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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록

피해자 진술에 유·무죄 갈리는 성추행

2018-09-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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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YTN뉴스 보도 화면

보배드림 '곰탕집 성추행', 거리로 나서는 남성들? 10월 27일 항의 시위 예고
(서울경제 기사 읽어보기)

지난해 11월 부산의 한 곰탕집에서 회식을 하던 A씨가 옆 테이블에 있던 여성 B씨를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A씨가 자신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는 B씨와 '움켜잡지 않았다'는 A씨의 주장이 맞섰는데요.
이후 재판부는 A씨에게 초범이지만,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A씨가 피해자 엉덩이를 움켜잡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 진술이 구체적이고 그 내용이 자연스럽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만이 유력한 증거로 채택됐고, 현장 폐쇄회로(CC)TV는 B씨가 피해자를 만졌다는 시점에 동작을 가늠하기 어려운 영상만 남아 있던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됐는데요.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화면

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청와대 국민청원 바로가기)

B씨의 부인이 이달 6일 '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청와대 국민청원 글을 올리면서 해당 논란에 불을 붙였습니다.
9월18일 오전 11시 기준 서명 인원은 30만명에 육박하며 청와대 답변 요건을 웃돌았습니다.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현재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시위로까지 번질 전망을 보이고 있습니다.
네이버 카페에 개설된 ‘당당위(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 운영진은 지난 16일 공지 글을 통해 오는 10월27일 ‘곰탕집 성추행 사건’ 판결 내용에 항의하는 오프라인 시위를 진행한다고 알리며 “이번 사건에서 사법부의 유죄추정에 대한 문제 제기와 유사 사례에 대한 사법부의 각성을 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곰탕집 성추행 사건'의 유사 사례들을 모아봤습니다. 

1. 병원장의 간호사 성추행 사건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간호사 성추행한 병원장 대법서 징역 1년 확정
(아시아경제 기사 읽어보기)

대법 “성추행 피해자답지 않다’고 진술 불신은 잘못”
(한겨레 기사 읽어보기)

경기도 용인 ㅇ병원 원장이던 강 씨는 간호사 A씨를 2015년 1월 중순부터 말까지 3차례에 걸쳐 성추행 한 혐의로 2016년 기소됐습니다. 
직접 증거가 피해자의 진술밖에 없어 이를 심리한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렸었는데요.  


최근, 강제추행 이후에도 피해자가 가해자의 지시에 따르고, 가해자와 계속 근무했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자의 진술을 못 믿겠다고 밝힌 하급심 판결이 잘못됐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2심 재판부는 “진술의 주요 부분이 일관되면 사소한 사항의 진술에 다소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한 뒤, “피해자는 추행 경위와 추행 종료 이유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2. 배우 조덕제, 여배우 A 성추행 사건

‘여배우 강제추행’ 조덕제, 대법서 유죄 확정…징역 1년·집유 2년
(씨네21 기사 읽어보기)

영화 촬영 중 여배우를 성추행한 혐의(강제추행치상)로 기소된 배우 조덕제 또한 피해자의 진술이 유·무죄를 갈랐습니다.

조덕제는 지난 2015년 영화 촬영 중 사전 합의 없이 상대 여배우 A씨의 속옷을 찢고, 바지 안에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는데요.

1심 재판부는 조덕제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 항소심에 이어 지난 13일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1심 판결을 뒤엎고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주요 부분에 관해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고, 진술 내용 자체에서 불합리하거나 모순된 부분이 없다”며 “피해자가 연기자로서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이를 감내하면서까지 조덕제를 허위로 무고할 이유도 없어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3. '딸 친구' 성추행 사건, 피해자 진술 흔들려 무죄

반면 피해자의 진술이 엇갈리면서 무죄를 선고 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딸 친구 성추행 혐의로 법정 간 60대…피해자 진술 뒤집혀 무죄
(연합뉴스 기사 읽어보기)

S씨는 지난해 10월 인천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자신의 10대 딸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A양의 엉덩이를 손으로 한 차례 만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당시 S씨는 장애를 가진 딸이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자 하굣길에 동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A양과 친구들은 S씨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며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현장에 폐쇄회로(CC)TV 영상 등 물적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A양과 친구들의 진술은 S씨가 기소되는 데 결정적인 증거가 됐습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이들의 진술은 흔들렸습니다.
A양은 "S씨가 만진 것 같다"며 추측성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A양 친구들도 수사기관에서의 주장과 달리 "잘 모르겠다. 우리끼리 그렇게 (목격했다고) 하기로 했었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올해 4월 1심은 "검찰의 증거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S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찰은 항소했지만 2심 판단 역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결정적 물증이 없는 강제추행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개연성 있는지를 법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따진다"고 말했습니다.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법언이 있습니다.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무죄가 결정되는 현 상황. 문제는 없는 걸까요.
반대로 사법기관이 피해자의 목소리마저 외면하게 된다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우려는 더 심각해 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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