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채명석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 “'초격차', 혁신 저항 극복해 성공”

"사람을 바꿔야 혁신 가능…과거 성공의 미련 아예 없애야"

2018-09-10 16:20

조회수 : 2,223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혁신으로 방향을 정했을 경우에는 사람을 교체해야 합니다. 이미 타성에 젖어있는 사람을 그대로 존치시킨 채 혁신에 성공한 예는 거의 없습니다.”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은 최근 발간한 저서 <초격차>에서 삼성전자가 한 단계 도약한 것은 개선에서 혁신을 통한 환골탈태의 과정, 특히 혁신에 대한 저항을 인적 쇄신으로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권 회장은 ‘초격차’를 “단순히 시장의 파워나 상대적 순위가 아닌, 비교 불가한 절대적 기술 우위와 끊임없는 혁신, 그에 걸맞은 구성원들의 격을 의미한다”고 규정했다. 핵심은 ‘혁신’이다. 초격차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주창한 ‘신경영’에서 확장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먼저 혁신을 현실에서 구현해낸 이는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그는 디지털 컨버전스에 걸맞게 프로세스 혁신을 달성함으로써 공룡 삼성전자를 빠른 조직으로 만들었다. 권 회장은 이를 사업으로 확장시켰다. 초일류 삼성전자 구현을 위해서는 주력인 반도체 사업에서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이 핵심이라고 봤다. 답은 혁신이었다.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삼성종합기술원 회장). 사진/삼성전자
 
2등 기업에 '무한절망'을 심어라
초격차 전략은 기업이 추진하는 기존 사업과 신규 사업 가운데에서도 ‘기존 사업’의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삼성전자도 적자를 냈다. 그해 권 회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익을 내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결론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끊임없는 노력과 개선으로 경쟁자를 조금 앞서는 방법만으로는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만 농사를 할 수 있는 천수답 형태 경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개선이 아닌 혁신을 통해 후발업체들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격차를 벌리자는 ‘초격차 전략’ 구상으로 이어졌다.
 
권 회장은 “‘조금이 아니라 아예 초격차를 만들어버리자’는 것이 우리들의 전략이었다”면서 “우리를 추격하던 2등 회사가 ‘더 이상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냥 2등에 만족하자’라고 할 때까지 기술적 격차를 벌려나가는 전략을 펼쳤다”고 말했다. 미국 IBM의 중흥을 이끈 루이스 V. 거스너 Jr. 전 회장이 “고통이 싫다면 유일한 해답은 그 고통을 경쟁자의 등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권 회장도 경쟁자에게 무한 절망을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떠나간 첫 애인은 빨리 잊어라
초격차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뿐만 아니라 연구개발의 목표와 방식, 제조라인의 운영과 시스템, 인프라, 일하는 방법, 조직문화 등 모든 것을 동시에 변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세계 1위를 하고 있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느냐”며 임직원들이 저항했다. 패스트 팔로워 시절 신경영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장들에게 이 회장이 티스푼을 집어던지면서까지 발상의 전환을 강조해야 했던 것처럼, 지시와 텍스트(서류)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는 수동적 임직원들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던 윤 부회장 때처럼, 삼성전자 내부에는 여전히 과거에 이룩했던 성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혁신 거부증이 팽배했다.
 
이에 권 회장은 직원들에게 농담 삼아 “떠나간 첫 애인은 빨리 잊어라. 괜히 기억하고 있다가는 지금 마누라에게 찍힌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이 회장의 주문과 사실상 맥이 같다. 혁신을 위해서라면 권 회장은 실적이 지지부진한 한 개의 부서나 프로젝트를 없앨 때는 아예 ‘씨를 말린다’는 각오로 철저하게 실행에 옮겼다. 경험 많고 유능한 인재들을 다른 부서에 배치하며 전체 반도체 제조라인 구조를 재구축했다. 그러자 직원들이 기존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각도로 생각하고 일하고 성과를 냈다. 개선이 아닌 혁신을 비로소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경영’에 반한 ‘톱다운’ 목표 설정
조직 개편을 마친 뒤 권 회장은 개선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했지만, 혁신을 통해서는 이뤄낼 수 있는 업무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권 회장은 그동안 신경영의 최대 성과로 여기는 ‘바텀업(Bottom-up)’ 대신 ‘톱다운(Top-down)’ 방법을 사용했다. 권 회장은 “목표 설정을 상향식이 아닌 하향식으로 정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과감한 신기술과 신공정 도입, 새로운 개념의 설계를 시도하도록 했다. 위험 요인을 미리 파악하여 검토하고 준비하는 것도 개발 혁신의 일환이 되는 것”이라면서 “이를 통해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끝으로 “초격차란 규모나 자본에 의해 그 실현 가능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감한 혁신을 향한 리더의 의지, 구성원의 주도적 실천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면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히 실행에 옮겨 자신만의 ‘격’을 만들어가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한편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역사와 전략을 조명한 <초격차>는 출간 3시간 만에 초판 5000부가 완판되는 등 권오현 신드롬을 낳고 있다. 반도체와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권 회장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대표이사 및 DS부문장에서 물러나, 후배 양성을 목표로 삼성종합기술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 채명석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