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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가족에 관한 '소설 음악'…'홍혜림'과 나눈 노스탤지어

2018-06-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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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카페 1막1장. 연극 배우인 카페 주인이 모은 티켓들이 검정벽에 붙어 있다.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 기자
 
<2004년 의정부 음악극 축제 1층 C열 128번>. <2007년 역적어멈과 그의 자식들 A석 1층 나구열>. 노란 조명이 비추는 검은 벽이 어여쁘게 산란했다. 20여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한 연극 티켓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던 탓이다. 과거 어느 시점 제법 아름다웠을 이야기들이 그 공간 안에서 한꺼번에 흐르고 있었다.
 
띠링.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싱어송라이터 홍혜림이 들어와 맑은 소리로 묻는다. “안녕하세요! 여기, 생각보다 많이 좁죠?”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카페 1막1장. 이 곳에서 그는 오는 23일 라이브 공연을 한다. 최근 발매된 EP 앨범 ‘어 웨이 홈(A Way Home)’을 밴드 사운드로 들려주기 위해서다. 지난 19일 다섯 평 남짓해 보이는 이 작은 공간에서 만난 그는 “소설처럼 써내려 간 음악들을 연극하 듯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공연에 대한 설렘을 드러냈다.
 
“검은 벽이라 그런지 연극을 하는 느낌일 것 같아요. 제 새 음반이 마침 ‘노스탤지어’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제 어린 시절, 혹은 제가 태어나기 이전의 부모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냈어요. 관객 여러분과 마주 보고 두런 두런 이야기하는 느낌의 공연을 할까 해요.”
 
인터뷰 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홍혜림.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 기자
 
2008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그는 10년 째 음악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2012년 1집 ‘애즈 어 플라워(As a Flower)’로 데뷔했고 초창기에는 재즈 팝적인 느낌이 강한 음악을 주로 만들었다. ‘뻔하지 않은’ 코드 덕에 그의 음악을 어렵게 느낀 대중들도 적진 않았다.
 
“실제로 어렵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저도 그걸 잘 알고 있고요. 그래도 저는 그런 독특한 화성 진행을 좋아하는 편이고, 그것이 저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영화 같은 데서 예상치 못한 장면이나 대화가 나오면 ‘뭐야, 뭐야’ 하면서 보게 되잖아요? 예상을 엎는 코드나 멜로디를 저는 그렇게 느끼는 편인 것 같아요.”
 
지난해 낸 2집 ‘화가새’부터는 재즈 보다는 포크적 색채가 부각되는 방향으로 변화를 꾀했다. 화성적인 재미에 집중됐던 힘을 잠시 빼고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런 장르에 닿아 있었다. 순하고 맑은 음색이 나무와 새, 공원을 터치하듯 그리는, 편안한 서정의 노래가 됐다.
 
“세상을 볼 때 이미지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그때부터 장면의 순간, 순간을 이야기로 만들었고 음악으로 표현하게 된 것 같아요. 당시 제 일상 이야기들을 글로 적기도 했는데요. 앨범에 수필 형식으로 함께 수록했어요. 초심자의 마음으로 쓴 글이라 음악과 대등하게 비교하긴 쉽지 않지만 순간을 포착하는 재료라는 데선 공통성이 분명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 8일 발매된 EP 앨범 ‘어 웨이 홈(A Way Home)’.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 기자
 
지난 8일 발매된 ‘어 웨이 홈(A Way Home)’은 이야기의 흐름이 보다 진화되고 깊어졌다. 스스로를 돌아보던 와중에 어린 시절과 집, 부모님, 가족에 관한 단어를 떠올리게 됐고 소설처럼 전개시켜 봤다. 지난해 낸 2집이 ‘한 폭의 그림’이라면 이번 앨범은 ‘한 권의 소설’인 셈이다.
 
앨범을 여는 첫 곡 ‘가족사진’부터 아버지는 3인칭으로 그려진다. ‘어느 날 문득 그는 깨달았어/변변한 가족사진 하나 없음을/사진 한 장이 없어서 마음이/그토록 허전할 수 있다는 것도(‘가족사진’ 가사 중 일부)’
 
“저희 아버지께서도 여느 아버지들처럼 다정다감하지만은 않으세요. 그런데 어느 날 친척들을 다 부르시더니 사진을 찍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아버지는 무슨 마음이셨을까, 왜 그러셨을까 되뇌게 되더라고요. ‘가족사진’은 물론 그때의 아버지 모습에서 시작된 곡이지만 제 상상도 일정 부분 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앨범 나온 뒤에 아버지께서 딱 알아 보시더라고요. 제가 꽤 잘 맞췄나 보다 생각했어요.”
 
싱어송라이터 홍혜림.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 기자
 
홍혜림의 ‘노스탤지어’는 20분에 달하는 음반 러닝타임 내내 흘러간다. 타이틀 곡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집에 관한 슬프고 행복했던 기억이 공존하는 이율배반적 감정을 따뜻하게 풀어낸 노래다. 다른 수록곡 ‘밤 비행기에서’는 홀로 제주도를 여행하고 집으로 오면서 든 상념을 두런, 두런 말한다. 이야기식으로 진행된 화법은 지난해부터 즐겁게 읽기 시작한 여러 소설 책의 영향이었다.
 
“원래는 어차피 허구이고 거기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소설을 잘 읽지 않았는데요. 작년부터 서머싯 모엄의 책을 계기로 소설 매력에 푹 빠지기 시작했어요.”
 
“소설은 저를 비춰주는 예술 작품이더라고요. 다양한 사람과 사건이 나오는데 잘 보면 내 삶에 있던 순간들이죠. ‘인간의 굴레에서’, ‘페인티드 베일’이란 책을 특히 재밌게 읽었어요.”
 
EP 앨범 'A Way Home'에는 그의 부모님이 찍거나 찍힌 사진들이 담겨 있다.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 기자
 
인터뷰 도중 보여준 앨범 패키지에서도 노스탤지어적 감각이 고스란히 빛나고 있었다. 총 5장의 앨범 사진은 커버 앞에 바꿔 낄 수 있도록 제작됐다. 대체로 그가 태어나기도 전이나 어린 시절 부모님이 나왔거나 찍으신 사진들이다.
 
“집에 두꺼운 가죽 사진앨범이 10개나 되는데요. 수백장의 사진을 살펴보면서 고민했어요. 구도적으로 아름다운 사진들, 그러면서도 향수가 느껴지는 사진들을 고르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앨범을 살피면서는 가족, 집에 대한 생각도 실제로 많이 했던 것 같고요. 어릴 때는 가족에게 못 받은 것에 대한 생각만 많이 했는데 이제 30대에 들어서다 보니 받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가슴으로 깨닫고 있어요.”
 
전작들이 대체로 피아노와 보컬로만 이뤄진 곡들이었다면 이번에는 밴드 사운드가 중심을 이룬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은 장르가 포크 음악인 만큼 묵직한 소리를 위해 기타와 드럼, 콘트라베이스를 추가했다. 앞으로도 악기 편성을 바꿀 여지가 있냐고 묻자 “어울리는 음악의 길을 향해 계속해서 걸어온 것 같다”며 “앞으로의 길도 편하고 즐거운 방향이라면 언제든 바뀔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카페 1막1장. 이 곳에서 그는 오는 23일 라이브 공연을 한다.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 기자
 
오는 23일에는 이 곳에서 밴드 셋으로 라이브를 할 예정이다. 이번 신곡들을 위주로 하되, 전작 앨범에 수록된 곡들도 연주하고 노래한다. 1년 넘게 배운 기타를 들고 깜짝 연주도 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음악을 특정 여행지에 빗대 달라고 하니, ‘친구의 고향집’이란 답이 돌아온다. 왜 하필 친구란 수식어가 필요했을까.
 
“친구 집에 가면 조금 낯선데도 되게 좋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잖아요. ‘아, 여기는 이렇게 사는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듯 새로우면서도 따뜻한…그런 느낌이요. 제 음악이 딱 그런 것 같아요. 그런 두 가지 느낌이 공존하는… 그런 느낌으로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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