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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토마토칼럼)사법농단 본질을 잊어선 안 된다

2018-11-14 06:00

조회수 : 7,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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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출입처 못지 않게 취재가 쉽지 않은 곳이 법조다. 특히 보안이 극도로 요구되는 검찰 수사에 대한 사항은 방향은커녕 단서 잡기도 어렵다. 더구나 수사 공보준칙상 검찰이 피의사실을 외부에 밝히는 것은 극히 제한된다. 그러나 언론이 외부 취재를 거쳐 확인을 요하는 사실에 대해 검찰은 응할 의무가 있다. 언론이 죄다 ‘잠결에 남의 다리 긁듯’ 소설을 써 애먼 사람을 잡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법조기자들 끼리는 ‘가르마를 탄다’고 한다.
 
대형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어느 언론사이고 크고 작은 ‘헛발질’이 많은데, 대부분 불똥은 검찰로 튄다. 가르마를 잘못 탔기 때문이다. 일선에서 공보업무를 맡는 차장검사들이 얼마나 유능한 지는 곧 가르마를 얼마나 잘 타느냐와 직결된다. 국민을 대신해 와 있는 언론과의 ‘소통’이기도 하지만, 가르마를 타기 위해선 수사를 빈틈 없이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과 국민 사이에서 가르마를 타는 존재는 언론이다. 언론이 가르마를 잘못 타면 작게는 정책이나 수사를 망치고, 크게는 역사와 국가를 망친다. 이 사실은 언론의 ‘적폐 부역사’를 통해 이미 확인된 바다. 대법원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라고 언론을 정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검찰은 오늘이나 내일, ‘사법농단 의혹 사건’ 핵심피의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을 구속기소한다. 언론을 통해 처음 의혹이 제기된 지 1년 7개월여 만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서 김명수 현 대법원장으로 시대가 바뀌면서 ‘사법농단 의혹 사건’은 대법원 자체 조사만도 3번이 있었다. 검찰 수사는 반년이 다 돼간다. 
 
그동안 ‘재판개입·재판거래’ 등 정황이 드러나면서 상당수 국민은 법원과 판사 전체를 ‘적폐의 본진’으로 낙인찍은 듯하다. 이번 기회에 사법부를 완전히 갈아치우자는 초헌법적인 주장도 적지 않다. 언론이 가르마를 잘못 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이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들을 보라. 여기에 여론 눈치만 보는 비전문가들과 판결로 말한다는 일부 법관들의 게시판 논쟁이 더해지면서 그 낙인의 인영을 더 짙게 한다. 우리나라 법원과 법관은 이미 더 이상 그냥 둬서는 안 될 '몹쓸 집단'이 됐다. 물론, 법조를 출입하는 필자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침해하고, 국가 근간을 흔든 그 죄는 매우 무겁고 중대하다. 특히, 치적을 위해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자’라는 순수 약자의 권리구제를 방해한 법원행정처의 행태는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용서가 어렵다. 
 
그러나 이런 ‘죄’가 전체 법관 2905명, 그리고 70년을 버텨 온 법원 자체의 잘못은 아니다. 대법관들이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조아려 ‘말씀’을 듣는 순간에도, 법원행정처 고위 법관들이 밀실에서 판사들 뒤를 캐기 위해 ‘작전’을 짤 때에도, 일선 법원은 국민의 권리 구제와 인권보호를 위해 기능했고 대다수 판사들은 새벽까지 재판 기록을 들춰보고 있었다. 법원이 그때와 지금도 ‘국민 권리의 최후 보루’라는 사명을 잃지 않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법원은 법원이다.
 
‘사법농단 의혹 사건’은 일부 ‘기득권 판사’들이 치적을 위해 적폐정부에 부역한 사건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수사와 재판은 물론, 언론도 이 본질을 벗어난다면 더 이상 수사나 재판부 구성을 둔 논쟁은 의미가 없다. 역사의 가르마를 잘못 탄 탓에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어느 한쪽은 결코 승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법부에 대한 수술은 살리는 수술이어야 한다. 쇠뿔 바로잡겠다고 소를 죽여서야 되겠는가.
 
최기철 사회부장(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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