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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강이채, 빛나는 풍경 속 삶의 '긍정'을 노래하다

사막·새벽·과거…삶의 풍경 담은 새 EP 'HITCH'

2018-04-0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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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푸르게 머리를 물들인 여성이 해변가에 바이올린을 들고 서 있다. 살짝 미소를 머금더니 이내 기타를 연주하듯 손가락으로 현을 튕긴다. 또랑 또랑한 현의 울림이 청춘 같은 낭랑함을 흩뿌리고, 그 위에 신비롭고 몽환적인 목소리가 얹힌다. '네가 전에 여기 있었을 때/ 눈을 바라볼 수 없었지/ 넌 마치 천사 같았어'

 

재즈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강이채를 알게 된 건 3년 전의 이 독특한 음악 영상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해안도시 산 베네데토를 여행 차 들른 그는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변주하고 있었다. 뉘어진 옅은 회색 구름과 철썩이며 들이치는 파도를 세션 삼아 그는 ‘풍경’ 자체를 연주했다. 딛고 선 자연, 그곳에서의 느낌이 고스란히 음표에 전해졌다. 자유 분방하고, 따뜻한 그날의 서정을 그는 노래하고 있었다.


지난 27일 발매된 강이채의 새 EP ‘히치(HITCH)는 그런 이력과 비슷한 연장선에 놓인 앨범이다. 삶의 면면, 그 다양한 풍경을 원료로 끌어 쓰되, 자유롭고 밝은 색채들을 덧입혔다. 사막 한가운데를 차로 달리며 느끼는 순간의 자유로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던 새벽녘의 아름다움, 어린 시절 때묻지 않은 맑은 순수함. 그런 관찰과 사색들이 묶여 ‘강이채’라는 새로운 음악이 됐다.

 

희뿌연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26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민트색 머리빛이 보이는 순간, 혼탁한 공기에서도 그 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음악에 ‘파격’과 ‘실험’이란 수식어가 붙는 만큼 강렬한 첫 인상이었지만 부드럽고 유한 말투에서 진지함과 따스함이 느껴졌다. 이번 앨범을 중심으로 그는 자신의 음악과 관찰해온 삶의 풍경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풀어놓았다.

 

그는 2016년 정규 1집 ‘래디컬 파라다이스(Radical Paradise)’와 이번 앨범의 차이부터 소개했다. 내면 깊이 파고 들어가는 어둠이 전작의 지배적 정서였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를 표현하고자 했다. 밝고 빛나는 풍경을 탐색하며 느낀 삶의 ‘긍정’이다.

 

“1집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앨범이에요.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잡을 때부터 음악을 해오면서 느낀 ‘성장통’을 자유롭게 음악으로 푼 것이었죠. 이번에는 너무 무겁거나, 불편한 이야기보다는 편한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 했어요. 전작이 술 한 잔 마셔도 좋을 음악이라면, 이번 앨범은 커피 한 잔 마시면 좋을 음악인 것 같아요.”


강이채의 음악 인생 전반을 톺아보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어린 시절이다. 6살 때부터 클래식 바이올린을 배웠고, 중학교 때 집시 재즈에 빠져 19살 미국 버클리 음대 유학길에 올랐다. 타국에서 매일 장시간의 바이올린 트레이닝을 감내해야 했던 시간은 어렸던 그에겐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겹겹이 쌓이면서 그는 이 곳에서 재즈, 훵크, 월드뮤직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 경험을 할 수 있었다.

 

2014년부터는 국내로 돌아와 베이시스트 권오경과 ‘이채언루트’라는 그룹으로 퓨전 장르를 선보였다. 아이유, 정세운, 윤석철, 조정치 등의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대중적인 곡 작업도 함께 했다. 다채로운 음악을 흡수하고, 또 그만큼 새롭고 다양한 음악을 뿜어내는 것.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두고 탄생한 ‘강이채’ 만의 실험적 음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 만의 새로움은 가득하다. 새로운 분위기의 가사만큼이나 색다른 음을 탐색했다. 평소 좋아하던 ‘브리티시 록’을 전면에 세우고 자신의 주무기였던 바이올린의 비중은 최소화했다. Creep을 바이올린으로 튕기며 미소 짓던 3년 전 그의 모습이 잠시나마 스쳤다.

 

“이번에는 실험적이기 보다는 제가 평소 좋아한 밴드 사운드에 집중해보고자 했어요. 그래서 녹음도 기타, 베이스, 드럼을 먼저 하고 다른 악기를 얹는 식으로 진행이 됐죠. 평소 라디오 헤드 외에도 1975, 낫띵 벗 띠브스, 더엑스엑스 같은 영국 록 밴드들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들 특유의 색다른 악기라인이나 비트감에 영감을 많이 얻고 있어요.”

 

이번 앨범의 수록곡 ‘풀리시(Foolish)’는 그런 밴드적 사운드 지향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다. 그는 바이올린 외에도 이 곡에서는 기타리스트와 함께 기타 편곡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서로 좋다고 생각하는 악기라인을 공유하면서 그간 시도하지 않던 새로운 스타일의 곡이 만들어졌다.

 

그런가 하면 타이틀 곡 ‘안녕’은 이번 앨범에서 가장 ‘강이채’다운 곡이다. 맑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풍경을 그는 이 곡에서 일기처럼 써내려 갔다. 그는 “어른이 되면서 현실에 쫓기고 불안함도 커지지만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행복할 때가 있다”며 “이번에도 그런 기분이 ‘확’ 다가와 만들었다. 이 곡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노래”라고 소개했다.

 

‘안녕’ 외에도 앨범 전반에는 그가 관찰한 삶의 풍경들이 소개되고 있다. 앨범명과 동일한 ‘히치’는 음악 작업의 고단함을 느끼던 시기에 갔던 미국 여행의 기억을 그리며 쓴 곡이다. 라스베이거스, 콜로라도 등의 사막을 차로 달리며 무수한 산맥과 모래, 별을 봤고 그곳에서의 자유를 음악으로 풀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새벽 순간을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표현한 곡 ‘모닝 모닝 썬(Morning morning sun)’, 열렬히 좋아하던 것들에 감흥이 줄어드는 자신을 고찰한 ‘풀리시’ 등 주로 자신과 주변 삶의 풍경들이 곡에 고스란히 담겼다.


다양한 음악 장르에 도전해 온 만큼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됐다. 다음 ‘강이채 음악’은 어떤 모습이 될까.

 

“가늠할 수 없는 거요! 그게 제일 재밌어요. 다음 앨범이 어떻게 될지 저도 모르겠어요. 한 가지 분명한 건 계속 풍부해졌으면 좋겠어요. 계속 발전이 있었으면 하고요. 음대에 있을 때도 헤비메탈, 재즈, 힙합 다양한 장르의 친구들과 교류했거든요. 그런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언제든 여러 사운드에 대한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 같아요!”

 

오는 5월19~20일 열리는 ‘서울재즈페스티벌’은 이번 앨범 발매 후 처음으로 서는 무대다. “음악 만들 때보다 공연이 더 신난다”는 그의 말에서 벌써부터 설렘이 묻어났다. “평소 제게 조언을 많이 해주시는 선우정아 언니가 음악은 ‘시간예술’이라 하시거든요. 저도 공감해요. 관객들과 느낄 수 있는 교감은 공연장, 당일, 그 장소, 시간에만 이뤄지거든요. 음악을 만든 이후 밴드들과 합주하는 것도 너무 재밌어요!”

 

마지막으로 음악을 여행지에 빗대달라는 요청에 돌아온 답은 ‘내 음악은 호수요’였다. “미국에서 쉴 때 호숫가를 주로 갔었거든요. 바비큐도 구워먹고, 수영도 하고, 낮잠도 잘 수 있는 그런 평온한 느낌이 제 음악인 것 같아요.”

 

“아! 관객 여러분들에게는 음악을 들었을 때 제가 가본 풍경이 펼쳐지는 음악이었으면 해요. 제가 파리에서 쓴 곡이면 진짜 파리에 있는 느낌이 드는. 그런데 사실 해석은 자유롭게 해줘도 좋을 것 같네요. 남미에서 쓴 곡이라도 대만에서 듣고 좋으면 그걸로도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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