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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세대를 이은 '블랙 물결', DJ 알렌 워커

초중생부터 중장년까지…2000명의 ‘블랙피플’이 보여준 단결과 통합

2018-12-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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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검정 후드와 검정 마스크 차림이 한, 둘이 아니었다. 물결이었다.
 
피날레 곡 ‘페이디드(Faded)’가 흐르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이 ‘블랙 피플’들이 한 바탕 춤판을 벌였다.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에 몸을 싣고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잊은 채.
 
18일 밤 예스24 라이브홀은 그날 하루를 위해 ‘블랙 피플’이 된 이들로 넘실거렸다. 중고교생부터 청년, 중장년층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았다. DJ 알렌 워커(Alan Walker)의 첫 내한 단독 공연. 그곳에 모인 2000여 관객은 블랙으로 하나 된, 또 다른 이름의 워커들이었다.
 
18일 밤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알렌 워커 공연 모습. 사진/에이아이엠
 
팬들 사이에서 워커의 다크 패션은 ‘시그니처’로 통한다. 음반 유통사인 소니뮤직코리아에 따르면 이 패션에는 워커 만의 남다른 철학이 있다. 블랙을 걸칠 뿐인데 모두는 평행선에 놓인다. 하나가 된다. 단결과 통합, 평등의 정신. 패션과 음악을 넘어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2012년 음악활동을 시작한 워커는 어릴 적부터 EDM 음악에 매료됐다. 유튜브에 자작곡을 업로드하며 활동했고 2014년 발표한 곡 ‘페이디드(Faded)’가 대박이 나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 곡은 지난 2016년 기준 세계에서 10번째로 많이 재생된 곡으로 기록됐다.
 
이후로도 '타이어드(Tired)', '올 펄스 다운(All Falls Down)' 등 발매 싱글마다 히트를 쳤고 전 세계 페스티벌에 500회 이상 참여하는 등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발돋움했다. 국내에서도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 등 굵직한 무대에 참여한 바 있어 유명하다. 국내 초중고교생들은 보통 게임이나 유튜브 등의 채널을 통해 그의 존재를 알게 되는 편이다.
 
시그니처 패션 검정 후드와 검정 마스크를 쓰고 등장한 알렌 워커. 사진/에이아이엠
 
이날 정시 ‘다크 패션’의 그가 “하이, 코리아. 마이네임 이즈 알렌”이라 인사를 건네자 홀은 ‘블랙피플’의 함성으로 후끈 달아 올랐다.
 
우주적 굉음처럼 느껴지는 ‘인트로’로 등장한 그가 자신의 대표곡 ‘얼론(Alone)’을 트니, 객석은 시작부터 1, 2층 할 것 없이 떼창으로 단결했다. 알파벳 에이(A)와 더블유(W)를 겹쳐 놓은 로고와 해커처럼 움직이는 10개의 손가락, 그 사이를 종횡하는 오로라빛 조명들. 음악 위로 부유하는 여러가지 표식들에 관객들의 탄성이 마르지 않았다.
 
일반적인 하우스 뮤직과 달리 그의 곡들은 듣기에 편한 템포 간격을 유지한다. ‘BPM(음악의 속도를 숫자로 측정하는 단위)’이 128 내외에서 움직이는 일반적인 하우스 뮤직과 달리 대체로 80~90 정도에 머문다. 
 
세계적인 DJ 답게 이날 무대에는 팝과 록 등 여러 가수의 여러 갈래의 음악이 오르내렸는데, 그의 비트를 머금어 보다 서정적이고 멜로디컬하게 변주됐다. 콜드플레이의 ‘힘(Hymn)’부터 카이고와 원리퍼블릭의 ‘스트레인저 띵스(Stranger Things)’, 캐리비안 해적의 OST 등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들의 워커식 해석이었다. 각 노래의 연결을 자기식대로 짜맞추고 설계하는 소리 공학도이자 건축업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알렌 워커 공연 모습. 사진/에이아이엠
 
다만 객석은 대중적인 곡들보다 워커의 곡이 나올 때 더 폭발할 듯 했다.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에 맞춰 음을 흥얼거리거나 몸을 흔들었다. 빠르지 않은 템포에 맞춰 손을 좌우로 내젓는 귀여운 퍼포먼스도 줄곧 선보였는데, 모두가 따라하니 ‘블랙 물결’이 됐다.
 
‘싱 미 투 슬립(sing me to sleep)’, ‘더 스펙트레(The Spectre)’, ‘페이디드(Faded)’ 등 대표곡들에선 가사를 목놓아 따라 부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럴 때면 워커는 마이크에 대고 웃으며 “함께 불러줘서 고맙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날 공연은 최근 발매된 첫 정규 ‘디프런트 월드(Different World)’ 수록곡 비중이 특히 높았다. 앨범에서 워커는 오늘날 환경 문제에 직면한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날 되돌려놔/ 우리가 활기찬 삶을 살고 있었을 때로/ 시작점으로 되돌아가/ 우리 둘이 알고 있던’ ‘이건 우리가 마음 속에 담아두던 세상이 아니야’(곡 '디프런트 월드' 중) 이날도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짚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희망어들이 홀에 가득 울려 퍼졌다.
 
한국에 대한 애정도 가감없이 드러냈다. 엑소(EXO)의 멤버 레이와 협업한 ‘쉽(SHEEP)’을 선보이는가 하면, 중간에는 빅뱅의 승리가 게스트로 출연해 ‘이그나이트(Ignite)’와 ‘뱅뱅뱅(Bang Bang Bang)’을 노래하기도 했다.
 
 
1시간 50여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앙코르까지 무려 40곡을 쏟아낸 그는 “한국에 서 단독 공연을 하게 돼 영광이었다”며 손으로 하트를 그리고는 무대 밑을 내려 갔다.
  
시그니처 패션 검정 후드와 검정 마스크를 쓰고 등장한 알렌 워커. 사진/에이아이엠
 
이날 공연에서는 가족 단위로 온 관객들도 상당히 많았다. 부모님과 함께 손을 잡고 온 이들은 워커의 후드와 마스크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리틀’ 블랙 피플들이었다. 
 
40대 초반 안수진씨는 선일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열두 살 아들 윤지호군과 친구 이찬우군을 데리고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
 
윤지호군은 워커가 왜 좋냐는 물음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음악도 너무 좋고요. 잘 생기기도 했고요. 그냥 멋져요! 후드티랑 마스크 같은 패션도 멋있잖아요. 방탄소년단이나 워너원, 퀸 만큼이나 좋아요!”
 
옆에 있던 이찬우군도 말을 보탰다. “학교에서 친구들 하고 많이 들어요. 친구들도 그런 패션 따라해요.”
 
알렌워커가 환경 메시지를 던지는 거 알고 있냐고 물으니 둘 모두 속사포처럼 대답한다. “네네네!”
 
“이번에 새로 나온 앨범이 그렇다는 거 알고 있어요. 음악 듣기 전에 환경 문제가 심각한 건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많이 남은 줄 알고 있었는데, 노래를 듣고 생각이 좀 변하게 되는 것을 느꼈어요.”
 
“또 앨런 워커가 소셜미디어(SNS)에다 해시테그 형태로 노래를 틀어놓고 쓰레기를 줍는 ‘비밀 미션’을 하고 있어요. 아직 참여하진 않았지만 이번 공연을 보고 꼭 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수진씨는 “예전에는 가수별 세대를 구별짓는 단절된 느낌이 있었다면, 지금의 30대 후반에서 40대 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EDM을 듣는 게 낯설지 않다”며 “자녀와 게임을 같이 하는 부모들이 많은 것처럼 음악을 공유하곤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게 하나의 문화가 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알렌 워커 공연 모습. 사진/에이아이엠
 
40대 후반 김민성씨는 이날 중학생인 아들 김범준군과 처음 EDM 공연을 보러 왔다. 평소 아들을 통해 건너 듣던 워커의 공연에 ‘심장’이 뛰었다고 얘기했다.
 
“예전에 저희 때는 헤비메탈이 대세였거든요. EDM하고는 거리가 좀 멀었죠. 평소에 아들이 틀어줄 때 귀에 쏙쏙 박혀서 듣게 됐는데, 오늘 와보니 심장이 움직이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몸도 같이 움직여야 할 것 같고, 그런 느낌이 확 들었네요.”
 
“오늘 저 같은 부모들도 많아 놀랐어요. 아이를 통해 음악이 전 세대에 공유되는 그런 분위기가 됐구나 싶었어요. 가족과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찾지 않을까 싶네요.”
 
옆에 서 있던 범준군은 워커의 후드티를 활짝 펼쳐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평소 워커가 던지는 환경 메시지에도 깊이 귀 기울이는 편이다.
 
“저는 노래로 환경 문제를 전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해요. 전에는 환경에 대해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노래를 듣다 보면서 생각이 구체적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쓰레기를 버린다거나 할 때도 재활용분리를 철저히 하거나 실천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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