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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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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독서)'고학력' 4인의 밴드 퀸(Queen)

2018-06-18 10:20

조회수 : 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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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책읽어주는기자)'머큐리 마법' 깃든 퀸의 음악…'전설'이 되다

그 못다한 이야기를 (잠깐, 독서) 코너에서 다뤄본다. 

서평에서는 프레디 머큐리의 역할을 비중있게 소개했지만
사실 '퀸'을 지금의 전설로 만들기까지는 다른 멤버들의 공로도 굉장히 컸다.

일단 머큐리를 포함한 4인은 모두 고학력자였으며 
밴드에 최선의 노력을 쏟아붓기도 했지만 개개인으로 돌아 서서는 각자의 인생 목표도 충실히 설계하는 멋쟁이들이었다.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천체 물리학 박사 과정을 밟던 수재였다. 퀸 활동 중에도 틈틈이 학업을 놓지 않았고 30년 만에 완성한 논문으로 2007년 천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따낸다. 2016년에는 소행성 17473에 '프레디 머큐리'의 이름을 붙이면서 세상에 그가 남긴 영향을 기리기도 했다.

*15살 때 고급기타를 살 금전적 여유가 없어 아버지와 기타를 직접 만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200년 이상 된 벽난로용 마호가니 나무와 단단한 오크 나무, 오토바이용 밸브 스프링, 뜨개질용 바늘을 사용해 전기 기술자인 아버지와 함께 세상에 하나 뿐인 기타를 만들었다. 제작 비용 8파운드. 우리돈 1만1700원 정도. 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트럼본과 피콜로 소리를, 때로는 신시사이저 소리를 내는 특이한 '벽난로 기타'로 소개되고 있다.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런던 호스피털 메디컬 칼리지에서 치의학을 전공하던 영재였다. 하지만 치의학 중 해부하는 과정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고 후에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식물학으로 전공을 바꿔 졸업한다. 표현력이 풍부한 드러밍과 허스키한 보컬은 머큐리의 미성과 어울려 '퀸'의 정체성을 만드는 중심축으로 작용했다.

*테일러와 메이는 퀸 결성 전에 '스마일(Smile)'이란 밴드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었다. 보컬 팀 스타펠을 영입하며 핑크 플로이드의 오프닝 무대, 런던 주점 등을 순회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1969년 싱글 한 장을 냈지만 스타펠이 탈퇴했고 이후 프레디 머큐리가 가입하면서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게 된다. 메이는 치의대생이었던 테일러가 스네어 드럼을 튜닝하는 모션을 본 순간 "정말 프로처럼 보였다"고 후에 회상했다고 한다.

멤버 중 막내였던 베이시스트 존 디콘은 10대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전자공학도였다. 전공 공부를 위해 런던으로 이주했으며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퀸의 멤버들과 나이트에서 만나 친해졌다. 전자공학도였던 만큼 전자기기, 다른 악기를 다루는 데 능숙했고 무대에서 메이의 기타에 문제가 발생하면 즉석에서 직접 솔로 연주를 할 수 있는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이들의 재능을 하나로 엮은 프레디 머큐리는 미술학도였다. 롤링스톤스의 론 우드, 더 후의 피트 타운센드 등이 다닌 일링예술대학에서 그래픽 미술 디자인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퀸의 로고부터 비주얼과 음악 디자인까지 모두 도맡는다. 멤버들이 개인이 가진 장점을 발현할 수 있도록 했으며 그 결과물은 '퀸'이란 이름의 음악들로 탄생하게 됐다.

"기타리스트 브라이언이 천착했던 리프 중심의 하드록 플랫폼에 터 잡아 보컬리스트 프레디는 선율적인 발라드 등을, 드러머 로저는 팝 성향의 로큰롤 분야를 지향하였다. 존은 베이시스트답게 흑인 음악적인 소울 음악으로 관심 영역을 확장하였다. 네 명의 너무도 다른 개성이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엄청나게 큰 창조적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였다."-(Queen 보헤미안에서 천국으로, 저자 정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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