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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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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한, 밴드유랑)무작정 커트 코베인을 따라했던 20대

2018-06-14 15:04

조회수 :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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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불혹을 지난 싱어송라이터 이지형은 20대 초반의 '청춘'이던 시절을 여전히 생생하고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1997년 밴드 'Weeper'로 활동했던 그는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에 심취해 있었다. 무대에서 기타를 부수거나 마이크를 야구 방망이로 때리면서 당시 홍대에선 '뜨거운 청춘의 징표'가 됐다. 머리도, 옷차림도, 가사도 '날 것' 그대로의 음악과 많이도 닮아 있었다. 당시의 기억을 묻자 쑥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기억 속 어딘가 폴더에 가지런히 저장돼 있다"며 웃는다.

"생생히 기억 나죠. 바닥을 굴러다닌 적도 있고 제가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저 스스로도 이해가 안돼요. 당시 커트 코베인을 따라 했던 건데 그런 행동들이 컨트롤 없이 그대로 표출이 된 거였죠. 법적으로는 성년이지만 인격과 내면은 완벽한 성인이라 볼 수 없었고요."

'자아'가 형성되는 과도기적 시기였다.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사회초년생이다 보니 여러 제약이 따랐다. 안정적인 가정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욕구가 음악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던 21살 언저리.

"이해 못할 분노는 가득했는데 대상이 없었어요. 정치, 사회적으로 부당한 것들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이 있던 것도 아니었거든요. 당시 MTV 속 록커들의 행동이 바닥에다 침뱉고 그런 거 였으니까 보고 여과 없이 따라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서는 집에 가선 또 '엄마 나 된장찌개 끓여주세요.' 이러고.. 어떻게 보면 진정성이 없는 음악이었고, 또 그냥 피 끓는대로 했던 음악이었던 것 같아요."

군대를 가고 전역을 한 99년부터는 기존의 얼터너티브 록에서 어쿠스틱한 포크 음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밴드 음악이 주류였던 시절이라 그의 포크 뮤직에 대한 관심은 싸늘했지만 그는 오히려 그 음악이 자신을 잘 표현하는 색깔이라 믿었다.

"너바나의 음악은 좋아했던 것 뿐이지 따라하기가 힘들었어요. 발성법이 동양인의 성대로는 억지로 찢으면서 내야하는 소리였거든요. 이렇게 혹사시키면서 음악을 해야하나 의문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시점에 기타 하나만 들고 비틀즈나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을 쳤는데 너무 좋았던 거죠. 아, 이런 색이 나와 잘 맞는 건가 생각이 들었고요. 그때부터 내가 맞는 듯한 옷을 입어보자, 고 다짐하게 됐어요."

'Weeper' 활동 당시 그를 환영하던 홍대 클럽주들은 그의 새 음악에 난색을 표했다. 당시는 밴드 음악이 홍대에서 주류였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초반에만 친분으로 몇번 무대에 세워주던 그들은 "왜 굳이 통기타를 들고 과거로 회귀하냐"며 돌아섰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음악적 신념을 20년째 올곧게 밀어부치고 있다.

"미국, 영국에서 잭 존슨, 존 메이어, 제이슨 므라즈 등이 뜨던 시점부터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기타를 든 싱어송라이터가 점차 핫해졌고 오늘날 '인디 팝'이란 장르로 주류가 됐고요. 대세 음악을 해야만 한다는 당시 선입견에 갇혔다면 오늘날 제 음악은 없었을 거에요."

"그때부터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혹시나 이지형의 음악을 모르는 분들이 있다면, 'Hello My Barista'라는 음악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가사가 없는 노래지만 카페의 복닥복닥한 경치를 그 만의 멜로디로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자신과 청춘이란 '원두'를 갈아넣은 그의 감성을 진하게 느껴볼 수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뉴스토마토 조은채 인턴기자가 함께 동행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함께 어떤 그림을 담을까 고민하고 고민한 결과물입니다. 저작권은 뉴스토마토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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