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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눈 가리는 사회) ①"지하철 점자 '오류 투성이'…집에선 TV도 못 켜"

"스마트폰 시대, 터치스크린은 최고의 적…시각장애인 살기 더 어려워져"

2018-05-14 06:00

조회수 : 9,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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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시각장애인은 눈 대신 점자 등을 이용해 정보를 얻고 있다. 당연히 시각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만큼 이들을 위한 점자 등이 대체정보로 제공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스마트폰은 물론 생활가전 대부분이 터치스크린 기기로 바뀌면서 간단한 조작도 쉽지 않다. 대중교통 이용은 더 어렵다. 점자표대로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뉴스토마토>는 현장취재를 통해 확인한 시각장애인 복지에 대한 현주소와 문제점, 대안에 대해 총 3회에 걸쳐 전한다(편집자주).
 
“시각장애인이 혼자 뭘 한다는게 어려운 세상이에요. 그러다보니 사회활동을 포기하고 집에만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자택에서 만난 지석봉(44)씨는 전맹으로 1급 시각장애를 갖고 있다. 9살 때부터 보행훈련을 배웠다는 지씨는 안마사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시각장애인단체에서 꽤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지씨조차 극히 제한된 생활반경 속에 살고 있다. 지씨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생활용품, 가전제품, 편의시설 등 일상생활에서 점자나 음성안내 등 기본적인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씨는 “간단한 점자 몇 개나 음성안내라도 주어진다면 훨씬 나을텐데 모두 비장애인 중심으로만 만들고 있다”며 “다른 사람 도움을 받으면 된다지만,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매번 그럴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일부러 구형 가전제품 사용, 터치스크린 최대의 적
 
지씨 집의 가장 특징은 거의 모든 가전제품이 구형 버튼식 제품이라는 점이다. TV, 세탁기, 전자렌지, 정수기, 에어컨, 비데 할 것 없이 출시된지 최소 5년 이상 지났거나 낮은 사양으로 출시돼 터치스크린이 아닌 버튼식으로 작동된다. 이는 경제적 문제를 떠나 시각이 절대적인 터치스크린 자체가 시각장애인에게 최대의 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한지 얼마 안 돼 장만한 에어컨은 이제 가스를 교체해도 제 성능을 못 내 이날 제법 무더운 날씨에도 냉방을 포기한 채 창문만 열어놓고 있었다. 여름마다 폭염이 계속되면서 에어컨을 바꾸려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버튼이 너무 많거나 터치스크린으로만 이뤄진 제품은 도저히 살 수 없었다.
 
TV는 아예 구형 버튼식 제품을 구매했는데도 셋톱박스와 TV 이중으로 작동하면서 여간 애를 먹는게 아니다. 리모컨 앞뒤를 고무줄로 표시한 후 기본적인 버튼을 외웠지만, 음량과 채널 상하 버튼도 서로 구분이 안돼 전원과 채널, 음량 정도만 겨우 조절할 뿐이다. VOD를 이용한 다시보기 서비스를 요즘 많이 이용한다는데 지씨에겐 언감생심이다.
 
생활용품도 마찬가지다. 음료수, 화장품, 양념통, 목욕용품 어느 하나도 지씨에게 기본적으로 어느 제품인지 이해할 만큼의 정보를 주지 못한다. 아무리 남성이 요리하는 세상이라도, 샤워할 때 그냥 비누보다 바디샤워가 좋다는 소리를 들어도, 지씨는 그나마 십수년 익숙해진 라면 외엔, 매번 사용해 모양이 익숙한 샴푸와 비누 외엔 도전조차 할 수 없다.
 
시각장애인들은 심지어 지폐도 구분하기 어렵다. 애초 만들 때 구석에 구분가능한 점을 찍는다지만 실제 이를 이용해 지폐를 구분하는 시각장애인은 거의 없다고 한다. 1000원권부터 5만원권까지 각기 다른 길이로 구분하며, 4칸으로 이뤄진 지갑이 각기 다른 화폐를 나눠 꽂을 수 있어 시각장애인 사이에서 인기일 정도다.
 
택시를 타거나 물건을 살 때 여러 화폐가 섞이면 필요 이상의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구 1000원권이랑 수표랑 비슷해 10만원이 넘는 돈을 계산했다거나 택시비로 6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 뒤늦게 발을 동동 굴렀다는 일화는 시각장애인들 사이에 오래 전부터 있어온 비극이다.
 
지하철도 곳곳 헛점, 버스는 꿈도 못 꿔
 
지씨 집에서 100여m 남짓 떨어진 주민센터는 오는 6월13일 지방선거가 이뤄지는 투표소다. 불과 100여m 이동하는데도 보도 위엔 점자블록 없이 장애물이 많아 지씨는 보도가 아닌 차도 가장자리로 걸었다. 이어 도착한 주민센터에서도 몇 개의 계단을 올라야만 점자블록이 시작됐으며, 입구에서 주민센터 내부까지 안내할 촉지도나 지씨가 붙잡을 손잡이, 장애인용 경사로 안내 등은 없었다. 주위 도움 없이 혼자서는 투표권 행사도 행정서류 발급도 어려운 셈이다.
 
지씨를 포함한 시각장애인은 서울시각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복지콜을 가장 선호한다. 하지만 배차 자체가 쉽지 않아 급한 경우엔 지하철이나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도 제법 된다. 단, 버스는 아무리 빠르게 이동 가능해도 피하는 편이다.
 
지씨만 해도 샛강역 인근으로 출근하려면 아파트 건너편에서 버스 한 번이면 직장 바로 앞으로 이동 가능하다. 하지만 굳이 지하철역까지 이동해 두 번이나 환승해 다시 역에서 직장까지 걷는 수고를 감수한다. 정류장 도착안내도 부정확한데다, 도착순서가 매번 달라 버스번호를 맞게 타기 힘들고, 교통카드 이용부터 맞게 내리는 것까지 변수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지하철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해도 아직 한참 모자라다. 이날 문래역을 찾은 지씨는 평소 이용하지 않는 7번 출구에 도달하자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씨는 수차례 다른 출구에 도착하고 음성신호기 버튼을 몇 번이나 누른 뒤에야 승강장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곳곳에 배치돼야 할 촉지도는 찾을 수 없었으며, 점자블록은 잘못 안내하기 일쑤고, 중요한 열차 방향을 찾을 수 없어 지씨의 지팡이를 바쁘게 만들었다. 특히, 시청 방면 승강장에서 개찰구로 향하는 상행 승강기에는 점자로 ‘하(아래)’라고 몇 년째 써있는 현실이다.

시각장애인인 지석봉씨가 집에서 혼자 TV를 작동시키는데 애를 먹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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