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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엘리엇과 법무부의 답변서

2018-09-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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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자동차그룹에 지배구조 개편안을 제시하고 직접 논의를 요청했다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정·재계가 또 다시 술렁이고 있다. 삼성물산 주주였던 엘리엇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근혜전 대통령 때문에 피해를 봤다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8000억 원 정도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이미 낸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가 내놓은 답변서가 내용과 시기 그리고 작성 주체의 측면에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내용 측면에서 먼저 살펴보자. 현재까지 나온 언론보도에 따르면, 법무부에서는 이 부회장의 2심 판결을 상당 부분 원용해서 답변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정말 그런 식으로 답변서가 나갔다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그 판결은 박 전 대통령과 삼성 사이의 국정농단 관련 여러 판결 중 유독 결론이 상이하기에, 이런 여러 개의 서로 다른 하급심 판결이 있는 경우에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하기 전까지 이를 함부로 원용하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향후 어떤 식으로 결론이 달라질지도 모르고, 일국의 정부가 하나의 사건에 대해 일관되지 못한 논리를 가지고 우왕좌왕 하게 되면 필히 국가의 대외적 신뢰성이 떨어지게 된다. 법적 분쟁에서도 상대방을 법리적으로 굴복시킬 수 없어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 즉, 논리적 모순으로 자승자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여러 상황을 고려해 신중하게 답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민사상 손해배상과 형사상 처벌이 꼭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소송을 당했다 하더라도 너무 낙심할 필요가 없다. 실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정경유착이 인정 돼도 이로 인해 실제 손해를 얼마나 어떻게 입었는지 등을 엘리엇이 입증하는데 성공해야만 비로소 대한민국의 배상 책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입증이 매우 어려울 뿐더러, 이미 엘리엇은 몇 년 전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지만 패소 판결을 받은 바가 있다.
 
또한 이 소송에서 대한민국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 해도 대한민국은 그 원인을 야기한 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에 있어, 민법과 행정법의 기본 법리가 그렇다. 국가 공무원이 국민이나 외국인에게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손해를 입혔을 경우(경과실에 의한 손해라면 구상금 청구가 허락되지 않는다), 국가는 먼저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주고 그 해당 공무원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면 된다. 공무원인 전직 대통령이 일반인인 대기업과 공동으로 고의나 중과실로 불법행위를 해서 손해가 발생했고 이를 국가가 배상해줬다면, 당연히 국가는 그 대기업과 전직 대통령을 공동피고로 책임을 묻고 "연대해 배상하라"고 하면 된다. 내부적으로 하여 누구의 불법성이 더 큰지는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 대기업에게만 자력이 있다면 국가는 대기업만을 상대로 청구할 수도 있다. 전적으로 국가 마음이다.
 
두 번째, 시기의 문제를 보자. 법무부에서 답변서를 낸 시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2심 판결 선고가 10일 정도 앞으로 다가온 시기였다. 당시 답변서를 제출할 날짜가 정해져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지만, 이는 잘못된 말이다. 한 국가가 개인과의 사적 유착 관계로 손해를 끼쳤다고 비난받는 소송에서 피고로 지목된 해당 정부가 이미 날짜가 못 박혀져 있다는 이유로,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전제와 논리를 기본으로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답변서를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그런 소송에서 날짜가 정해져 있지도 않지만, 날짜가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연기가 가능하고, '현재 관련 소송이 여러 개 진행 중이므로 이에 대해 종국적이고 총괄적인 대법원 확정 판결을 기다려 보고 답하겠다'고 의견을 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번 답변은 왜 그렇게 성급하고도 이상한 내용으로 제출되었을까? 참으로 이상하다.
 
작성 주체의 측면에서도 이렇게 시끄러울 수가 없다. 답변의 내용과 시기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자 '법무부 등이 내놓은 답변서는 모 로펌에서 썼으니 법무부 답변이 아니다'라는 식의 주장이 나왔다. 참으로 해괴한 주장이다. 기본적으로 정부가 소송 할 때 답변은 주무 담당자가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량이 부족해 외부 기관(예를 들면 대형로펌)에 법률대리를 의뢰한다면, 그 외부기관이 내놓은 답은 외부기관이 아니라 당연히 정부의 답이다. 이 사건으로 돌아와서 볼 때, 모 로펌은 법무부의 법률대리인 자격으로 답을 내놓은 것이기 때문에 법무부 등이 그 서면을 소송에서 제출했다면 이는 당연히 법무부가 쓴 것이다.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혹세무민이 난무하고 유언비어가 활개를 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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