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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현장에서)중국군 유해송환과 한중관계 미래

2018-03-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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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정치부 기자
1936~1939년 스페인 내전 종료 후 총통이 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은 수도 마드리드에서 1시간 거리 로스카이도스 계곡에 자신이 속한 우파들을 위한 묘지를 조성했다. 그러나 이후 프랑코 총통은 묘지를 스페인 내전에서 죽어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공간으로 바꿨고, 자신도 이곳에 묻혔다. 프랑코 총통은 “뼈에 무슨 이념이 있느냐”며 묘지 성격을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
 
작가 김진명은 소설 <살수> 말미에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을 승리로 이끈 후 3일을 통곡하며 죽어간 수나라 병사들의 고혼을 위로했다’고 적었다. 있었을 법한 일이다. 싸울 때는 물리쳐야 할 상대였지만, 상관의 명령에 따라 이역만리 한반도에 와서 죽어간 병사들의 슬픔은 피아를 초월한다.
 
6·25 전쟁에 참전한 중국군도 마찬가지다. 경기 파주 적성면에 위치한 북한군·중국군 묘지(일명 적군묘지)의 스산함은 다른 묘지들과 다를 바 없다. 시인 구상은 시 ‘적군묘지앞에서’를 이렇게 시작한다.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 썩어 문들어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국방부에 따르면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중국군 수는 14만~15만명으로 추정된다.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의 아들 마오안잉도 참전 한 달 만인 1950년 11월 미군 폭격으로 숨졌다. 마오안잉 시신은 북중 우호관계의 상징으로 북한 땅에 남았지만, 교전 중 발생한 상대국 전사자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국제법 상 통용되는 조치다. 우리 정부가 지난 2014년부터 해마다 발굴한 중국군 유해를 청명절 이전 송환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 문제로 한중관계가 냉각된 지난해 3월에도 송환은 이뤄졌다. 당시 국방부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과정에서 한중관계의 어려움이 있지만,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송환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해 인도식에 참석한 쑨샤오청 중국 민정부 부부장(차관급)도 기념사에서 “대한민국 국민과 언론 등이 보여준 중국군 유해송환에 대한 우호와 선의에 감사드린다”며 사의를 표했다.
 
국방부는 2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제5차 중국군 유해 인도식을 진행하고 유해 20구를 추가로 송환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인류 존엄의 숭고한 가치를 존중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중국군 유해 송환은 미래지향적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해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중국의 협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 송환된 20구의 유해가 작은 마중물이 됐을 줄로 믿는다. 정치적인 상황과 관계없는 유해송환이 계속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최한영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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