~고등어 한마리는 얼마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아마 아주머니는 고등어를 팔지 않을 것입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는 것이죠.

한쪽 세상에서 쓰는 언어를 일방적으로 쓰면 다른 쪽의 언어와 세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옆자리 동료에게 쓰는 말을 사장님에게 쓴다면?



욕은 하나의 언어입니다.
그들만의 언어죠.


욕 사용법

욕을 듣고 기분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욕은 상대가 안들리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들리게 하는 욕은 "싸우자"는 뜻입니다.

그럼 우연히 자신을 욕하는 말을 듣는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것은 욕을 한 사람 잘못이 아니라 들은 사람 탓입니다. 
욕설은 그들만의 언어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연대를 맺는 과정입니다.
듣는 사람이 싫다고 못하게 하는 것은 그쪽 언어와 세계를 붕괴시키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욕을 들어도 조용히 넘어가는 센스.
못들은 척 무표정하게 흘려버리는 사람이 바로 욕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것이죠.
또 그런 사람들이 욕도 감질나게 잘합니다. 

이런 언어의 기능에 대해 연구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입니다. 


러셀이라는 유명한 철학자의 제자이자 존 메이나드 케인즈의 친구입니다.
케인즈와 비트겐슈타인은 캠브리지 대학에서 같이 강의를 한 동료 교수입니다.
케인즈는 비트겐슈타인을 '신'이라고 불렀죠.
스승 러셀은 "너가 너무 능력이 출중하니 논리학을 하거라. 난 다른 것이나 하련다"라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가족사는 우울합니다.
대부분 철학과 음악에 천재적인 능력을 보였지만 스스로 삶을 포기한 형제, 자매가 많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생을 마감할때 "난 참 잘 살았다"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 
언어와 사고 그리고 사유의 세계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꼭 읽어보기를 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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