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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수자기는 죄가 없다

2018-10-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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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정경부 기자
임진왜란 중 충무공 이순신 제독(이하 충무공)의 정서는 ‘외로움’으로 응축된다. 아꼈던 막내아들 면을 전란 중 잃으며,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수군 함대를 원균의 칠천량해전 참패로 모두 잃고 재건하며, 자신의 승전 공로를 애써 깎아내리며 경계하던 왕 선조의 시기를 받으며 그는 외로웠다. 나는 충무공의 외로움을 명량해전 중 그가 세운 초요기(군사를 부르는 깃발)에서도 엿본다. 아군은 겁에 질려 있었고, 초요기를 세워도 다른 11척의 배는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김훈은 소설 ‘칼의 노래’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중군장 김응함과 거제 현령 안위는 두 마장(약 700미터) 정도 뒤로 물러서서 다만 고요한 바다에 떠 있었다. 노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베어야 했으나 배를 돌릴 수 없었다.” 오로지 충무공이 탄 대장선만이 선두를 지키며 울돌목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다른 배들은 초요기를 올린 충무공의 외로운 분전을, 뒤에서 한참을 지켜본 후에야 다가왔다.
 
반대로 충무공이 상대한 일본 수군의 깃발은 화려했다. 명량해전에 뛰어든 일본 연합함대 선단마다 빨간 기, 노란 기, 흰 기, 검은 기가 펄럭거렸다. 노량해전에서도 검은 깃발의 적과 붉은 깃발의 적 사이로 흰 깃발의 선단이 돌격 대형의 장사진을 펼치고 다가왔다. 이들을 지휘하는 일본 본토도 마찬가지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하인(天下人)을 자처했고 그의 오사카 성에는 늘 천하포무(天下布武)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천하포무의 깃발은 오다 노부나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가 조선에 출병한 깊은 뜻은 천하를 가지런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김훈, 칼의 노래 中). 히데요시가 꿈꾼 ‘천하를 가지런히 하는 것’의 자세한 의미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충무공은 명 진린 제독의 만류를 뒤로하고 노량에서 적들을 맞았고, 자신의 길을 갔다. 우리가 충무공을 기리는 이유는 그가 연전연승의 불패 신화를 거둔 영웅이어서가 아니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책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에서 대제학 이식의 글을 소개한다. “역사상 장수로서 보통 때에 조그마한 적을 만나 공로를 세우고 이름을 날린 이는 많다. 하지만 공과 같이 나라가 쇠약해지고 전쟁을 꺼려하는 때 천하에 더할 수 없이 강한 적을 만나 크고 작은 수십 번 싸움에서 다 이겨내고, 서해를 가로막아 적들이 수륙으로 병진할 수 없도록 만들어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근본을 삼은 장수는 일찍이 없었다. 그러니 한때의 공을 세운 신하들로서는 따를 수 없는 일이다.”
 
일본 NHK는 지난 12일 “일본 외무성은 제주에서 열린 해군 국제관함식에서 한국이 조선 수군 대장기 ‘수자기’(帥字旗)를 게양한 것에 대해 항의했다”고 보도했다. 충무공을 상징하는 수자기 게양은 일본 해상자위대(해자대) 함정의 욱일기 게양을 인정하지 않았던 한국정부 방침과 모순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초 일본 해자대 구축함 1척이 관함식에 참가할 예정이었지만 우리 측에서 해자대 공식 깃발로 쓰고 있는 욱일기 게양 자제를 요청하자 거부, 불참한 후 벌어진 상황이다.
 
다른나라를 침략했던 그들의 역사를 연상케하는 욱일기와, 그들 조상들이 범했던 침략을 막기 위해 충무공이 올렸던 수자기를 같은 가치로 판단하는 것인가. 그들의 판단이 과연 이것인지 나는 궁금하다. 수자기는 죄가 없다.
 
최한영 정경부 기자(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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