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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토마토칼럼)'민정 1기', 박수칠 때 떠나라

2018-12-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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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 출신의 한 젊은이가 있었다. 일찍이 공직에 뜻을 둔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28세 되던 해에 '공무원의 꽃'이라 하는 검찰 9급과 7급 공무원시험에 동시 합격했다. 2003년 창원지검 공안부에서 검찰 생활을 시작한 이 젊은이는 능력을 인정받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로 영전했고 이때부터 탄탄대로를 달렸다. 2008년도에는 '삼성비자금 특검' 수사관으로 활약하다가 특검이 끝난 뒤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공적자금반으로 옮겼다. 그 뒤에는 서울중앙지검 금조3부에서 공무를 봤다.
 
'낭중지추'라 했던가. 공직 9년차 되던 해인 2012년 2월 이 젊은이는, 내로라 하는 인재들만 모인다는 청와대 특감반으로 들어갔다. 정권이 바뀌어 검찰로 복귀해야 했지만 그는 다시 한번 새 대통령을 위해 특감반에서 뛰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나고 '대검 범정'으로 친정에 복귀할 때에는 이미 경력 10년을 훌쩍 넘긴 베테랑이 됐다. 그것도 검찰과 청와대의 정보활동에 특화된 '고급 인재'로 말이다.
 
본직인 검찰로서 수사나 행정경력을 더 쌓을만도 한데 이 젊은이는 다시 청와대 특감반으로 차출됐다. 새로 모실 대통령은 촛불혁명으로 집권했다. 그는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정보활동의 노하우를 십분 발휘해 '대통령 측근 비리 단속'에 최선을 다 했다. 동료들에 비해 경력도 많고 선배였으니 특감반 내에서도 적지 않은 역할을 차지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듯, 이 젊은이의 공직생활은 15년만인 2018년 11월 나락으로 떨어졌다. 청와대가 하루아침에 누명을 씌워 내쫓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배운대로, 실적을 내 온대로 대통령과 국가를 위해 충성을 했건만.
 
분하고 억울한 이 젊은이는 그때부터 청와대를 적으로 돌리고 전쟁을 시작했다. 어차피 같은 기간 함께 근무한 동료들이 정권이 바뀌고 줄줄이 수사를 받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통령과 맞서고 있는 야당과 일부 언론이 원군을 자처하며 그의 뒤에 서 힘을 보태고 있다. 
 
김태우 수사관 얘기다. 그로서는 일이 터진 뒤 진행상황을 뜯어보니 할만 할 것이다. 청와대는 '공직기강 해이' 운운하며 축소하려는 건지 감이 없는 건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눈치다. 여론이 들끓자 한발짝 물러서 '특감반' 명칭만 바꿨다. 쇄신이라고는 하나 그밥에 그나물이다. 일부 언론과 야당이 협공에 나서자 청와대 대변인이 파트너로 나서 상대해준다. 억지로 끼워 맞춘듯 한 '민간인 사찰'의혹이었지만 어느새 청와대 스스로 그 프레임에 갇힌 것이다. 19일 김의겸 청와대 대번인은 '본인이 나서 일일이 반박하지 않겠다'고 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김 수사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늦은감이 없지 않다. 검찰은 이미 김 수사관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사란 기소를 위한 과정이다. 행정작용인 감찰과 다르게 강제성을 띤다. 이론과 선례대로라면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나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이 검찰 조사를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번에 일괄 교체된 특감반원들도 김 수사관과 같은 의혹을 받고 있다. 수사가 확대되면 이들은 연대할 것이다. 청와대를 나왔다고는 하나 이들이 인지하고 있는 공적비밀은 위험하고 방대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의혹이 제기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더 큰 문제는 공판이다. 유죄를 벗어나기 위해 김 수사관 등은 사력을 다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박관천 사건'의 재연이다. 그 결과는 역사를 통해 익히 목격한 바다. 이 과정이 진행되면서 촛불민심은 떠날 것이다. 그렇게 공을 들인 국정농단 사건 수사와 재판도 정당성에 타격을 입게 된다. 
 
원인은 청와대의 안일한 초기 대응에 있다. 이 정부 들어 국가정보원과 경찰, 검찰의 정보기능을 축소하면서 청와대 정보기능도 함께 약해졌다. 특감반이 사실상 유일무이한 수단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와대는 과거 비리로 부패한 청와대 특감반을 그대로 물려받아 유지했다. 특별감찰관을 장기간 공석으로 두면서 하부 조직에 대한 완전 장악에도 실패했다. 당연히 탈이 날수밖에 없다.
 
수습은 더 엉성했다. 사건이 터지자 마자 민정라인 전부를 혁신했어야 했다. 그것이 국민의 눈높이다. 역대 정부 청와대 출신들이 지금 청와대를 가리켜 "아마추어"라거나 "위기대처 기능이 없다"고 흉보는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민정 1기'는 새 정부 탄생과 함께 '내각 구성, 검·경 수사권 조정, 검찰개혁 초안 마련' 등 굵직굵직한 과업을 추진해 나름대로 성과를 냈다. 임무를 다 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읍참마속에 앞서 민정라인 스스로 결단이 필요한 때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만 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
 
최기철 사회부장(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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