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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여론조사대상자 아니다" 기계음에 서러운 어르신들

2018-06-08 11:47

조회수 : 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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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6일 출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다 지방선거 후보들의 명함을 받으면 어떤 내용을 참고하는지 시민 몇 분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현충일 아침이라 한적했습니다.
 
당산역에서 국회의사당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 70대 할아버지 한 분을 인터뷰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할아버지가 “여론조사는 잘못된 거다. 우리들이 전화 받으면 나이 많다고 끊어버린다”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네 차례나 겪었다는 일은 이랬습니다. 집으로 걸려온 여론조사 전화에서 연령대를 묻는 질문에 응답하고 나면 “조사대상자가 아니다. 조사를 종료한다”며 전화가 끊어진다는 겁니다. 너무 화가 난 할아버지는 서울시와 영등포구 관계기관에 신고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돌아온 답변은 “선관위 확인 결과 위법이 아니다”라는 말 뿐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할아버지도 같은 일을 겪은 적이 있다고 거들었습니다. “늙었다고 우리 의견은 반영도 안하냐”면서요.
 
이날 기사를 마감한 뒤 여론조사기관에 직접 물어봤습니다. 할아버지가 겪은 일은 종종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쿼터아웃’ 때문. 여론조사 표본을 채집할 때에는 연령이 골고루 반영되도록 연령별 쿼터를 둡니다. ARS 조사에서 유선전화는 특정지역별 국번 뒤 4자리를 0~9까지 섞어서 랜덤으로 돌리는 방식을 사용하고, 휴대전화번호는 통신사에서 가상번호를 부여받아 전화를 돌립니다. 유선전화의 경우 어르신들의 응답률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젊은 층 쿼터를 채우기 위해 가상번호를 함께 사용하는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60대 이상 어르신들 쿼터가 가장 먼저 채워진다고 합니다. 무작위로 전화를 돌려 연결이 됐는데 이미 쿼터가 찬 연령의 어르신들이 전화를 받으면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없는 거죠. 이때 조사기관은 조사대상자가 아니라는 간단한 안내와 함께 통화를 종료합니다. 안내 문구는 조사기관별로 조금씩 달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은 조사 대상자가 아니거나 조사가 완료된 대상입니다. 조사를 중단하게 된 점 사과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선생님의 연령대는 할당이 완료되어 더이상 조사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기계음으로 듣기에는 조금 차가운 문구 같기도 합니다. 쿼터아웃이나 여론조사 표본 채집 방식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더욱 그렇겠죠.
 
여론조사기관들도 항의 전화를 종종 받는다고 합니다. 보통 1000샘플 중 300샘플 정도가 제외되기 때문에 조사거부 통보를 받은 응답자 수는 꽤 많은 편이죠. 한 번 진행할 때마다 많게는 10만 건씩 전화를 돌린다고 하는데요, 매 진행마다 어르신들의 항의 전화를 두 세 번씩은 받는다고 합니다. 불쾌함을 느꼈지만 직접 전화하지 않은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고른 표본 채집을 통한 공정한 여론조사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조금은 더 친절해도 될 것 같단 생각입니다. 조사는 ARS 기계음성으로 이뤄지지만 응답하는 이는 조사 대상이기 이전에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 시민이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오해가 커지면 어르신들이 여론조사를 신뢰하지 않는 문제도 생기겠죠.
 
마지막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설명을 듣기 위해 전화해봤습니다. 담당자가 연락을 주기로 하고 전화번호를 남겼는데요. 여심위의 답변을 듣고 글을 추가해보려 합니다. 또 한 차례의 전국 선거를 거친 만큼 좋은 대안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사진/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메인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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