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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영

중독

2018-08-31 11:26

조회수 :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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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손맛이 좋다. 맛의 고장 전남에서 할머니의 대를 이어 식당을 운영하신 어머니는 처음 찾는 손님들 대부분을 단골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나의 자취경력이 5년쯤 지나고, 온갖 볶음밥 요리가 신의 경지에 이를 쯤. 갑자기 어머니의 김치찌개가 미치도록 먹어져 어머니께 전화로 비법전수를 청했다.
“소금 조금, 마늘 조금, 다시다 조금, 미원 조금.”
고개가 갸우뚱 했다. 다시다? 미원? 음식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어머니의 말씀이니 그러려니 했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김치찌개에 성공하고 얼마 뒤 오징어덮밥에 도전하기 앞서 다시 어머니께 물었다.
“간장 조금, 마늘 조금, 다시다 조금, 미원 조금.”
어머니의 조리법에는 늘 다시다와 미원이 들어가 있었다.
 
인터넷의 발달은 블로그에서 다시마와 멸치육수의 존재를 알게 해줬다. 그간 억울하게도 다시다에 중독되어야 했던 나는 어머니께 왜 다시마와 멸치로 국물을 내지 않는지 물었다. “번거롭고 귀찮아. 어쨌든 맛있잖니.” 25년간 나도 모르게 MSG에 중독돼야 했던 이유는 꽤나 명쾌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이유가 됐다. 마법의 스프가루들은 미숙한 나의 요리를 결론적으로 꽤나 그럴싸하게 만들어줬다. 전라도의 손맛이 3대째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2년 뒤. 친한 누나의 집에 놀러갈 일이 있었다. 누나는 밥상에 된장국을 내왔다. 국물이... 끝내줬다. 텁텁하지 않은 시원한 느낌. 다시마와 멸치육수, 그리고 바지락을 섰다던 된장국은 내 미각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줬다. “귀찮지 않아?”라는 나의 물음에 “그렇게 끓이는 게 맞는 건데 왜?” 우문현답이었다. 이제 요리 좀 한다고 으스대던 나는 결과만 생각한 탓에 과정의 중요성을 잊고 있었다. 간단한 MSG를 찬양하던 내가 결과주의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패배감을 안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 다시마와 멸치 한 봉지를 샀다.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시 되곤 한다. 다시다 팍팍 뿌려도 장사만 잘되면 그만이고 주입식 교육이라도 서울대만 가면 장땡이다. 남의 아이디어를 훔치 승진하는 도둑놈 앞에서는 당한 사람이 바보이며 이를 뽑더라도 군대를 안가면 그만이다. 이렇듯 현실과 연관되는 결과는 우리에게 면죄부를 내려줬다. 그리나 그 생략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버리곤 한다. 양심이 결여된 결과. 결과주의의 중독은 MSG 중독의 그것보다 무서운 일이다.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테니스를 치는 사람보다 테니스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우승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이를 ‘결과주의의 역설’이라고 한다. 간단하고 쉬운 방법으로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중시하는 요즘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과정은 결과와 함께 경험을 가져온다. 획일화 되는 방법과 결과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답은 과정을 통해 얻는 경험, 그리고 이를 통한 발전에 있다. 그런 경건한 마음으로 나는 다시다와 멸치육수를 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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