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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전사자 유해는 죄가 없다

2018-10-1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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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정경부 기자
작가 데이비드 립스키가 4년 간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 생도들 생활을 관찰하며 쓴 책 ‘강하게 살아라’(신경식 육사교수 옮김)의 한 대목. 웨스트포인트 내 나이닝어관 벽에는 1951년 명예 졸업생 로버트 A. 리네먼의 칼이 걸려있다. 리네먼은 애나폴리스(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지만 큰 키(6피트7인치·약 2미터)로 신체지수 초과 대상이 되자 해군 대신 육군 보병장교로 임관했다. 6·25전쟁에 참전한 그는 전투 중 중공군에 고립돼 결국 전사했다. 상황이 급박해 시신도 수습할 수 없었다.
 
다음 날 그가 속한 부대는 시신 훼손이나 부비트랩 설치 등을 우려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러나 리네먼 손에는 애나폴리스 졸업반지가 그대로 끼워져 있었고 전투화도 신겨져 있었다(전쟁 중 전투화는 필수 회수품목이다). 얼굴도 깨끗하게 씻겨 있었고 제복도 수선되어 있었다. 시신 곁에는 적군이 남긴 메모도 있었다. “용맹스런 군인이로다. 집으로 데려가라.”
 
전쟁 시 인도적 대우 기준을 정립한 국제협약인 제네바협약 17조는 “사망한 적을 그의 종교 관례에 따라 매장하고…유해 송환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생사가 오가는 급박함과 교전 당사국 간 이해관계 속 해당 규정은 사문화되기 십상이다. 리네먼의 유해는 수습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실종된 미군 수만 7699명이고, 이 중 5300여 명이 휴전선 이북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군과 우리 측 연합군, 인민군, 중국군 실종자 수까지 더하면 가슴 속 무거움의 크기는 더 커진다.
 
남북 군 당국은 지난달 19일 평양정상회담 기간 중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서 내용 중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와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 공동유해발굴 준비작업이 우선 진행 중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화살머리고지에는 국군 전사자(실종자) 유해 200여구를 포함해 미군·프랑스군까지 총 300여구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이 끝난지 65년이나 지났지만 나라를 위해 희생한 장병들의 주검을 수습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행위는 숭고하다.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방부 국정감사의 한 장면. ‘기무사 계엄문건’ 비밀여부와 남북 군사합의 적절성을 놓고 여야 간 격론이 한바탕 벌어진 후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하 의원은 “6·25 전쟁에 참전했던 중국군 유해를 2014~2015년에 송환할 당시 북한군 유해 6구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한중 양국 간 합의 하에 지난 2014년부터 매년 진행 중인 중국군 유해송환 중 우리 측 업무과실로 북한군 유해가 중국으로 인도됐다는 것이다. 하 의원은 “중국이 이 사실을 인지했는지는 확인이 안 되고 있으며, 인지했다면 북한으로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며 “빠른 시일 내에 한중 간 협의채널을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쪽의 참전 실종자 가족들처럼 북쪽의 누군가도 자신의 남편·아버지 유해라도 돌려받길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 측 당국자가 감수해야 할 약간의 불편함보다는 이들의 가슴 속 한(限)을 풀어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 아닐까. 전사자 유해는 죄가 없다.
 
최한영 정경부 기자(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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