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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 바뀐 로펌 영입시장)①고위 전관 대신 실무형 '스타플레이어' 뜬다

'병풍' 보다 실력 검증된 '일꾼' 선호…'전관예우 근절' 사회적 분위도 '한몫'

2018-05-1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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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영지·최기철 기자]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 몸값이 뒤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검찰총장 출신들 모시기에 열중했던 로펌들이 이제는 '한창 일 할'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상 법관이나 지청장 또는 지검 부장검사 이상 검사들을 영입하기 위해 품을 들이고 있다. 소장이나 의견서 대리인란에 이름만 올려 후배 법관이나 검사들에게 영향력을 줬던 '병풍' 보다는 실제로 법정에서 싸워 이기고, 기업 등에 대한 법률자문의 질을 높은 수임료 만큼이나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실력을 갖춘 중견 재조 경력자들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변화는 장기화 된 법률시장의 불황으로 인해 이전부터 서서히 시작된 것이지만, 최근에는 그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런 현상이 '전관예우 근절'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면서 본래 의미의 '전관'인 검사장과 법원장 이상 고위 재조 출신들은 갈 곳이 좁아졌다. 우리나라 로펌업계 상반기 영입 현황을 '빅6' 중심으로 살펴봤다(편집자주).
 
로펌으로 옮겨가는 판·검사들이 예전보다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로펌들 역시 ‘알짜’를 선호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법률시장 불황이 워낙 장기화 되다 보니 판·검사들이 개업을 꺼리지만, 로펌들도 예전처럼 ‘병풍’ 역할을 해 줄 고위 판·검사 출신 보다는 실제로 발로 뛰며 수익을 낼 수 있는 인재들만 영입하는 것이다. 그만큼 판·검사 출신들도 로펌 취업경쟁이 치열해 졌다.

상반기, '빅6' 로펌 영입 경력변호사 102명

<뉴스토마토>가 14일 이른바 '빅6'로 불리는 6대 대형로펌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태평양·광장·세종·율촌·화우) 경력변호사 영입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상반기 법원과 검찰에서 퇴직해 이른바 ‘빅6’ 로펌으로 간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총 102명 중 22명으로 전체의 21.5%에 머문다.
게다가, 예전 대형로펌의 전관영입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영입을 선호했던 법원장급이나 검사장급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대신 고등법원 판사와 지방법원 부장판사, 고검검사급 이하 검사 등의 영입이 눈에 띈다. 직급이 상대적으로 높지는 않았지만 실무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스타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린 판·검사 출신들의 몸값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실력과 전문성이 검증된 행정법원과 특허법원 출신 판사 기용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클라이언트 만족시킬 전문가 필요"

오랫동안 경력 변호사 채용 업무를 맡았던 한 대형로펌 대표 변호사는 "과거에는 대법관이나 검찰총장 등 고위 전관을 모시는 것이 세를 과시하거나 중요인재 영입에 유리했지만 이제 시장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송무를 비롯한 자문 등 법률서비스가 워낙 전문화·다양화 되다 보니 실제로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소장이나 의견서를 설득력 있게 쓸 수 있는 실무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한 중견로펌 대표도 “예전에야 대형 로펌들이 법원장이나 검사장급 전관을 선호했지 이제는 로펌이 고위직 전관이 실무에서 빛을 발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제일 알고 있다”며 “그래서 대형로펌으로 가는 고위직 전관 수는 줄어들고 있고 법원과 검찰 내 요직을 맡았던 소수 엘리트 중심으로만 영입하고 있어 고위직 전관들의 입지가 작아졌다”고 분석했다.

"고위직 전관 감소는 자연적 수순"

서초동에 개업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약점을 지적하면서 취업 경쟁이 한층 치열해 졌음을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판·검사 등 전관 출신 변호사들의 활동범위는 송무 영역에 업무가 제한된다”며 “로펌 내부적으로 송무 분야 매출이 미미한 편이기 때문에 전관 출신을 줄이고 자문 등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는 경력 변호사들을 더 많이 영입하려고 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판·검사 출신이라고 해서 대형로펌 입사에 유리했던 과거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반면 일각에서는 개정된 공직자윤리법 시행으로 고위직 판검사들의 대형로펌 취업이 막히면서 로펌의 전관 영입이 감소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시각도 있다. 공직자윤리법 17조에 따라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법원장, 검사장 등 2급 이상 판검사 등 퇴직공직자는 퇴직 후 3년 동안 직무 관련성이 있는 법무법인 등으로 취업이 제한됐다.

"부정적 사회 시각 영향도"

이 외에 대한변호사협회 등 재야 법조계를 포함해 사회적으로 고위 전관출신들의 대형 로펌행 견제에서 더 나아가 변호사 개업 자체를 문제 삼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대형 로펌의 고위 전관 영입을 차단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빅6' 중 한 곳인 한 로펌 대표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팽배한 '전관예우'나 '로피아' 등 고위 전관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대한 고려도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모습. 김앤장은 2018년 상반기 경력 변호사 영입에서 판·검사 출신 10명만 선택했다. 과거 대법관이나 검사장 출신 이상을 우선 영입하던 관행을 벗어나 실력과 전문성을 갖춘 중견 재조 법조인들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다른 대형로펌에서도 뚜렷이 확인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영지·최기철 기자 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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