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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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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인터뷰) ‘공작’ 윤종빈 감독 “배우 윤종빈은 이제 은퇴합니다”

“스파이 본질은 ‘드러나지 않는 것’…액션 필요하지 않았다”

2018-08-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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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2005년 겨울 즈음이다. 충무로가 들썩였다. 한 학생의 대학교 졸업 작품에 영화인들이 경악했다. 이 학생 작품은 그해 부산국제영화제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세계 3대 영화제인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도 공식 초청됐다. 학생 졸업 작품으론 유일하게 정규 배급을 타게 된 진귀한 기록도 갖고 있다. 윤종빈 감독의 ‘용서 받지 못한 자’이다. 배우 하정우의 데뷔작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라도 잊지 못할 캐릭터가 있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허지훈 이병’이다. 꺼벙한 눈빛과 어리바리한 말투와 행동은 연기와 실제의 경계선을 허무는 느낌이었다. 당시 ‘허지훈 이병’을 연기한 배우는 윤종빈. 바로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그 감독이다. 그리고 그는 13년이 지난 현재 충무로 최고의 흥행술사 ‘윤종빈 감독’이 됐다. 그가 ‘공작’을 들고 2018년 여름 극장가를 뒤집고 있다.
 
지난 8일 개봉한 ‘공작’은 지난 5월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개된 버전과는 조금 다르다. 당시 솔직한 평가는 ‘지루하다’는 반응이 의외로 많았다고. 윤 감독 역시 이 부분에 집중했다. 물론 상영 시간이 심야였고, 특별한 액션 장면이 없는 스파이 장르 영화란 점은 ‘지루하다’는 평가를 이끌어 낼 만도 했다. 그는 다른 조건은 둘째고 당시 영화제에서 전해 나온 반응이 집중했다.
 
윤종빈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내가 의도했던 반응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나와서 놀랐었죠. 그래서 ‘원인이 뭘까’하고 다시 돌려 봤어요. 정말 수도 없이 봤지만 볼 때 마다 다른 지점이 보이더라고요. 사실 CG부분도 조금 완성도가 떨어지는 지점이 몇 개 보였고, 또 찜찜했던 지점도 있었어요. 이해도나 몰입도가 떨어지는 대사들이었죠. 사람이 이해가 안되면 몰입이 안 되는 것이고. 결국 칸에 다녀온 뒤 과감하게 찜찜했던 대사를 좀 드러냈죠. 황정민 선배 내레이션도 다시 녹음하고.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뭔가 조금 타이트한 느낌은 있단 느낌이 들어요.”
 
사실 이 영화가 기획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던 점은 두 가지였다. 먼저 첫 번째가 액션이 없는 액션 영화란 점이다. 주인공 ‘흑금성’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은 이 영화 속 액션을 가리켜 ‘구강 액션’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이 주고 받는 대사가 바로 액션의 동선이고 형태였다. 윤 감독 역시 현장 디렉션에서 배우들에게 ‘액션을 하는 것처럼 대사를 구사해 달라’고 요청했었다고.
 
“본질적으로 총을 쏘고 누군가를 때리고 타격하는 액션은 그 당사자가 드러나게 되죠. 그러면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하는 스파이가 아니잖아요(웃음). 처음부터 이 영화를 만들자고 했던 의도가 얘기의 재미와 매력이었어요. 그 다음이 스파이 장르의 본질이었고. 이 영화에는 처음부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액션 자체가 무의미해 보였어요. 대본상에서 액션을 느낄 수 있는 장면도 있었어요. 촬영 해 놓고 보니 자연스럽지 못하더라고요. 결국 걷어 냈죠.”
 
윤종빈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두 번째는 실화였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가장 놀라운 점은 ‘공작’의 거의 모든 큰 맥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존 인물도 아직 살아 있다. 그는 다른 영화를 준비하던 중 ‘흑금성’ 사건을 접하고 경악했다고 한다. 그저 이 영화를 무조건 해야한다는 생각에 꽂히게 됐다고. 당시 기획하고 취재를 하던 아이템은 이후 차기작으로 밀려나게 됐다. 그렇게 ‘공작’은 윤종빈의 손에 잡히게 됐다.
 
“시기 상으론 아마도 ‘군도’ 촬영하고 ‘검사외전’ 제작할 시기쯤에 ‘흑금성’ 사건을 접하게 됐어요. 놀라웠죠. 중앙정보부 관련 얘기를 만들려고 취재를 하던 중 신동아 기사에서 보게 됐어요. 그 이후에 집중적으로 파헤쳐 봤어요. 대한민국이 북한을 상대로 이뤄낸 수백 건의 공작이 있었음을 알게 됐죠. ‘흑금성’ 사건은 대표적인 성공적 케이스였어요. 그런데 웃긴 건 공작은 드러나면 공작이 아니잖아요. 그게 더 희한했죠. ‘이게 뭐지?’란 궁금증에서 출발해 이 결과물이 나온 거죠.”
 
준비 과정이야 실제 인물인 박모씨와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 됐다. 하지만 현재는 출소했지만 당시에는 수감 중이던 박씨가 윤 감독의 만남을 거절했다. 자신과 만나게 되면 ‘윗선’으로 보고가 올라가 윤 감독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이유였다. 결국 제작사 관계자와 박씨의 가족이 함께 박씨를 면회하고 서신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게 됐다. 물론 그 외에 여러 북한 자료 및 다른 자료들도 윤 감독의 손에 들어오게 됐다.
 
윤종빈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 뒤 북한 관련 서적과 영상 등은 거의 다 본 것 같아요. 케이블 방송에서 하는 탈북자 분들이 나와서 하는 토크쇼 방송도 유료 결제로 수십편을 다 봤어요(웃음). 우선 상충되는 주장을 체크해야 하니까요. 저희 영화에 자문을 해주시던 북한 보위부 출신 탈북자 분에게도 도움을 많이 받았죠. 인터넷에서 북한 글도 거의 다 봤어요. 진짜 너무 많이 봤어요. 하하하.”
 
‘공작’을 본 관객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투박한 느낌의 사자성어 한 마디다. 바로 ‘호연지기’(浩然之氣). 영화에선 주인공 ‘흑금성’과 ‘리명운’ 두 사람의 관계와 코드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이자 단서다. 다소 옛스럽게 다가온다. 북한에서 실제 사용하는 단어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컸다. 현재 대한민국에선 주로 쓰는 표현이 아니기에 더욱 흥미를 자극시키기도 했다. 윤 감독이 이 단어를 넣은 이유도 관객 들에겐 궁금한 지점 중 하나가 될 듯 하다.
 
“실제 ‘흑금성’인 박 선생님이 수감 중 내가 보내 온 편지에 북한 사람들이 자신을 ‘호연지기 넘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고 하셨죠. 그동안 북한으로 넘어가 공작을 한 실제 스파이는 엄청나게 많아요. 하지만 거의 대부분 실패를 한 게 모두가 그들에게 맞춰주며 따라갔기 때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반면 ‘흑금성’ 공작이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공개된 것은 박 선생님이 원칙과 전략을 세우고 그에 따라서만 행동을 하셨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보는 관점에 따라선 막무가내로 보일 수도 있는데, 오히려 ‘이 사람 뭐지?’란 느낌의 호감을 얻게 된 계기가 아닐까 여겨져요.”
 
윤종빈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두 주인공 황정민과 이성민이 꼽은 가장 힘들었던 촬영은 중국 ‘고려관’ 장면이었다. 당시를 회상한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테이블 아래에서 칼을 휘두르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서로의 속내를 들키지 않아야 하지만 서로에게 자신의 호감을 느끼게 해야 했던 장면이다. 사실상 영화 속 ‘공작’의 시작과도 같은 장면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했던 부분이다. 윤 감독은 당시 장면 촬영을 회상했다.
 
“내가 참 두 배우를 힘들게 했구나 싶어요. 정민 선배에겐 관객들이 영화 중반 이후까지 ‘흑금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으면 좋겠다’고 주문했었어요. 성민 선배에게도 ‘흑금성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고요. 그래서 ‘고려관’ 장면을 두 선배가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기도 해요. 모니터로 두 분 중 한 분의 눈동자만 돌아가도 ‘NG에요’라고 짤랐으니(웃음) 앉아서 대사로만 정보를 주고 받고 감정을 주고 받으니 죽을 맛이었을 거에요. 죄송하죠. 하하하.”
 
‘공작’을 보면 의외의 지점에서 웃음이 터지는 장면도 여러 군데 있다. 특히 배우들은 가장 긴장을 했지만 관객들은 폭소를 터트리는 장면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의 대면이었다. 그 장면에서 관객들의 웃음보를 터트리는 요소는 앙증맞은 강아지 한 마리였다. 이성민과 황정민 모두 그 장면을 윤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 장면 역시 실제 고증에 따른 연출이었다.
 
윤종빈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 장면을 제가 의도적으로 웃음 코드로 넣은 것으로 아는 분들이 꽤 있어요. 사실 그런 지점도 없지 않은 데(웃음). 탈북 시인이 쓴 회고록을 한 번 봤는데.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는 모습이 나와요. 수백명이 있는 큰 공간에서 말티즈 한 마리가 쪼르륵 달려와서 자신의 발을 핥더라는 얘기가 있었죠.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와서 이건 한 번 해봐야 겠다라고 생각하고 넣었는데. 어휴 고생 좀 했습니다(웃음). 비용도 사실 만만치 않았어요. 하하하.”
 
이외에 ‘공작’ 속에는 특유의 북한 풍경이나 디테일 등이 소름 돋게 그려졌다. 일부 장면에선 영화의 자문을 담당했던 군인 출신 탈북자의 생생한 조언도 한 몫 했다고.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입됐고 그에 따른 고증과 연출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차기작과 함께 앞으로 이어질 계획 그리고 흥미로운 ‘배우 윤종빈’에 대한 또 다른 도전 여부 등 여러가지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정말 많은 북한 관련 자료를 다 들여다 봤어요. 보조 출연자 분들은 하나하나 얼굴까지 북한 사람 비슷하게 생긴 분들로 선별해 뽑았고요. 주변에서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 다행이죠. 다음 작품은 다시 남성적인 얘기로 돌아가지 않을까 여겨져요. 준비하는 게 몇 개 있는데 모르죠(웃음). 그리고 배우 윤종빈은 이제 은퇴합니다. 하하하. 간혹 카메오로 출연했고 ‘용서 받지 못한 자’에선 어쩔 수 없이 제가 했는데. 이젠 연출 하나만 제대로 좀 해보려고요(웃음).”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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