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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전 '윤 소위 의문사'사건 재수사 해야"

국민권익위 "군 수사단 자살 결론 납득 안돼"…국방부에 재수사 권고

2018-09-1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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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37년 의문사를 당하고도 자살로 처리된 '고 윤병선 소위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는 국민권익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국민권익위는 11일 윤 소위의 사망원인을 다시 조사해 명예를 회복해 달라며 동생이 제기한 고충민원에 대해 "윤 소위의 사망사건이 명확하게 규명될 수 있도록 국방부에서 재수사 하라"고 권고 했다.
 
국민권익위는 윤 소위 사건을 자체 조사한 결과 "국방부가 2001년 재조사를 했지만 유가족이 여전히 자살할 이유가 없다며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점, 당시 사고 현장에 윤 소위의 유서나 목격자가 없었던 점, 윤 소위에 대한 관계자들의 평판이 사고 당시와 재조사 때인 2001년이 상반되는 점, 2001년 재조사 때 평판을 보면 윤 소위가 하극상을 당했고 힐책하지 않는 중대장의 행위에 불만을 품고 자살했다는 결론이 납득되지 않는다"면서 "재수사를 통해 윤 소위의 사망사건을 다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걸정했다.
 
윤 소위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학군 19기로, 1981년 6월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윤 소위는 임관한지 50여일쯤 지난 그해 8월16일 새벽 오이도 부근 해안초소에서 순찰 근무 중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군부대는 “술에 취한 부하가 총으로 죽이겠다고 위협한 뒤 실제로 총알이 발사되는 하극상이 발생했는데, 중대장이 부하를 질책하지 않고 그냥 데리고 간 것에 불만을 품고 총기로 자살했다”고 밝혔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군 사법 경찰관의 보고서에는 '1981년 8월 16일 새벽 1시 30분경 해안 경계 초소에서 근무 중인 부사관 2명이 소주 2명을 나누어 마시다 순찰 중인 윤 소위에게 적발된 뒤 힐책을 받고 근무지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음. A부사관은 불만을 품고 윤 소위 뒤를 따라 가다 M16소총에 실탄을 장전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함. 옆에 있던 B부사관이 A부사관의 소총을 빼앗는 순간 공포탄 한 발이 발사됨’이라고 기록됐다. 
 
또  '윤 소위는 부하로부터 협박 받은 자신에게 아무런 위로의 말도 없었고 A, B부사관을 힐책도 하지 않는 중대장의 행동에 불만을 품고 고민하다 같은 날 새벽 4시35분경 아카시아 나무 중간부분에 개머리판을 밀착시키고 총구를 자신의 명치에 밀착해 자살함’이라고 적혀있다. 
 
이에 대해 유족들이 고인이 자살할 이유가 없고,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에도 의문이 있다며 이의를 제기해 2001년에 재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사망원인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자 유족들은 지난 3월 “군 복무를 마친 뒤 대기업에 입사가 예정되어 있었고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등 자살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윤 소위의 누명을 벗겨주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국민권익위에 고충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의 재조사 결과, 당시 사건 기록에는 여러 모순된 사항과 허점이 발견됐다. 우선, 사건 당일 작성된 보고서에는 “사입구(총알이 몸속으로 들어간 곳)가 0.4㎝, 사출구(총알이 몸을 뚫고 나온 곳)는 1㎝”라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 다음 날 작성된 사체검안서에는 “사입구는 0.8×0.8㎝의 원형, 사출구는 0.8×0.5㎝의 타원형”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또, 당일 보고서에는 “아카시아나무 지상으로부터 2.7m 높이에 개머리판을 대고, 지상으로부터 1.5m 진지 뚝 위에 서서 키 169㎝의 윤 소위가 명치에 총구를 대고 격발”이라고 기록돼 총탄이 수평 형태로 관통한 것’으로 묘사했으나, 사체검안서에는 “사입구는 명치 끝 상방 1㎝ 좌방 3㎝, 사출구는 요추 5번째 상방 15㎝ 중앙부에서 좌방 12cm”라고 기록되어 있어 총탄이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사선 형태로 몸을 관통한 것으로 기록됐다.
 
특히, 당일 보고서에는 윤 소위가 현장에서 즉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2001년 재조사 때 중대장과 전령의 진술조서에는 “소대장실에 왔을 때 사망”, “소대장실에 왔을 때까지 숨을 허덕이고”라고 기록돼 두 사실이 서로 모순됐다.
 
이 외에도 당시 군은 윤 소위의 자살 원인으로 “지휘 통솔력 부족, 부대 적응 미흡, 공포심, 평소 소심하고 내성적, 동료등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면회 및 서신 왕래 전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2001년 재조사 시 참고인 진술서에는 “군인정신 투철, 책임감이 강함”으로 기록돼 평판이 판이하게 달랐다. 중대장은 윤 소위를 “후송하지 않았다”고 진술했으나, 의무중대 선임하사와 중대 인사계는 “윤 소위의 시신을 대대에서 보았다”고 진술해 의견이 서로 엇갈렸다. 
 
자료 사진. 출처/픽사베이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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