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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지

(피플)"의료사고 입증책임, 언제까지 피해자 몫인가요?"

"환자는 소송에서도 약자, 변호사들도 병원기록 외엔 입증 방법 없어…입법 개선 필요"

2018-12-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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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국내 '의료전문 변호사'들의 송무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1990년대 1세대 2000년대 초반 2세대를 지나면서 최근에는 3·4세대 변호사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모여 만든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의변)'은 새해가 되면 벌써 창립 10주년이다.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회원변호사도 200명 안팎으로 늘었다. 시간적·외형적으로 상당히 성장했지만 과거 환자대리를 많이 했던 변호사들이 대거 병원 쪽으로 몰리고 있는 추세다. 어처구니 없는 대형 의료사고와 전문성 결여로 인한 의료 입법·정책 오류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매섭게 지적하는 변호사들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의료전문변호사 막내세대 격인 윤동욱 의변 회원이사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과거에 비해 환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줄고 있다.
 
의료소송은 의료관련 차트를 해석할 수 있는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변호사들이 맡을 수 있어, 다소 한정된 자원이라 진입장벽도 높은 편이다. 의료소송 초창기엔 환자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많았다. 이들이 의료전문 변호사로 점차 명성을 떨치면서 법정에서 원고석에서 피고석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변호사들이 많아졌다. 그렇다 보니 처음 의료소송을 맡는 변호사들은 환자 대리로 이 시장에 입문하고, 이어 병원 자문을 맡기도 한다. 그렇게 의료 분야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의변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환자 대리 변호사들은 전체 변호사들 중 200명 정도로 파악되는데 1년에 의료소송이 1300건 상당으로 민사 손해배상청구소송 중에서 0.4%에 불과해, 의료소송 시장의 파이가 상당히 작다. 의료소송 원고들은 아무래도 의료사고 피해자나 그 유족들이라 다들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온다. 상해, 질병, 사망사건에 연루된 피해자들이다. 환자 대리는 약자인 분들을 대리한다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의료사고 피해자인 환자는 소송에서도 약자다. 해결방법은 없나. 
 
얼마 전 한국소비자원에서 맡은 소송인데, 자식들이 모은 돈으로 아버지가 무릎관절 수술을 받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원래 환자의 폐가 안 좋았지만 병원에서 알고 있었고, 분명히 무릎 수술을 했는데 폐부종으로 의식 불명이 됐다가 결국 사망했다. 한국소비자원측 감정의는 수액과다투여로 사망했다고 결론 내렸지만, 수술한 병원은 아니라고 맞섰다. 결국 환자 측이 소송에서 패했다. 병원에선 폐에 물이 찼으니 기도삭관을 해야 한다고 환자 측에 몇 번이나 권유했지만 이를 거부했으니 병원 책임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이런 경우 일반인 상식으로도 무릎관절 수술을 하다 죽은 게 이해가 안가지만 변호사는 병원 측 진료기록 감정 결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자 측에서는 돈을 모아서 수술했다가 아버지를 잃었고, 이제 소송비용까지 물어내야 하는 입장이다. 증거의 구조적 편재를 해결하려면 입증책임을 병원 측으로 전환하거나 (피해자 측에 대해) 완화하는 방법이 마련돼야 한다. ‘환자가 왜 사망했는지’에 대해 환자 측에서 물어봤을 때 환자를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병원이 입증한다면 환자 측에 훨씬 유리해질텐데 아직까지 법률상 명문 규정이 없다.
 
윤동욱 변호사. 사진/최영지기자.
 
최근 중요하게 떠오른 의료보건 분야 법률 이슈는 무엇인가.
 
올해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 43조가 개정되면서 강제입원 요건이 완화됐다. 법 개정 전에는 보호자 2명 이상이 동의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이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16년 헌법재판소가 본인 동의 없는 강제입원은 위헌이라고 판단해 법이 바뀌었고, 정신질환자가 독립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자여야 입원이 가능해진 것이다.
 
국회 입법정책 당시 토론회와 정신건강전문의 학회 모임에서 법 개정에 대한 법률 자문을 진행했다. 특히 정신건강전문의들은 법 시행 이후 위반 소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환자 측에선 인권을 더 보호받게 됐지만 병원 측에선 실제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입원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며 악법임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소송 외 분야에서도 의료전문 변호사들의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
 
환자안전법이 2015년 제정돼 2016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법 제정 계기가 됐던 것은 투약 실수의 반복이었다. 항암제 빈크리스틴과 시타라빈을 바꿔 주사해 결국 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고, 이런 사례가 이미 많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법이 제정됐다. 환자안전법은 의료과오를 수집해 의료행위 과정에서 환자 보호 가능성을 높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법 시행 후에도 환자보호와 재발방지를 위해 제정됐다는 취지를 올바로 반영하고 있는지, 법률용어로서 위해와 피해를 구별하는 기준이나 실익이 무엇인지 등 쟁점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이에 대해 지난주 일본변호사회를 방문해 한국에서의 법 시행 등 주요 내용을 알리는 등 학술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의사들은 의학지식이 있지만 법률에 대해선 전문가가 아니라 법 개정이나 제정 부분에 있어 쟁점을 살피고 자문을 하고 있다. 연명의료법이든 신법 관련해 의사들의 논문을 여러 개 찾아서 공부할 쟁점을 추린다. 환자안전법과 같은 신법이 나오고 의사들의 문의가 빗발치니, 기존 소송 대리하는 변호사들의 업무 이외에 새로운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의변에서도 이런 부분을 회원 변호사들이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지만 변호사들 역시 모르는 의학 분야에 대한 법률 자문은 해보지 않은 분야가 쉽게 나서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 대형 의료사고가 이어졌는데,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더라.
 
올해로 의변이 만들어진 지 10년째이고, 앞으로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로서 목소리를 내야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법 개정 때 전문의 강의 등을 의변이 도맡아 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의료 분야와 밀접한 사회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변호사들은 적다.
 
의변 내에서는 아직까지 변호사들이 비상임직으로 활동하고 있고, 다들 본업이 있어 일부 변호사들의 헌신이나 자발적 참여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 환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들도 있지만 병원을 대리하는 변호사들도 있다. 통일된 입장을 개진하는데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환자 쪽 입장을 내세우면 병원 측 변호사들의 입장이 담기지 않아 결국 반쪽짜리 단체가 되는게 아니냐는 걱정에도 귀를 귀울여야 한다. 이것 말고도 사회적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의변 하면 어떤 단체’라고 낙인이 찍히는 것을 우려하는 변호사들도 있다. 그럼에도 중립적 사안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내부 의견을 조율해 발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전문 의견을 개진해 나가는 방향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료전문 변호분야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는가.
 
1세대 의료변호사가 신현호·최재천 변호사이고, 이인재 변호사가 2세대 변호사로, 국내 의료소송의 계보를 이어왔다. 종래까진 변호사들이 송무만 했다면 이제는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이제 의사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법률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고 있다. 국회에서 환자안전법이나 연명의료법처럼 새로운 법리가 생겨나는데 이러한 법에 대해 가장 촉각을 세우고 이해관계가 가장 밀접한 주체가 의사들이기 때문이다.
 
의사뿐 아니라 국민들과도 의료소송 수임 말고도 만날 수 있는 면적이 넓어지는 게 중요하다. 새로운 법에 대해 국민들이 숙지하면 좋겠는데 ‘이런 법이 새로 만들어졌다’고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해 이를 많이 홍보, 전파하는 방법을 확대하는 게 3세대 변호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입법조사처와 보건복지부에 법률적 자문을 통해 의료 관련법 제정과 법 시행에 기여할 수도 있다.
 
전국 보건의료분야에 관심을 갖는 변호사들로 구성된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이 기념활영을 하는 모습. 사진/의변 제공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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