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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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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만 염두에 두려합니다
[후기] 영화 <눈꺼풀> 관람…세월호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가

2018-04-18 18:24

조회수 : 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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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방지를 위한 도입부?부터 작성)



<눈꺼풀>의 오멸 감독은 개인적으로 인상이 깊은 감독이다.



몇 년 전 제주 4·3 사건을 다룬 <지슬> 영화로 처음 접했는데, <지슬>의 영상미라든가 특히 영화 말미 메타포가 정말 인상깊었다.



영화의 대표적인 악역, 즉 학살을 자행하는 김상사는 영화 말미에 가서 가마솥 안에서 목욕을 하다 물이 너무 뜨거워져 죽어버린다. 이 장면은 제주의 여신인 설문대할망 신화를 모티브로 했다. 설문대할망은 제주도의 창조신격인데, 아들들에게 음식을 해주려다가 자신이 빠져죽어버린다.



그러니까 <지슬>은 제주 주민에 대한 가해자를 제주 창조신과 동격으로 놓은 셈이다. 가해자의 등장은 피해자의 정체성을 탄생시킨다는 점을 영화적으로 보여준 게 아닌가 한다. 일부 이슬람 지역에서 히잡은 상류층의 패션일 뿐이었지만, 서양의 압제가 있자 이슬람 교인 모두가 써야 할 필수품이 돼버렸다. 일제강점기 때에도 한글 보급 등 정체성을 지키고 강화하는 운동이 벌어졌다. 제주도민 자신들도 '육지것들'이라는 경계의 단어를 써가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3번 본 후 신작을 내나 몇 개월을 기다리다가 잊어버렸는데, 이번에 <눈꺼풀>을 접했다.



주말 오후에 강남 코엑스로 영화를 보러갔는데, 관람객이 5명 밖에 없었다. <지슬> 이후로 흥행하지 못했다는 말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밑에서부터 스포가 될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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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이 저승 가기 전 들르는 작은 섬 미륵도에는 한 노인이 있다. 그는 죽은 자에게 떡을 해주면서, 심신을 수련하고 있는 중이다.



영화 맨 처음에는 노인이 달마 고승의 인물화를 보며, 달마의 일화를 곱씹어보는 모습이 나온다. 달마는 고행 중 눈이 자꾸 감기자 눈꺼풀을 잘라내서 눈을 계속 부릅떴다고 한다. 노인은 "눈꺼풀을 떼면서까지 달마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영화는 3부분으로 나뉜다. 1) 낚시꾼에게 떡 해먹이는 모습 2) 빨간 캐리어 가방이 떠내려온 모습 3) 세월호 희생자들의 방문



1번 부분은 노인이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낚시꾼이 타다가 파도에 휩쓸려 죽은 것으로 보이는 보트는 섬 근처에 머물고 있다. 노인은 절구에서 쌀을 빻아 고운 가루를 내고, 가마솥으로 떡을 찐다. 낚시꾼은 떡을 한 점 먹고 사라진다. 



2번 부분은 엄청나게 난해하다. 바다에 떠 있는 빨간 캐리어의 의미를 잘 캐치하기 힘들다. 보트가 낚시꾼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캐리어도 누군가의 유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독은 그것이 노인의 욕심이라고 인터뷰했다.



바다에 떠 있던 캐리어는 저절로 노인의 집 마당에 놓인다. 노인이 갖다 버려도 다시 놓여있다. 노인이 캐리어를 열고 그 안에 있는 물을 손으로 떠서 들여다본 다음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랬더니 "나 가겠네"라는 나이 든 사람의 소리가 들리고, 놀란 노인이 마당으로 나온다. 캐리어는 사라지고 없다.



이 영화에서 역할이 클 것 같은데 어떤건지 잘 모르겠다.



3번 부분은 세월호 이야기다. 노인은 라디오에서 참사 소식을 듣고, 라디오를 끈 다음 바닥에 드러눕는다. 화면은 노인의 시점으로 바뀌어, 눈꺼풀이 서서히 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밤에 영혼들로부터 전화가 오고 다음날 노인은 여느때처럼 떡 만들 준비를 한다.



그런데 노인이 쌀을 가지러 간 사이, 쥐가 한 마리 나타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화가 난 노인은 절구 위로 올라간 쥐를 절굿공이로 내리쳤으나 쥐는 달아나고 절굿공이는 두 동강이 난다. 노인은 부처 형상의 돌로 힘겹게 쌀을 빻지만 이번에는 절구가 깨진다. 새로운 절구를 만들려고 바위에 정을 대고 망치로 내리치지만 이번에는 망치가 부서진다. 섬에 있는 우물은 쥐가 빠져죽는 바람에 썩어버려 세월호 희생자들이 먹을 수 없게 된다.



노인은 깨진 절구를 우물에 빠뜨린다. 우물은 해저로 이어지고, 해저에는 세월호가 가라앉아있다. 영화는 그 근처에 잠들어있던 거인이 서서히 깨어나고 눈을 부릅뜨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노인의 떡 하는 행위가 추모라고 할 때, 3번 부분은 추모가 제대로 되지 않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추모가 안되는 이유는 일각의 해석처럼 애초에 희생되서는 안되는 사람들이 희생됐기 때문일수도 있고, '쥐'로 상징되는 방해꾼들이 추모를 가로막거나 변질시켰기 때문일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떡을 먹지 못해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희생자들의 표정이 인상에 남는다.



망쳐진 추모의 해결은, 망쳐진 추모의 상징을 버림으로써 가능했다. 그게 정답일수도 있겠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송강호 배우가 분향소에서 난동피우는 모습을 코믹하게 보여줌으로써, 국가가 어설픈 추모 분위기로 참사의 진상을 덮고 해결 기회를 흘려보내는 현실을 고발했다. 세월호 때도 국가는 추모 분위기에 편승한 뒤 '이만하면 됐다'는 여론을 조성하려 했지만, 그것은 해결의 길이 아니었다.



거인이 눈을 떠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게 무엇이든간에, 세월호는 4년이 지난 지금도 응시해야 할 대상일지 모르겠다.



사진/뉴시스
  • 신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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