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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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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정초원입니다
롱패딩의 계절이 남긴 질문

2018-12-14 17:44

조회수 :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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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롱패딩을 장만한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과거 중고교생 사이에서 등골 브레이커로 유명했던 노스페이스 패딩이 이제는 무릎 밑으로 길게 내려오는 롱패딩으로 세대교체가 된 셈인데요. 학생들 뿐만 아니라 4~50대 중년 세대까지 롱패딩의 매력에 푹 빠진 모습입니다. 그런데 롱패딩 열풍과 함께 또 하나의 소비 트렌드가 떠오르고 있는데요. 바로 '비건 패션'입니다. 보온 의류 하나를 만들기 위해 과도하게 희생되는 동물들의 숫자를 고려한 움직임인데요. 충분한 대체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멋이나 편리함만을 위해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하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 트렌드입니다. 

 
1. 동물로부터 취한 옷감, 무엇이 문제일까? 

 
• 다운패딩 한벌에 오리 20마리 희생(한경비즈니스 기사 읽어보기)
지난 2014년 국제적인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가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일반적인 다운 의류 한 벌이 생산되기 위해서 오리나 거위 15-20마리가 희생된다. 열악한 시설에서 거위들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사료를 강제로 주입 당하거나, 산 채로 털이 뽑히고 피부가 찢기는 등의 방식으로 사육된다. 이 같은 구스다운의 비윤리적인 생산 방식에도 불구하고, 아웃도어 업체들은 구스 다운 패딩 물량을 최대 150%까지 늘리고, 여름 시즌부터 선주문 판매에 나서는 등 판매 호조를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 "송치가죽은 태아소의 피부"(한겨레 기사 읽어보기)
송아지 가죽은 태어난 지 6개월 미만의 송아지를, 송치가죽(털을 조금 남긴 상태로 가공한 가죽)은 어미 소의 뱃속에서 6개월 정도 된 태아소를 강제로 끄집어내 피부를 벗겨 만든다. 이 가죽들은 보통 고급 의류·신발·가방 등의 소재로 사용된다. 겨울철 모자 테두리나 목도리 등에 사용되는 토끼·라쿤 털은 동물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죽과 털을 뜯어낸다. 윤기 있는 모피를 얻기 위해서다. 스웨이드(소·양), 울(양), 앙고라·캐시미어(산양)와 겨울철 패딩이나 이불의 충전재로 사용되는 오리·거위털 생산 과정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가 공개한 영상에서 거위와 오리들은 그저 인간에게 털을 빼앗기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거위의 수명은 50년, 오리의 수명은 20년에 달하는데요. 그 수명을 다 채우기란 쉽지 않습니다. 산 채로 털이 뽑히는 과정을 수십번 반복하고 나면 몸이 남아날 수가 없거든요. 패딩에 활용되는 거위털, 오리털 대부분이 이런 방식을 통해 생산, 유통됩니다. 물론 캐시미어와 송치가죽, 울 등 피부와 털을 내어주는 대부분의 동물이 이런 과정을 겪는다고 보면 되는데요. 심지어 송치가죽의 경우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태아소를 억지로 끄집어내 만든 가죽이라는 이야기는 참혹할 정도입니다.   


2. 달라지는 패션업계

 
• 아웃도어 업체들이 도입한 RDS란?(서울경제 기사 읽어보기) 
패딩계의 선두주자라 불리는 노스페이스 등 아웃도어 업계가 나서서 ‘책임다운 기준(Responsible Down Standard)'이라는 인증마크를 도입했습니다. RDS란 살아있는 조류의 깃털을 강제로 채취하는 비윤리적인 동물 학대를 하지 않고, 사육, 도축, 세척 및 가공 등 깃털 생산부터 완제품을 만들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받을 수 있는 글로벌 인증인데요. 현재 아디다스, 리복, 코오롱스포츠, 블랙야크 등 40여개의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RDS 인증을 받은 전 세계 1200여곳 사육장의 약 5억 마리 조류로부터 털을 공급받아 제품을 생산합니다.

• 명품브랜드 ‘비건 패션’ 잇단 동참(동아일보 기사 읽어보기)
명품 브랜드 버버리도 올해부터 모피로 만든 의류 라인을 없애 ‘퍼 프리(fur free)’ 브랜드가 됐다. 구치와 지미추, 톰포드 등은 이미 2016년 모피 사용을 중단한 바 있다. 세계 4대 패션쇼로 꼽히는 런던패션위크는 9월 열린 패션쇼부터 모피로 만든 옷을 런웨이에서 퇴출시켰다. 그 이유는 ‘윤리적 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의 소비자들은 피 묻은 동물의 가죽을 입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꼭 진짜 털을 사용해야만 고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비건 패션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제기합니다. 진짜 동물털이라고 해서 그 품질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고, 화학기술을 활용해 만든 가짜털이라고 해서 품질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더군다나 기술은 날로 달로 진보하기 마련입니다. 이미 동물털에 못지 않는 에코퍼가 충분히 시중에 있는 데다, 비건 패션 시장이 커질수록 그 품질은 더욱 좋아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물론 소비자들이 비건 패션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에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난 것이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십년 전에 비해 인조 옷감의 품질이 충분한 대체재가 될만큼 좋아진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배경입니다. 이런 점을 뒷받침하듯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동물의 털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아웃도어 업체들도 대안을 찾고 있는데요.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을 활용한 비건 패딩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한편, 불가피하게 오리털을 확보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윤리적인 방법으로 얻은 털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3. 윤리 혹은 트렌드

 
• 플리스 전성시대의 윤리학(ㅍㅍㅅㅅ 기사 읽어보기)
그러나 적어도 사회의 어떤 부분들이 더욱 더 윤리적인 방향으로 진전되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거나, 그것을 방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령, 다운 제품들의 대체재로서 기존의 솜을 연구, 개발하여 다운 제품만큼 높은 보온성과 실용성을 지닌 제품을 만드는 일은 환영할 일이지, 딴지 걸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관리가 쉽고 가격은 더 저렴한 신슐레이트라든가 히트볼, 웰론 패딩이 출시되면 반길 일이니까.

=비건 패션은 윤리를 넘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희생을 만들지 않고도 충분히 멋지고 트렌디할 수 있다는 것을 새로운 가치로 삼는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그렇게 주장하는 비건족들은 모든 제품을 에코상품으로 이용하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을 자주 목도하는데요. 마치 채식주의자에게 '동물의 생명이 귀중하다면, 식물도 똑같은 것 아니냐. 식물은 왜 먹느냐'고 딴지를 거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위의 글이 지적했듯, 모든 가치 판단에 100%를 충족하는 것은 없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옳은 방향이라면, 적어도 그를 이행하는 과정에 대해 100%를 요구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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