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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의 예술가 인터뷰는 '극한 직업'

(잠깐, 독서)'스미스 테이프:록이 찬란했던 날들'

2018-07-12 16:05

조회수 :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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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책읽어주는기자)는 미국 영화 감독이자 언론인이었던 하워드 스미스의 '스미스 테이프'란 책이었다. 책의 묘미는 스미스와 만난 사람들의 재치 있는 입담이었는데, 마치 영화를 보듯 눈 앞에서 생생히 재생되는 듯 했다. 지면 기사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이 코너에서 다뤄보기로 한다.

특정 시대에 대한 동경이 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시절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50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나 뉴욕으로 가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음악과 영화, 예술이 세상과 소통하며 영향을 주고 받던, 찬란한 시대' 책은 50년 묵은 '타임캡슐'을 열듯, 문화아이콘 51명의 인터뷰를 풀어 놓고 있다. 그때 그 곳만의 풍경과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국내외 음악가들 인터뷰를 틈나는 대로 해오고 있는 나로서는 스미스의 질문 자체를 읽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겠다 싶기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스미스는 내게 '마치 지금 당장 존 레논을 만나러 갈 건데, 너가 질문지를 구성한다면 어떻게 할래?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질 거야. 근데 보이지? 엄청 힘든 거!' 라는 듯 보였다.


(짐 모리슨(오른쪽)과 도어스 멤버들. 사진/ 위키피디아)

사이키델릭 밴드였던 도어스의 프론트맨 짐 모리슨은 1969년 11월 스미스와 인터뷰한다. 알코올과 약물 과용으로 그룹 해산 직전까지 몰고 갔던 그는 이야기보단 시비조로 불편함을 조장하고 있다. 라디오 내용을 그대로 실은 것이라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간 신경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Smith: 몇몇 비평가들은 (도어스) 음악에 대해 쓴소리를 해왔어요. 당신들 음악이 처음엔 혁명적이었지만 갈수록 톱40곡도 많아지고 달콤해졌다고 말이죠. 그런 말들에 대해 알고 있었나요?

Jim Morrison: 그런 견해에 동의할 수 없군요. 우리 음악은 점점 나아졌다고 생각하니까요. 갈수록 더 안정되고 더 정교해졌지요. 음악으로 보나 가사로 보나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케케묵은 뻔한 소리를 반복하고 있는데요. 그거 정말 진부한 이야기 아닌가요? 세상에 그 어떤 사람이 24시간 내내 혁명가를 듣길 원한답니까?

Smith: 그럼 수입에 대해서 물어보죠. 도어스는 충분히 많은 돈을 벌었나요?
Jim Morrison: 그럼요. 어느 레스토랑이든 들어가서 원하는 어떤 메뉴든 시킬 수 있을 정도로요. 더 이상 50센트짜리 싸구려 영화관은 찾지 않아도 될 만큼 말이죠.

(중략)

Smith: (*마이애미 사건에 대한) 체포영장은 발부되었나요?
Jim Morrison: 그래요 당신은 날 짜증나게 하는군요. 지금 LA엔 비가 내리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나 떠들고 있을 건가요. 좀 다른 이야기, 밝은 이야기를 해보자고요. 
*마이애미 공연에서 술에 만취한 모리슨이 무대 위에서 쓸데 없이 장황한 말들을 늘어놓은 뒤, 부적절한 노출을 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한 사건

Smith:적절한 질문이 뭔지 알기가 참 힘들군요. 내가 뭘 물어보면 좋겠어요?


믹 재거. 사진/위키피디아

이 정도면 스미스는 극한 직업을 했던 셈이었다. 롤링스톤스 믹 재거와의 인터뷰도 그에 못지 않게 시작부터 산만하다.

Smith: 다시 투어를 하기까지 왜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렸나요?
Mick Jagger: 로니(기타리스트 론 우드), 닥치라고! 그렇게 뒤에서 이빨까지 말고. 문이나 좀 닫고 오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아, 그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일단 말을 뱉어 놓은 다음이라 하게 되었죠. 

앤디 워홀은 1969년 4월 스미스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바로 직전해에 밸러스 솔라나스란 여성에게 총격을 받은 그는 임상 죽음 판정을 받았다가 겨우 살아난 상태였다. 미술가였던 그는 당시 파트너였던 폴 모리세이와 함께 영화 제작도 시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Smith: 이 시점까지 몇 편의 영화를 찍었습니까?
Andy Warhol: 올해엔 한 편도 만들지 못했죠. 

Smith: 이유가 뭐죠?
Andy Warhol: 글쎄요. (총격 부상으로) 1년을 날려버렸으니까요.

(중략)

Smith: 그래요, 당신은 참 운이 좋았어요.
Andy Warhol: 음, 수술 흉터가 있었는데 새로운 흉터를 몇 개 추가했죠.
Paul Morrissey: 의사들은 앤디의 환부를 다시 열어본다고 하네요.

Smith: 정말인가요?
Andy Warhol: 어떤 상처가 가장 아픈지는 묻지는 말아주세요. 참 웃긴 상황이네요.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은 1970년 10월에 인터뷰에 참여했다. 당시 그는 새 밴드 '데릭 앤드 더 도미노스'를 이끌고 있었고, 밴드의 데뷔 앨범 홍보를 위해 미국 투어에 돌입하던 차였다. 

Smith: 당신이 연주했던 모든 그룹의 리스트를 만들어보았어요. 와, 끝도 없더군요. 로드아일랜드레드, 루스터스, 야드버즈, 존 메이올 앤드 더 블루스브레이커스 등등.
Eric Clapton: 이미 하나를 빼먹었어요. 루스터스 다음에 케이시 존스 앤드 디 엔지니어스 라는 밴드를 했었죠.

Smith: 그 밴드들이 깨진 이유는 뭔가요? 당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Eric Clapton: 그에 만족하지 못해서였죠. 자꾸 다른 곳으로 옮겨 가려는 열망이 강했어요. 그런 게 다 세상의 이치겠지요. 몸담고 있던 그룹에 만족하지 못했거나, 팀에 대한 자신의 기여도에 만족하지 못해서 그랬던 거예요. 그래서 그룹이 깨진 겁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죠.

(중략)

Smith: 지금 데릭 앤드 더 도미노스는 분위기가 어떤가요?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하나요?
Eric Clapton: 그럼요. 정말로요. 

너무도 자신있던 에릭의 대답을 당시 사람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믿는 쪽으로 기울었겠으나, 밴드는 그 다음해 라이브 앨범만 한 차례 더 발매하고 결국 해체 수순을 밟고 만다.

여기에는 자세히 풀지 않았으나 인터뷰 중에는 스미스에게 "아침은 뭐 먹었냐, 배는 안고프냐?"고 묻기도 하고, 신경질 부리는 건 자신 만의 인디언 식 조크라며 너스레를 떠는 이들도 있다.  어떻게든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 내야 하는 위치에 스미스는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돌발적이고 좌충우돌적 답변들이 스미스로선 쉽지 않았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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