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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kjb517@etomato.com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무비게이션) '콰이어트 플레이스'…'소리=공포=스토리'

소리로 말하는 영화…관객들에 대한 가장 완벽한 '감각 살인'

2018-04-06 10:49

조회수 : 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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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파괴했다. ‘보는 것’ 즉, 시각이 오감 체계의 90% 이상을 담당한다고 하지만 청각이 뒷받침 되야 시각 체계의 정보 유입 처리도 효율성을 발휘한다. 공포영화를 볼 때 귀를 막고 본다면 받아 들이는 감각의 자극은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만큼 청각은 오감을 자극하는 감각기관 가운데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요소다. 때문에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관객의 감각 체계를 원천적으로 파괴하며 시작한다. 소리가 곧 스포일러다. 소리가 시작이며, 끝이다.




 


영화는 사전 정보를 철저히 차단한 채 시작된다. 소리가 차단됐기에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절반 이하의 정보를 유추할 수밖에 없다. 관객들은 시작부터 추측 자체에 핸디캡을 안고 출발한다. 도대체 왜 소리를 내면 안될까.




전체적인 배경은 어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형성돼 있다. 여기서 ‘어떤’은 그저 작위적이만 짧은 한 줄과 몇 장면의 ‘인서트’로 대체된다. 주인공 가족의 아버지 ‘리’(존 크래신스키)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메모장이 등장한다. 인류 문명은 붕괴가 된 상태다. 정체 불명의 생명체가 등장한다. 이들은 소리에 반응한다. 앞을 보지는 못한다. 철갑을 두른 듯 두터운 피부로 외부 공격을 막아낸다. 어디서 왔는지 어떤 존재인지는 생략됐다. 이 지점은 ‘리 가족’이 느끼는 공포와 맞닿아 있다. 그저 생존해야만 한다. 오프닝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육의 현장은 이들 가족에게도 관객들에게도 ‘소리’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오프닝에서의 충격은 관객들에게도 극중 ‘리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충격적 사건으로 인해 시작과 함께 이어진 ‘무음의 세계’는 일관된 지점을 향해 달려간다. 바람 소리, 하늘 위 새소리 그리고 공간 속 공기의 흐름만 스크린을 통해 울려 나온다. 더불어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숨 소리와 침 넘김 소리가 더해진다. 고요한 ‘무음’은 공포를 배제한 채 극한의 서스펜스를 이끌어 내는 아이러니가 된다. 사실 이 영화 속에서 소리는 의문의 괴생명체가 독점한 권리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들 가족 구성원 중 두 명이다. 먼저 청각장애인인 큰 딸 ‘레건’. 레건을 연기한 배우 밀리센트 시몬스는 실제 청각장애인이다. 그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소리와 차단된 인물로 등장한다. 그에게 공포는 의문의 괴생명체가 아닌 죄책감(스포일러)과 다른 가족들의 감정이다. 소리의 세계에 살고 있는 다른 가족들이 소리를 차단하는 것에 강제적으로 의무감을 갖는다면 ‘레건’은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한다. 아빠 ‘리’는 그런 딸 ‘레건’을 위해 보청기를 수리해 그에게 소리를 쥐어 주려고 노력한다. 소리를 차단해야 하는 세상에서 아이러니한 존재이면서 또 ‘소리’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일종의 상징적인 캐릭터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두 번째는 엄마 ‘에블린’(에밀리 블런트)이다. 임신한 상태의 ‘에블린’은 괴생명체의 습격 속에서 공교롭게도 출산의 징후를 보인다. 뱃속의 아이는 본능만 존재하는 생명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소리’에 반응해 살육을 담당하는 괴생명체와 맞닿아 있다. 소리를 차단하는 법도 이유도 모르는 존재가 바로 ‘에블린’의 뱃속 아이다.

 

소리를 듣지 못한 채 말을 못하는 ‘레건’과 소리를 낼 수 밖에 없는 뱃속 아이를 지닌 엄마 ‘에블린’은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서스펜스 감도를 조율하는 '저울'이다. 아빠 리와 아들 ‘마커스’가 소리에 차단된 공포를 담당한다면 ‘레건’과 엄마 ‘에블린’은 소리를 이끌어 내는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존재다. 그 정점이 에블린의 출산과 함께 시작된 아기의 본능과 괴생명체의 본능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결과적으로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소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정보 체계를 차단시켰을 때 인물들이 느끼는 혼란과 긴장의 감도가 어디까지 올라갈지를 가늠하는 무대가 된다. 그 지점은 오히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이 더욱 강력하게 느낀다. 팽팽하게 당겨진 끈 아래로 날카로운 면도날이 버티고 있는 듯한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물론 소리와 인물의 서스펜스가 모든 것을 마무리하지는 않는다. ‘리 가족’이 살고 있는 초원 위 전원적인 시골집 풍경 그리고 숲 속과 도심을 따라 이어진 새하얀 모래길 여기에 거대한 탑처럼 우뚝 선 곡식 저장고의 역할 농장을 휘감은 붉은 전조등 물결은 ‘콰이어트 플레이스’ 속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완성하는 미장센으로서 제3의 인물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무엇보다 충격적 실체의 괴생명체와 그들이 대체 어디서 왔고 어떤 이유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영화 속 인서트 해석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기존 공포와 서스펜스는 소음의 세계 속에서 이뤄진 불쾌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공포도 서스펜스도 아니다. 이건 가장 완벽한 ‘감각 살인’이다. 개봉은 오는 12일.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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